『멋진 신세계』 vs 『1984』 ⑦
쾌락에 저항하라
(좋은 술이 늘 그렇듯) 그는 이제까지 불만스러웠던 세계와 완전히 타협하게 되었다. 세계가 그를
중요한 존재로 인정하는 한 세계의 질서는 훌륭했다. 그러나 그의 성공으로 인해 세계와 화해는
되었지만 버나드로서는 이 질서에 대해 비판을 가할 특권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비판하는 행위는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의식을 고조시켰고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감정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감정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 이야기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버나드였다. 도취된 버나드는 적어도
순시중인 세계총통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공기보다 더 가벼운 기분이었다.
-올더스 헉슬리, 이덕형 옮김,『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1998, 198~199쪽.
버나드는 유명해진다는 기쁨, 모두들 나를 쳐다본다는 기쁨, 최고의 미녀들이 자신을 원한다는 기쁨에 빠져 허우적댄다. 그는 멋진 신세계의 스타로 등극하자 그가 꿈꿨던 모든 희망의 절실함을, 그가 저항하려던 모든 권력의 비정함을 망각해버린다. 버나드는 체제를 비판하던 저항의 에너지를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 속물주의를 위해 써버리는 것이다. 야만인 존을 데려와서 최고의 구경거리로 만들어준 공로, 야만인의 삶에 대한 그의 지식을 바탕으로 그는 스타가 된다. 그는 소마가 주는 쾌락으로부터 도피하여, 내 자신의 머리로 내 자신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이제 독자가 기대하던 혁명가이자 선동가 버나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반면 야만인 존은 쾌락에 저항해야만,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마음속에 셰익스피어를 장전하고, 기억 속에 야만인의 삶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존. 그는 소마와 촉감 영화를 비롯한 멋진 신세계의 모든 쾌락에 저항해야만 자신의 머리로 자신의 감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그의 몸을 뒤흔든다. 그의 기억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야생의 기억은 첨단과학으로 조종되는 멋진 신세계의 수동적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야만인 존은 소마 없이 사는 삶, 불행해질 권리가 있는 삶을 요구한다.
『1984』는 일시적 쾌락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향한 인간의 눈 먼 열정을 보여준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상대방과 손을 잡고 키스하고 잠드는 쾌락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 ‘당’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만드는 이 무서운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에 윈슨턴은 커다란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 그가 꿈꾸는 ‘반역’이 성공할 수 없더라도, 다음 세대가 우리가 못다 한 일을 이어받아 수행해나가기를 바라는 윈스턴. 그에게 줄리아는 말한다. “난 다음 세대엔 관심이 없어요. 난 단지 우리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줄리아의 지나친 솔직함에 윈스턴은 핀잔을 준다. “당신은 허리 밑으로만 반역자군요.”
줄리아는 윈스턴의 재치에 반하여 그를 꼭 껴안는다. 윈스턴은 잠시 ‘반역’의 고통을 잊지만 곧 깨닫는다. 다음 세대엔 관심이 없고 오직 ‘우리’에게만 관심이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은 미래, 똑같은 고통이 기다릴 것임을. ‘오직 현재’만을 강조하는 당에 맞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역동적으로 대화하고 교섭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새로운 비전임을. 과거에 비춰보고 자신을 되새김질하고, 미래의 시선에 비춘 현재가 어떨지를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현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야 함을.
당신은 바로 어제를 포함해서 모든 과거가 실제로 말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 오늘날의 우리는 혁명과 혁명 이전의 시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어요. 모든 기록은 파기되거나 위조되었고, 모든 책은 다시 쓰이고, 모든 그림은 다시 그려지고,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의 이름이 다시 지어지고 모든 날짜가 변경되었어요. (…) 난 과거가 변조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네요. 내가 직접 변조 작업에 참여 했는데도 말입니다. 변조가 완료되면 남아 있는 증거는 전혀 없게 되죠. 유일하게 남은 증거가 있다면 내 머릿속에 있죠. (…) 하지만 지금 비슷한 일이 내게 일어난다면 난 어떻게든 증거를 확보하고 있으려 했을 거예요. (…) 우리가 사는 동안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기저기에 항거의 작은 조짐을 상상해 볼 수는 있겠죠. 사람들이 뭉쳐 작은 그룹을 이루고 그 그룹이 점점 커져서 그것의 활약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다음 세대가 우리가 못다 한 일을 이어서 수행해 나갈 수는 있을 겁니다.
-조지 오웰, 이기한 옮김,『1984』,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215~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