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vs 『위험한 관계』 ⑤
격정: 멈출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아무리 노력해도 참을 수 없을 때에만 사랑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이야.
바로 내가 그렇거든. 정말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위험한 관계』, 문학과지성사, 83쪽.
이 위험한 관계들이 시작되기 전까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평화로운 일상을 지속하고 있었다. 투르벨 부인은 살아가면서 한 번도 타인의 미움을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인품의 소유자였고, 세실은 아직 특별히 ‘잘못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할 정도로 어리고 순진한 열다섯 살 소녀에 불과했다.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은 바람둥이 발몽도, 남편의 죽음 이후 오히려 우아하고 능숙한 처세술로 사교계의 여왕에 등극한 메르퇴이유도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발몽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볼랑주 부인(세실의 어머니)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이 자신을 배신한 제르쿠르 백작(세실의 정혼자)에게 복수를 맹세하기 전까지.
발몽과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 두 사람은 타인의 삶을 인형처럼 조종하는 데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파리 사교계의 심리적 메카니즘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귀족들의 행동반경을 낱낱이 습득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연애사를 쥐락펴락하는 데서 엄청난 만족감을 느낀다. 두 사람은 분명 연애의 달인이다. 그러나 사랑의 달인이라 할 수는 없다. 투르벨 부인을 유혹함으로써 게임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려는 발몽의 호기심은 바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발몽 혼자만 모르고 있다.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은 발몽보다 한층 철두철미한 포커페이스로 무장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이 연출하는 ‘파리 사교계 치정극’의 조연배우로 조종하는 탁월한 연출자이지만, 자신이 왜 발몽과 끊임없이 ‘모사’를 꾸미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사랑이란 쾌락을 얻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타인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능수능란하게 캐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비밀은 알지 못한다. 그녀가 매번 발몽과 모사를 꾸미려는 이유는 단지 게임의 스릴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한 번이라도 스스로 정한 규칙을 벗어나고 나의 원칙을 어기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래요, 나의 원칙 말이에요. 꼭 나의 원칙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다른 여자들처럼 우연히 주어진 것을 생각 없이 받아들여 습관적으로 따르는 원칙이 아니라, 스스로 깊이 생각해서 얻어낸 결실이니까요. 나의 원칙은 내 스스로 창조한 겁니다. 말하자면 내가 나 자신의 작품인 겁니다.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위험한 관계』, 문학과지성사, 243쪽.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마음껏 설계할 동안,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격정에 빠져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투르벨 부인은 생애 처음으로 다가온 매혹적인 남자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가슴 설레고, 세실은 당스니의 절절한 사랑 고백이 담긴 편지의 달콤함에 빠져 온종일 막연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첫사랑의 고통을 깨닫는다. 삶의 평화를 깨뜨리는, 멈출 수 없는 격정. 메르테이유 후작 부인을 제외한 모든 주인공들은 이 참을 수 없는 격정에 빠져 있다. 그녀는 사교계라는 거대한 무대 뒤편에서 등장인물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다.
한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사는 오직 한 남자 토마스를 위해서만 열려 있었던 자신의 감각 기관을 최대한 활용할 새로운 격정의 출구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이었다. 이 대목에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일상, 사랑’과 ‘집단의 거대한 역사’를 절묘하게 접속시키는 쿤데라의 내공이 빛을 발한다. 테레사는 토마스를 향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격정을 쏟아 부을 공적 대상을 발견한다. 타인의 고통을 포착하여 카메라에 담는 일. 이 일을 통해 테레사는 처음으로 ‘사랑’ 이외의 순간에도 진정 ‘나는 살아 있다’라고 느낀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 발생했던 모든 범죄는 은밀한 그늘에 가려 자행되었다. 50만 명에 달하는 리투아니아인 수용소 수감, 수백만 폴란드인 학살, 크리미아의 타르타르족 멸족 등, 사진 증거가 없으니 이 모든 것은 머지않아, 꾸며낸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는, 보여줄 수 없는 어떤 것으로 기억에 남을 뿐이다. 반면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어 세계 도처의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 테레사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 일주일 동안 거리에서 소련 군인과 장교들의 사진을 찍었다. 소련군들은 속수무책으로 사진에 찍혔다. 그들은 누가 그들에게 총을 쏘거나 돌을 던질 경우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는 정확한 지침을 받았지만, 카메라 렌즈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아무도 그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을 수백 통 찍었다. 그녀는 현상 안 된 릴 상태의 필름을 거의 반 이상 외국 기자에게 나누어 줬다. (……) 그녀의 많은 사진은 각종 외국 신문에 실렸다. 탱크, 위협적인 주먹, 파괴된 건물, 피 묻은 삼색기에 덮은 시체들, (……) 성적으로 굶주린 불쌍한 소련 군인 앞에서 행인에게 키스를 퍼붓는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 차림 소녀들의 사진이 실렸다. 거듭 말하지만 소련군의 침공이 비극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도 그 이상한 도취감을 이해하지 못할 증오의 축제이기도 했다.
―밀란 쿤데라, 이재룡 옮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112~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