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vs 『위험한 관계』 ④
그 무엇보다 두려운, 사랑
‘신분 상승’은커녕 주정뱅이들에게 맥주잔을 나르고, 일요일에는 형제들의 더러운
속옷이나 빨아야 했던 어린 소녀는, 대학교에서 책을 펴고 하품을 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생명력을 자신의 내면에 비축하고 있었다. 테레사는 그들보다 많이 읽었고 그들보다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다. 독학자와 학교에 다닌 사람의 다른 점은
지식 폭이 아니라 생명력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의 정도 차이다. 삶에 몰두하는 테레사의
정열은 프라하에서는 탐욕스럽고 동시에 깨지기 쉬웠다. 그녀는 어느 날 누군가가
“네 자리는 여기가 아니야!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듯 했다.
삶에 대한 그녀의 모든 갈망은 실낱같은 하나의 끈에 매달려 있었다. 바로, 테레사의 내장
속에 수줍게 숨어 있던 영혼을 높이 떠오르게 한 토마스의 목소리였다.
―밀란 쿤데라, 이재룡 옮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91쪽.
내 앞에 나타난 사랑이 나를 향해 ‘담력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랑은 그 사람과 나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세상’과 ‘나’ 사이의 문제라는 느낌이 들 때. 이 사랑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 내 기질과 능력을 강력하게 시험받는 일이라는 느낌이 들 때. 그것은 심판관과 게임의 법칙도 오직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더욱 더 처절한 내면의 혈투가 되곤 한다. 이 사랑의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면 나는 왠지 비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설렘으로 가득한 사랑의 시작뿐 아니라 사랑의 과정 어디에서나 이런 장벽은 나타날 수 있다. 누군가, 무엇인가, 내 사랑을 방해하고 있다고 핑계 대고 싶을 때. 사실 그 모든 장애물은 내 안의 금기다. 내가 기어코 이겨낼 수 있다면, ‘사랑의 제3자’일 뿐인 다른 사람들은 나를 당해낼 수 없다. 그러나 장애물과 맞닥뜨리는 순간에는 이런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내 사랑의 ‘적’과 ‘아’로 구분될 뿐이다.
테레사는 토마스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보상받고 싶어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자신의 모든 콤플렉스와 결별하고, 더 이상 ‘이곳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것은 단지 테레사가 웨이트리스이고 토마스가 의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토마스와의 사랑을 통해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도 모르는 채 묵묵히 주어진 악조건을 견뎌야 했던 테레사는 자기 안에 숨어 있던 빛을 꺼내준 사람이 바로 토마스임을 깨닫는다. 그런 토마스가 못 말리는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는 목숨을 건 집착과 질투로 자신을 방어한다. 사랑은 자아를 찾는 가장 아름다운 통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걸 때 위험천만한 모험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공포는 또한 삶 그 자체의 공포에서 우러나온다. 질투와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테레사의 집착은 언젠가 이 도시 프라하에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온 그녀의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삶 자체에 자신감이 없다. 그 안타까운 결핍감이 토마스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마지막 구원의 동아줄처럼 보이게 만든다. 토마스와 사비나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는 행복, 즉 안정된 중산층과 엘리트 계층에 속하지 못하는 테레사의 공포. 그 끔찍한 두려움을 토마스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투르벨 부인은 자신이 누려왔던 삶이 너무도 안정적이고 행복했기에 낯선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가 될 수밖에 없다. 천하의 모범생이고,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주어진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투르벨 부인은 발몽의 멈출 수 없는 유혹 앞에서 망연자실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이 단단한 육지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한다면, 발몽은 바라보기만 해도 두렵기 그지없는 ‘폭풍우’처럼 보인다. 그 두려움에 온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그녀는 아직 ‘그냥 육지에 있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 힘겨운 자기 검열이야말로 투르벨 부인이 발몽에게 빠져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한 사람의 우주 전체를 뒤흔드는 끔찍한 사랑이, 지금 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아내인 제가 지켜야 하는 의무, 그리고 제가 누리는 기쁨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합니다. 전 지금 행복하고, 또 행복해야 합니다. 설령 보다 강렬한 쾌락이 존재한다고 해도, 전 바라지 않습니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마음속에 갈등이 없고 평온한 나날을 지내며,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 아무런 회한도 스며들지 않는 것, 이보다 더 감미로운 게 있을까요? 자작님께서 행복이라고 부르는 건 관능이 요동치고 정념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불안이 아닌가요? 보기만 해도, 멀리 해안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도 두렵기 그지없는 폭풍우 말입니다. (……) 난파되어 부서진 배들이 수없이 떠다니는 바다 위로 어떻게 배를 띄울 수 있을까요? 누구와 함께요? 아닙니다. 자작님. 전 그냥 육지에 있겠습니다. 저러 육지에 묶어주는 끈들을 사랑합니다.
―쇼데를로 드 라클로, 윤진 옮김, 『위험한 관계』, 문학과 지성사, 2007, 160~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