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vs 『위험한 관계』③
질투의 파노라마: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그녀는 꿈 이야기를 했다. “커다란 실내 수영장이었어. 여자만 스무여 명 있었어. 모두 완전히 알몸이었고 수영장 주변을 따라 발을 맞춰 행진해야 했어. 천장에 커다란 바구니가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 한 남자가 있더군. 챙이 큰 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렸지만 나는 그 남자가 당신인 걸 알았어. 당신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더군. 당신은 악을 썼어. 우리는 행진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무릎을 꿇어야만 했어. 한 여자가 무릎을 꿇지 못하자 당신은 권총으로 쏘았고, 그녀는 죽어 수영장에 떨어졌지. 그 순간 다른 여자들은 박장대소하고 더욱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당신은 우리로부터 눈을 떼지 않다가 우리 중 한 여자가 틀린 동작을 하면 쏘아 죽였어. 풀장은 물결에 따라 출렁이는 시체로 가득 찼고. 나는 더 이상 힘이 없어서 다음 동작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당신이 날 죽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밀란 쿤데라, 이재룡 옮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33쪽.
*
누군가를 향한 질투 때문에 점점 망가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의 마음을 가져버린 사람,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 질투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질투의 결과는 대개 비슷하다. 자신의 존재마저 파괴하는 질투로 인해 자아가 붕괴 직전에 이르거나, 혹은 질투의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안타깝게도 후자의 행운은 매우 드물게 주어진다. 질투에 눈이 머는 것은 쉽지만, 그렇게 망가진 마음의 시력을 회복해 진정 자신에게 중요한 다른 무엇을 발견해내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테레사는 지금 사비나를 비롯한 수많은 여인들, 언제든 토마스와 동침할 가능성이 있는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을 향한 불타는 질투로 영혼의 붕괴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다. 실내수영장에서 토마스의 여자들이 하나 둘씩 살해당하는, 저 처참한 꿈의 이미지는 바로 테레사가 토마스를 바라보는 시선, 테레사가 토마스의 여자들을 향해 느끼는 질투와 자괴감의 정확한 복제품이다.
테레사의 등장으로 인해 토마스는 ‘Einmal ist keinmal’(한 번 일어난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의 세계가 붕괴하는 것을 느낀다. 그 어떤 사건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토마스. 그는 이 세상 모든 사건이 마치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가볍고 덧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신이 게임처럼 가볍게 만나는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테레사의 질투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그는 점차 스스로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왔던 게임의 법칙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에로틱한 우정이라 불러왔던 사비나와의 관계에서도, 오직 관능만을 추구하는 가벼운 만남들 속에서도, 더 이상 예전처럼 순수한 쾌락을 느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떤 사건도 무거운 의미를 가질 필요가 없었던 가볍디가벼운 유희적 관계, 누구에게도 집착하거나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었던, 어떤 윤리도 책임도 틈입할 수 없었던 가벼움의 세계가 붕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사비나가 가벼움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테레사는 무거움의 세계를 상징한다. 사비나는 토마스의 수많은 여자들에게 전혀 질투를 느끼지 않고, 토마스와 자신 사이에 흐르는 ‘에로틱한 우정’의 기운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향유한다. 한편 테레사는 토마스의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도 특히 사비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토마스의 에로틱한 우정관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그 여자, 테레사의 악몽의 중심에 서 있는 그 여자, 테레사의 끓어오르는 질투와 참을 수 없는 모멸감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그 여자의 견딜 수 없는 쿨함이 테레사를 질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테레사를 만나고 그녀를 사랑함으로써 토마스는 자기 인생의 본원적 화두를 깨닫게 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에로틱한 우정을 즐길 수 없게 된다. 가벼움과 무거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한편 『위험한 관계』에서는 각자의 옛 연인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발몽과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이 서로 상대편의 애정 게임을 격려해주면서 자신들의 에로틱한 우정을 한껏 즐기는 중이다.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이 제안한 미션, 숫처녀 세실 볼랑주를 유혹하는 일은 너무 쉽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성곽처럼 견고하고 순수한 투르벨 부인을 유혹하는 임무를 스스로 창조한 발몽. 그는 어떤 유혹의 언어와 몸짓에도 꿈쩍하지 않는 투르벨 부인의 단단한 이성의 장벽을 허물어버리기 위해 고심 중이다. 자신이 발몽의 사랑을 돕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 ‘게임’ 자체의 흥미에 빠져 있는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은 제자에게 비기(秘技)를 전수하는 스승처럼 발몽에게 투르벨 부인을 유혹하는 기술을 설명한다.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남자의 또 다른 사랑을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이 질투의 늪에 빠져 고통스러워할 미래의 참담한 아픔도 상상하지 못한 채.
그런 수법은 어린애들한테나 통하는 겁니다. “사랑해요”라고 쓴다는 건 “당신 뜻대로 하세요”라는 말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린애들 말입니다. (……) 당신은 사랑에 있어서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 걸 글로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당신이 쓴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너무도 질서정연해서 문장 하나하나가 당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잖아요. (……) 말을 하려면 신체기관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감정이 담기게 되죠. 눈물이 주는 힘까지 보탤 수 있고요. 눈빛은 욕정의 표현을 곧 애정의 표현과 섞어버리죠. 또 말은 글에 비해 일관성이 떨어지지만, 오히려 더 어지럽고 무질서한 사랑의 분위기를 훨씬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는걸요(이게 바로 사랑의 웅변이죠). 더구나 사랑하는 상대가 눈앞에 있는데 깊이 생각할 틈이 있겠어요? 바로 정복당하고 싶어진답니다. (……) 그래도 한 가지 당신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해주는 게 있기는 합니다. 그 여자가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힘을 쓰고 있다는 거죠. 자기가 한 말이 뭔가 트집잡히게 될까봐 그야말로 온 힘을 쓰고 있더군요.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위험한 관계』, 문학과지성사, 2007, 93~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