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vs 『동물농장』 ②
‘규칙’이 인간을 파괴하는 순간들
인간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이오. 인간은 우유를 생산하지도 못하고,
달걀을 낳지도 못하며, 너무 약해 빠져서 쟁기를 끌지도 못할뿐더러,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
달리지도 못하오. 인간은 동물들에게 일을 시키며, 겨우 굶어죽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먹이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 몫으로 챙겨버리오. 우리 노동으로 땅을 경작하고, 우리 똥으로 땅을
비옥하게 하지만 우리는 이 헐벗은 가죽 외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소. (……) 앞에 앉은 젊은
돼지들에게 한 마디 하겠소. 당신들은 모두 일 년도 못 되어 도살장에서 목숨만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를 것이오. 우리 모두는 그 두려운 순간을 맞게 될 것이오.
-조지 오웰, 최희섭 옮김, 『동물농장』,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34~35쪽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해 만든 대부분의 규칙들은 처음에는 평화나 효율을 위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규칙에 얽매여 평생 살아가다 보면, 사람이 규칙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규칙이 사람을 만드는 끔찍한 역설이 일어난다.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은 불합리한 규칙들 앞에서 왜곡과 변형 과정을 겪는다. 외국 여행을 떠나 느끼는 해방감, 내가 누구인지를 숨긴 채 활동할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 속에서의 해방감. 이런 가상의 해방감은 우리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가 강제하는 각종 제도나 명령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 아닐까.
규칙은 인간을 길들일 수는 있지만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토마스 모어가 그려낸 유토피아에는 ‘규칙이 있되, 누구나 이해하고 외울 수 있는 쉽고 간단한 규칙’밖에 존재하지 않아서 변호사나 판검사가 그다지 대접받지 못한다. 법을 ‘권력’으로 사용하지 않을 만큼 성숙한 사회가 바로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이 세상 끝까지 탈주해서라도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찾고 싶었던 걸리버, 위험천만한 혁명을 감행해서라도 ‘동물의 자유와 인권’을 찾고 싶었던 동물농장 식구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도 아마 규칙이 최소화된, 누구나 자신의 욕망과 인격에 따라 행동해도 전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였을 것이다.
걸리버는 소인국, 거인국, 움직이는 섬의 나라, 말의 나라 등을 탐험하며 자신이라는 엄청난 ‘이방인’을 다루기 위해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대응책을 바삐 마련하는지를 확인한다. 소인국은 처음에는 걸리버의 모든 행동들을 난해한 서커스쯤으로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를 ‘인간 병기’로 써먹기로 결정하고 모든 인접 국가의 선박을 강탈해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걸리버의 체구 정도라면 수많은 선박들의 ‘인양선’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걸리버는 ‘인간들과는 좀 다를 줄’ 알았던 소인국의 왕에게서 인간과 똑같은 제국주의적 야망을 읽어내고, 드디어 소인국을 떠나기로 한다. 걸리버는 소인국 사람들이 만든 명령과 규칙에 완전히 포획되기 전에 재빨리 소인국을 탈출한 셈이다.
‘권도(權道)’라는 말이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도를 이르는 말이다. 물론 ‘권도’만이 횡행한다면 위엄도 질서도 없는 공동체가 되겠지만, 현명한 통치자는 권도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지혜와 내공을 증명하게 마련이다. 걸리버가 처음 만난 소인국 왕은 충분히 ‘거인 발견’이라는 돌발 상황 앞에서 슬기로운 권도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소인국 왕은 걸리버를 죽이거나 해치려고 하는 수많은 릴리퍼트인들, 그를 질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모든 소인국 사람들로부터 걸리버를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걸리버가 자신의 지배욕을 채워줄 수 있는 훌륭한 인간병기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걸리버를 인격체가 아니라 ‘도구’로 격하시키고 만다. 궁궐에 큰 불이 났을 때 자신의 거대한 ‘오줌발’로 불을 끈 걸리버의 ‘권도’조차 삼엄한 규칙의 처벌 대상이 된다. 릴리퍼트 왕국의 ‘규칙’에 따르면 왕궁 근처에서 소변을 눈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그 장엄한 궁전은 이제 전소하고 말 터인데, 다행히도 내가 침착성을 잃지 않고서 묘안을 궁리해냈다. 그날 밤에 나는 ‘글리미그림’이라는 맛좋은 포도주를 많이 마셨는데 오줌이 많이 나오게 하는 술이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나는 장시간 동안 오줌을 누지 않은 상태였다. 불을 끄려고 하면서 받은 열로 인해서 이제 오줌이 아주 마려웠고 그래서 엄청난 양을 방출했는데 적절한 지점으로 쏟았기 때문에 불은 3분 만에 완전히 진화되었고 따라서 여러 세대를 통해서 건축된 다른 장엄한 궁궐도 보존될 수 있었다. (……) 그 나라 법에 의하면 어떠한 신분의 사람이라도 궁내에서 소변을 보면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황제가 나에 대한 사면을 대법관에게 명했다는 전갈을 나중에 받고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 황후는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극도로 혐오감을 느껴서 궁궐의 가장 먼 쪽으로 이사를 가버렸고 원래의 거처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며 그녀의 시녀들이 있는 자리에서 나중에 복수할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조너선 스위프트, 박용수 옮김, 『걸리버 여행기』, 문예출판사, 64~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