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vs 『동물농장』 ⓛ
‘정상적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1. 두 발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 중에서
동물농장의 각종 짐승들이 모여 규탄한, 인간에게서 배워서는 안 되는 인간다운 것들의 목록이다. 만약 『동물농장』 21세기 버전이 새로 나온다면, 오늘날의 첨단 기계화된 문명에서는 몇 개의 항목이 더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8. 어떤 동물도 인터넷을 검색해서는 안 된다. 9. 어떤 동물도 휴대폰을 가져서는 안 된다. 10. 어떤 동물도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람들을 ‘인간답게, 그리하여 지나치게 소유와 지배의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로 만드는 대표적인 것들을 조지 오웰의 시대에는 옷, 침대, 술 등으로 보았다. 오늘날에는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조건’의 항목이 좀 더 까다롭고 복잡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동물농장의 일원’으로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총파업을 꿈꾸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강자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만드는 인간 사회의 본질은 똑같지 않을까.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제도, 법률, 각종 규칙이 전혀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그 모든 규칙들 중 몇 개나 자발적으로 지킬 수 있을까. 그 규칙의 정당성을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규칙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단지 이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단지 우리들 각자가 어떤 직업이나 각종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인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지켜내는 규칙들이 얼마나 많을까. 왜 우리는 개인의 취향의 문제에는 지극히 엄격하면서도, 거대한 집단의 규칙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가. 음악이나 미술이나 심지어 금연 같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에 있어서는 마치 ‘성역’이나 되는 듯 노발대발 하면서도, 어떤 제한 규정들이 ‘집단의 규칙’이라고 명시되는 순간 사람들은 쉽게 저항을 포기한다. 에이, 어쩔 수 없지. 그래, 내가 참아야지, 별 수 있겠어?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우리를 꿈꾸지 못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우리를 규칙 뒤로 숨게 하는가.
『걸리버 여행기』와 『동물농장』은 인간의 규칙, 인간의 문법,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개인의 드라마틱한 방황을 그려낸다. 내가 나와 비슷한 크기의 인간들이 없는 곳에서 완전한 ‘별종’으로 살아간다면, 내게는 어떤 규칙이 부과될까. 어디에도 구속되고 싶지 않은 걸리버는 가족과 친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남으로써 ‘자아’라는 고정된 정체성의 감옥을 벗어나려 한다. 『동물농장』의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감수해왔던 모든 고통, 그리고 자신들의 주어진 정체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단지 동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할 갖은 노역과 굴욕을 벗어날 수는 없는가. 인간의 규칙, 인간의 일상,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탈주하려는 걸리버와 동물농장 식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거인국 여성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옷을 전부 벗고서는 알몸을 드러내고서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그러는 동안에 화장대 위에 올라서 있어서 그녀들의 나신을 훤히 바라다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전혀 성적인 욕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었고 공포감과 혐오감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녀들의 피부는 가까이서 보면 아주 거칠고 울퉁불퉁했으며 여기저기로 접시만 한 넓이의 반점이 박혔고 노끈보다도 더 굵은 털이 달려 있었다. 그러니 그녀들의 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도 없는 거다. 그리고 그녀들은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전혀 거리끼지 않고 소변을 보았다. 그 양이 엄청났는데, 큰 술통 세 개를 합쳐놓은 것보다도 더 큰 통에 엄청난 양을 쏟아내었다. 시녀 중에서 가장 예쁘고 나이는 열여섯 살이었던 여자가 가끔씩 나를 자기 젖꼭지에 걸터앉히는 장난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짓궂은 장난도 했는데 그것을 이 책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못하는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조너선 스위프트, 박용수 옮김, 『걸리버 여행기』, 문예출판사, 2010, 150~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