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vs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⑦
‘나’에서 ‘무엇’을 빼면 시체가 된다?
난 자네를 숭배했지.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사람을 질투하게 되었어. 자네를 오직 내 소유로 삼고 싶었으니까. (…) 난 다만 완벽한 것을 마주보았다는 것과, 내 눈앞의 세상이 아름다워졌다는 것만 알았다네. 너무나 아름다워서 어쩌면 그러한 열광적인 숭배에는 위험이 따른다네. 그것을 간직하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위험이랄까.-오스카 와일드, 김진석 옮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216쪽
우리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나누어 사고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단점을 없애고 장점을 확대할 수 있다면 좀 더 바람직한 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의 본성을 이것과 저것으로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장점이든 단점이든 그것은 사후적 해석의 문제가 아닐까. 선악미추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본성을 체에 걸러내듯이 선/악/미/추의 그릇에 각각 나누어 담을 수 있을까.
도리언 그레이와 지킬 박사는 점점 ‘시각 중심’으로 재편되어가는 세계의 우울한 자화상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것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예술가 바질은 도리언 그레이가 ‘따로 떼어내어’ 인식하지 못했던 그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그림’이라는 형태로 구체화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수많은 속성들 속에서 유독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순수하게(?) 증류하고 추출해낸 것이다. 이렇게 ‘존재’로부터 외따로 분리된 ‘미(美)’라는 왜곡된 환상에서 비극은 시작된다. 헨리는 이 초상화에 더할 나위 없는 ‘비평’의 칼날을 들이댐으로써 주체(도리안)에게서 ‘분리’된 외적 아름다움을 숭고한 대상, 절대적 예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주위를 둘러보자 외롭던 어린 시절의 매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도리언은 소년 시절 자신의 순진무구함을 떠올렸는데, 그러자 바로 그곳에 자신의 운명적인 초상화를 감춰놓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집 안에서, 남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에서 벗어난 안전한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 자신의 영혼이 소름끼치게 타락해가는 모습을 굳이 살펴볼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스카 와일드, 김진석 옮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217쪽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이 ‘아름다운 얼굴을 빼면 시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전체성으로부터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을 분리시키고 타자화시키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 숭배는 곧 아름다움조차 타자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악행에 찌들어도 변치 않는 자신의 비현실적 아름다움에 길들여진다. 차라리 가끔씩 ‘현실적으로’ 늙고 추해져가는 자신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문득 뜨거운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젊음과 낭만과 순수와 가능성으로 충만했던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초상화(분신)는 늙고 추해지고 훼손되더라도 자신의 진짜(?) 육체만은 완벽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 이 욕망을 심어준 타자, 바질과 헨리는 도리언 그레이의 아름다움을 알아봤지만 그의 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라는 한 인간의 ‘삶’ 자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림으로 추상화된 아름다움, 예술의 이름으로 증류된 아름다움은 광기에 사로잡히기 전의 도리언이라는 한 인간 자체보다 훨씬 ‘덜’ 아름답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장점’은 확장시키고 ‘단점’은 뜯어고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 장점과 단점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단점을 삭제한다면, 그것이 온전한 ‘나’일 수 있을까. 사람들 제각각의 ‘나다움’은 저마다의 결핍과 불균형과 부조화를 간직했기에 비로소 ‘자신의 라이프스토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정신이 똑바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별것도 아닌 자극에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겠는가. 나는 마치 아픈 아이가 장난감을 부수듯 그렇게 비이성적인 정신 상태에서 발작을 한 것이다. 아이와 달리 나는 자발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인간의 모든 본능을 벗어버렸고, 따라서 최악의 인간도 그 균형 감각덕분에 유혹 속에서 꿋꿋이 버틸 수 있는 데 반해, 나는 아주 작은 유혹에도 그대로 굴하고 말았다. (…) 쾌감에 몸을 떨며 저항도 못하는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한 대 한 대 칠 때마다 환희를 맛보았다. (…) 헨리 지킬이 되어서야 감사와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맞잡은 두 손을 신을 향해 올렸다. 방종의 베일이 머리끝에서 발끝가지 찢어지면서 나는 내 삶 전부를 되돌아보았다. (…) 하지만 기도를 올리는 가운데서도 그 사악한 죄의 흉측한 얼굴은 내 영혼을 노려보고 있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박찬원 옮김, 『지킬 박사와 하이드』,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120~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