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vs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⑥
‘악의 정수’를 찾는 기술?
내 안의 악마는 오랫동안 우리에 갇혀 있었고 포효하며 뛰쳐나왔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박찬원 옮김, 『지킬 박사와 하이드』,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119쪽
그는 캔버스 위의 사악하고 늙어가는 얼굴을 들여다 보가다, 다시 잘 닦인 거울 속에서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는 젊고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처럼 극명하게 대조적인 모습은 그의 쾌감을 자극했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점점 더 반했으며, 그 자신의 영혼의 타락에도 점점 더 흥미를 품게 되었다.
그는 주름진 이마에 낙인처럼 그려진 선인, 지독하게 관능적인 입가에 스멀거리는 선을
세심하게 살펴보았고, 가끔은 괴기하고 무서운 환희를 느꼈으며,
가끔은 죄악의 징후와 노화의 징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끔찍한지 궁금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하얀 손을 초상화의 거칠고 부은 손 옆에 나란히 놓고서
미소 짓기도 했다. 초상화의 흉해진 신체와 수척해진 손발을 그는 비웃었다.
-오스카 와일드, 김진석 옮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225쪽
가장 아름다운 눈, 가장 아름다운 코, 가장 아름다운 입술, 가장 아름다운 얼굴형. 이 모든 것을 합성하면 과연 아름다운 얼굴이 탄생할까. 또는 ‘범죄형’의 눈, 코, 입을 합성하면 ‘평균적인 범죄자 유형의 인류학적 특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결핍을 바라볼 때, ‘저 사람의 성격과 이 사람의 재능을 합치면 정말 이상적인 조합이 되겠다’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인간의 특성들 중 일부를 ‘발췌’하여 이상적인 인간형을 ‘조합’하는 연구들은 대부분 기대 이하의 성과를 가져왔다.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의 ‘부분’들을 조합한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고, 범죄형 얼굴의 표본 같은 것도 대중의 보편적인 동의를 얻기 어려웠다. 물론 현실에서 ‘이 사람의 성격’과 ‘저 사람의 재능’이 이상적으로 합성되는 일도 일어나기 어렵다. 인간의 전체를 퍼즐 조각처럼 분리하여, 그 파편화된 ‘속성’을 또 다른 존재에 기입한다는 상상이야말로 끔찍한 우생학적 상상력이 아닐까.
‘합성사진법’ 시스템을 이용한 실험의 대가였던 프랜시스 골턴은 인간의 범죄 성향을 눈으로 식별해낼 수 있는 ‘악의 정수’를 포착하고자 했고 그 실험 결과를 「인간 재능 연구」(1883)에 실었다. 그는 찰스 다윈의 사촌이며 ‘우생학’이라 불리는 ‘과학’을 주창한 사람이기도 했다. 우생학은 과학적인 법칙을 사용한 ‘선택적인 번식’을 통해 건강한 인구 증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 학문(!)이었고, 이것이야말로 파시즘의 정치적 무기가 된 학문이었다. 그는 건강한 사람, 폐결핵 환자, 범죄자의 이미지를 각각 수집하여 엄격한 ‘통계학’을 적용한 뒤, 각 유형의 ‘평균적인 인상’을 결정하려 했다. 바로 여기서부터 우생학이라는 지식의 폭력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평균적인 인상이라는 것, 그 인상을 과학의 이름으로, 통계학의 명목으로 ‘판단’하여 ‘차별의 근거’로 만들려는 시도야말로 우생학적 폭력이 탄생하는 지점이었다. ‘더 나은 인간상’, ‘더 나은 인종’이 존재할 수 있다는 환상이야말로 우생학의 심리적 근거였다. 그리고 이 우생학의 또 다른 원군(?) 중에는 ‘골상학’ 혹은 ‘관상학’이라는 학문이 관여하고 있었다. 물론 골상학과 관상학이 좋은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이 우생학과 공조할 때는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공통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환상도 바로 골상학과 관상학이다. 하이드의 ‘끔찍한’ 외모, 도리언 그레이의 ‘우월한’ 외모를 바라보는 등장인물의 시선이야말로 두 작품이 근거하고 있는 공통된 환상이다. 사람들은 하이드의 ‘기이한’ 외모를 바라보자마자 소름이 끼친다고, 잠시라도 그의 얼굴을 보는 일만으로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외모’ 속에 하이드의 ‘악의 정수’가 이미 체현되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외모와 인상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의 겉모습이 그의 모든 삶을 대변한다는 인식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도 드러난다. 도리언 그레이의 비극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 또한 그의 ‘지나친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레이의 악행과 비리가 쌓여갈수록 점점 끔찍하게 변해가는 초상화야말로 그의 라이프스토리를 대변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외모를 보면 뭔가 정상이 아닙니다. 뭔가 불쾌하고 뭔가 아주 혐오스러워요. 이렇게 싫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는데 그 이유를 딱히 알 수가 없어요. 어딘가 기형인 게 분명해요. 어디라고 꼬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하여튼 기형의 분위기가 강하게 납니다. 정말 특이하게 생긴 사람인데 저로서는 도저히 묘사할 수가 없네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박찬원 옮김, 『지킬 박사와 하이드』,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35쪽
하이드는 창백하고 왜소했다. 정상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딱히 어디가 기형이라고 꼬집어낼 순 없었다. (……) 그자는 도무지 인간 같지가 않았어! 원시 야만인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옛날이야기의 펠 박사 같은 것? 아니면 밖으로 배어 나와 육체까지 변형시킨 사악한 영혼의 발현일까? 후자인 것 같다. 오, 불쌍한 내 오랜 친구 헨리 지킬, 내가 악마의 모습을 한 얼굴을 보았는데 그가 바로 자네의 새 친구라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박찬원 옮김, 『지킬 박사와 하이드』,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