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 vs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①
마음의 ‘뒷문’으로만 출입하는 어두운 욕망의 그림자
범죄라는 건 오로지 하류층의 전유물이지. 난 그들을 조금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네.
그들의 범죄는 우리의 예술과도 같이 단지 특별한 감동을
얻게 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해.
―오스카 와일드, 김진석 옮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341쪽
현대사회의 히트 상품 중 어떤 ‘원자재비’도 들어가지 않는 최고의 수익 상품(?)은 바로 ‘스캔들’이 아닐까. 인간 욕망의 어두운 단면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파파라치’가 물밑에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그들이 편찬하는 유명인의 ‘비밀 백과사전’에 서서히 중독되어 왔다. 잘 나가는 유명인이라면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양 꺼림칙한 스캔들 하나쯤은 ‘필수품’이 되어버렸고, 끔찍한 스캔들은 언제든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시한폭탄처럼 인식된다. 스캔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현대인은 스캔들을 ‘가십거리’로 내심 기다리면서도 스캔들의 영향력을 예전보다 훨씬 두려워하게 되었다. 유명인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언제든지 스캔들은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그 사회적 장치는 바로 인터넷의 악플이나 휴대전화의 동영상 기능이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스캔들의 제조자, 배포자, 그리고 향유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셈이다. 현대사회는 추문을 상업적으로 조장하면서 동시에 추문에 휘말리는 것에 대한 병적인 공포도 함께 증가하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닐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추문’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두 작품은 모두 ‘끔찍한 스캔들’을 일으키는 인간의 ‘억압된 욕망’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좌절된 욕망의 은신처’를 따로 마련하여 ‘저급한 욕망’과 ‘우아한 욕망’을 분리하는 전략을 추구한다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어떤 욕망의 잔여물도 남지 않도록 ‘당신의 모든 욕망을 실현하라’고 부추기는 극단의 쾌락주의를 추구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는 도시인의 ‘체면’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예술가의 ‘미학’이 최상의 화두로 떠오른다. 사회적 명망을 잃고 싶지 않은 지킬박사가 자신의 ‘저차원적 욕망’을 대변하는 존재 ‘하이드’를 필요로 했다면, 자타공인의 위대한 예술가 바질은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투사할 환상적 뮤즈, 그리스 조각처럼 완벽한 외모를 지닌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필요로 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각종 스캔들과 악플과 폭탄 고백으로 범람하는 미디어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텍스트다. 타인의 비밀을 스캔들로 제조하여 상품화함으로써 시청률을 올리고, 그 스캔들로 인한 대중의 악플을 또 다시 이중삼중으로 상품화하는 매스미디어. 현대인은 명예와 지위를 소유하기 위해 ‘저차원적인’ 욕망을 애써 억누르다 어느 순간 자신의 우아한 체면의 가면을 벗을 기회만 생기면 ‘욕망의 뒷문’으로 빠져나가며 무수한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중인격이나 다중인격은 단지 특이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요구받는 모든 현대인에게 잠재된 위협이다. 우리가 차마 타인에게 보여주지 못한 욕망들,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내면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욕망의 잔여물들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를 때 청부업자를 고용하여 자신과 자신의 명예는 보호해왔다. 나는 스스로 범죄를 행하며 쾌락을 느낀 최초의 사람이었다. 나는 대중 앞에서는 존경할 만한 품위를 유지하다가, 한순간 어린 학생처럼 그런 빌려 입은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자유의 바다에 뛰어들 수 있는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철저한 장막 뒤에서 내 안전은 완벽했다. 생각해보라. 나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인물이다! 연구실 문 안으로 피한 후 항시 준비해 두었던 약을 단숨에 섞어 마시기만 하면 되었다. 에드워드 하이드가 무슨 짓을 했든 그는 거울 뒤의 입김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박찬원 옮김, 『지킬박사와 하이드』,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