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vs 『제인 에어』 ③
3. 그녀는 저항할수록 아름답다?
“제가 감정이 없기 때문에 애정이나 친절이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전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게다가 당신은 인정사정이 없어요. 나를 매정하게 짐짝처럼 붉은 방에
처넣어서 가두어두었던 일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 샬롯 브론테, 유종호 옮김, 『제인 에어』, 민음사, 2004, 62쪽.
우리는 가정에 어울리는 여성을 원한다. 그런데 그녀(샬롯 브론테)의 인물들은 여자답지 못하다.
그들은 겸손한 절제를 무시하고 얌전한 조심성을 경멸하며
독립적이고 예법을 경시한다.
- 앤 모즐리(Ann Mozley), 『제인 에어』의 출간 당시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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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글쓰기와 출판이 ‘공중 앞에 발가벗고 나서는 일’로 지탄받았던 시절, 『제인 에어』는 혜성처럼 나타나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제인 에어』에는 ‘자서전(Autobiography)’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제인 에어』는 이제는 ‘제인 로체스터’가 된 그녀가 결혼 10년 만에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되돌아보는 자전적 구성을 취했다. 『제인 에어』의 반응이 뜨거웠던 만큼 샬롯 브론테를 향한 비난 여론도 거셌다. 제인 에어는 당시 여성 최고의 영예였던 ‘가정의 천사’가 되기에는 ‘부적절한’ 인물이라는 이유였다. 게다가 이 작품이 ‘자서전’으로 읽혔기에 더욱 가혹한 비난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자서전’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독자들에게 ‘모방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더욱 지탄받았던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여성적 미덕, 그러니까 ‘애교’나 ‘귀염성’이 없다. 그녀들이 저항하는 대상은 단지 ‘남성의 유혹’이 아니라 ‘옳지 않은 모든 것’이다. 제인 에어와 엘리자베스 베넷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지나치게 당당하게(?)’ 주장하여 뭇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제인 에어』가 발표되던 시절, 여성이 ‘글’을 통해, 그것도 책을 통해 말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었다고 한다. 『주홍글씨』의 작가 나다니엘 호손은 책을 출판하는 여성들이 ‘품위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대중 앞에 완전히 발가벗고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을 뿐 아니라 자기 아내가 여성 작가가 되지 않음으로써 ‘대중에게 몸을 팔지(prostitute) 않은 것’이 고맙다고까지 선언했을 정도다. 여성이 ‘에티켓’이나 ‘완곡어법’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진심을 가감 없이 말한다는 것, 그 억눌린 말의 소용돌이를 글로 표현한다는 것, 게다가 그 글을 책으로 출판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도발이고 파격이고 혁명이었다.
“엄마가 그러는데 넌 군식구래. 넌 돈도 한 푼 없어. 너의 아버지가 물려준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이다. 사실은 너는 비럭질을 할 처지인 거야. 우리 같은 양갓집 자녀들과 함께 살고, 우리와 똑같은 식사를 하고 또 엄마의 돈으로 옷을 사 입을 처지가 못 돼. 내 책장을 뒤지면 어떻게 되나 본때를 보여줄 테다. 책은 모두 내 것이야. 이 집은 모두 내 것이야.”(…) 날아온 책에 맞아 나는 넘어졌다. 머리를 문에 부딪쳐 다쳤다. 상처에서는 피가 나고 몹시 쓰렸다. 공포심의 고비를 넘기자 다른 여러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다.
“고약한 심술쟁이 같으니라고! 너는 꼭 인간 백정 같아. 노예 감독관 같다고. 꼭 로마의 폭군 황제 같아!”
- 샬롯 브론테, 유종호 옮김, 『제인 에어』, 2004, 14쪽.
고아가 된 제인 에어가 ‘얹혀살던’ 존 리드의 집. 그녀는 걸핏하면 존과 리드 부인에게 구박을 당하며 살아왔지만 오늘만은 견딜 수 없다고 느낀다. 단지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을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우락부락한 덩치의 존이 던진 책에 맞아 쓰러진다. 그녀는 힘없는 소녀다. 가족도 돈도 ‘든든한 빽’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책에서 배운 지식을 십분 활용해 폭군 같은 존 리드에게 굴욕감을 안겨주는 데 성공한다. 어떻게 그 순간에 골드 스미스의 『로마사』가 생각났을까. 참을 수 없는 폭언을 듣고 견딜 수 없는 폭행을 당하던 순간, 어린 소녀 제인은 존이 네로나 칼리쿨라 같은 폭군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크게 소리 지를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존 리드에게 저주를 퍼붓는 자신을 발견한다. 천애 고아 제인 에어가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부당한 폭력을 향해 저항의 몸짓을 시작하는 순간. 저항의 대가로 그녀는 끔찍한 ‘붉은 방’에 갇히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결코 이길 수 없다고만 믿었던 거대한 상대를 제압한 달콤한 승리감을 체험한다. 이 집에서 도망쳐 나가든가, 식음을 전폐해서 자살을 하든가. 문득문득 이런 무서운 충동을 느끼던 소녀 제인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뜨거운 피의 존재를 실감한다. “내 피는 아직도 뜨거웠고 반란을 일으킨 노예의 기분이 뜨겁게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제인 에어의 자서전은 현저하게 반기독교적인 글이다. (…)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하고 끊임없는 인권에 대한 주장이 펼쳐지며 (…)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만의 어조가 널리 퍼져 있다. (…) 우리는 해외에서 권위를 전복시키고 신적인 모든 관례를 어기고, 국내에서 차티즘과 혁명을 촉진한 사고와 사상의 어조가 제인 에어와 똑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엘리자베스 릭비(Elizbeth Rigby), 『베너티 페어, 제인 에어, 그리고 여자가정교사』(1848) 중에서
“아주머니가 제 피붙이가 아니라는 게 참 다행이에요. 이제부터는 아주머니라고 부르지 않겠어요. 평생을 두고. 제가 다 큰 뒤에도 만나러 오지 않겠어요.”
- 샬롯 브론테, 유종호 옮김, 『제인 에어』, 2004, 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