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vs 『제인 에어』 ②
2. 우아한 여성을 원하십니까
감정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에서
이 여성들이 미처 갖추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백치미다. 제인 에어와 엘리자베스 베넷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기존의 어떤 여성들보다 날카로운 지성미로 승부했다. 문제는 제인 오스틴과 샬롯 브론테의 시대에 여성의 ‘똑똑함’은 결코 여성의 미덕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혼’이 여성에게 허락된 최고의 종신보험이었던 시대에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계급의 남성들과 사랑에 빠진다. 이 결혼의 핵심 동력은 바로 불평등이다. 그녀들이 좀 더 안전하게 사랑을 쟁취하는 방법은 당시 일반적으로 권장되던 여성미를 발산하는 것이었다. 당시 여성들에게 부과되었던 아름다움의 ‘권장사항’은 바로 고상함, 우아함, 그리고 예의범절이었다. 『오만과 편견』에서 콜린스 씨가 베넷가의 딸들에게 읽어주려고 했던 책도 바로 『미혼 여성들을 위한 설교집』이었다. 여성의 미덕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예의범절’이라고 가르치는 그런 책들. 제인 에어와 엘리자베스 베넷이 가장 싫어하는 ‘숙녀 되기 핸드북’들 말이다.
그녀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미의 정반대 방향으로 치달았다. 제인 에어와 엘리자베스의 전략 아닌 전략은 바로 비판적 지성에서 발산되는 치명적 매력이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듯한 천진무구한 눈빛이 추앙받던 시절, 그녀들은 온몸으로 말했다. 나에겐 당신 마음이 이미 속속들이 보인답니다. 그러니 감언이설로 나를 속일 생각은 말아요.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요조숙녀가 아니니까요. 난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히 말하고, 내가 원치 않는 것은 단호히 거부할 겁니다. 자신이 청혼만 하면 엘리자베스가 ‘당연히’ 넘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콜린스는 그녀의 당당함에 기가 질린다. “당신의 청혼을 거절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네요.”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할까요? 이제 나를 당신을 괴롭히려는 요조숙녀로 생각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진실을 얘기하는 이성적인 존재로 여기세요!”
외모나 몸가짐을 통해 ‘우아함’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은 엘리자베스의 ‘숙녀답지 못함’이 더없이 눈에 거슬린다. 아픈 언니를 간호하기 위해 3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뛰어서 달려온 엘리자베스. 빙리의 여동생 캐롤라인은 머리는 산발하고 옷에는 진흙탕이 잔뜩 묻은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경멸한다. 그녀에게는 발목이 빠지는 진흙탕을 3마일씩이나 혼자서 걸어온 엘리자베스의 진심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한테는 자립심을 과시하는 지독한 여자로밖에는 안 보이네. 시골에는 예법도 없는지, 원!” 카드놀이를 거부하고 책을 읽으러 가겠다는 엘리자베스를 허스트씨도 이해하지 못한다. “카드보다 책을 좋아해요? 거참 특이하네.” 요조숙녀의 모범답안처럼 고상하게 행동하는 빙리의 여동생 캐롤라인은 엘리자베스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엘리자베스 베넷 양은 카드놀이를 경멸하시지요.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으시고요. 오직 책에서만 즐거움을 찾으신답니다.”
산발을 하고 진흙투성이가 된 엘리자베스가 빙리 씨의 집에 도착했을 때, 다아시도 그녀가 그 먼 길을 혼자 걸어온 일이 과연 ‘분별 있는’ 행동이었는지 의심하지만, 빙리의 여동생 캐롤라인이 결코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언니의 안부를 걱정하며 진흙탕을 마다치 않고 걸어온 엘리자베스의 열기로 가득한 얼굴, 홍조 띤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무도회에서 처음 엘리자베스를 봤을 때는 “내가 관심 가질 만큼 예쁘지는 않아.”라고 단언했던 다아시. 그는 지금까지 보아온 우아한 숙녀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엘리자베스에게서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숙녀의 요건’이라는 외부적 규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에게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엘리자베스의 자부심은 아버지의 재산이나 화려한 드레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개성’에서 우러나온다. 그녀는 남자나 결혼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자신의 상태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개성과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다.
처음에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를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무도회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두 번째 보았을 때는 ‘흠’을 찾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예쁜 데가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아시 씨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검은 눈동자에 어린 아름다운 표정으로 인해 그녀의 얼굴이 무척 지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었지요. 이와 같은 굴욕적인 발견들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 엘리자베스의 말투가 상류층 예법에 어긋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편안한 농담에 끌렸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꿈에도 몰랐지요.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 씨는 어딜 가나 불쾌하게 행동하는 남자, 자기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춤도 같이 안 추려고 했던 남자일 뿐이었거든요.
- 제인 오스틴, 김정아 옮김, 『오만과 편견』,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