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vs <트리스탄과 이졸데> ⑤
5. 로미오의 후예들, 트리스탄의 제자들
남자는 평생 첫사랑의 그림자를 찾아 헤맨다지…
- 영화 <러브 레터>중에서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해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중에서
저쪽은 동쪽, 줄리엣은 태양이다.
-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상대방이 싫어진 것도 아닌데, 때론 사랑이란 것이 지겨울 때가 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권태기에 빠져서가 아니라, 사랑 자체가 지닌 필연적인 고통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닿을 수 없는 사랑의 이상을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 아무리 사랑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 안의 낯선 타자가 두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상대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란 것이 본래 지독한 감정노동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입력된 열정적 사랑은 본래 ‘전부’가 아니면 ‘제로’를 요구한다. 사랑은 극도의 쾌락과 극도의 고통을 동시에 수반하는 극한의 감정노동이다. 로미오와 트리스탄은 사랑이 미처 지겨워지기도 전에 생의 종말을 사랑의 클라이맥스로 역전시켜버렸다.
로미오와 트리스탄은 삶 전체를 연소시켜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만을 얻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랑의 모범답안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삶을 담보로 한 사랑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학이라는 삶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해 사랑의 극한까지 가볼 수는 있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자신으로부터 유체 이탈하여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사랑 때문에 인생을 깜빡 잊은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미친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왜 한 사람에게 이토록 소모적으로 감정을 낭비해야 하는지, 갑자기 감정의 주판알이 바쁘게 퉁겨질 때도 있다. 그 계산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사랑은 일상이라는 연료를, 인생이라는 희생제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과 ‘사랑’을, ‘당신’과 ‘세계’를 모두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어쩌면 사랑의 열정 때문에 인생을 탕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광기어린 열정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현대인의 결혼은 일종의 ‘계약’ 혹은 ‘거래’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트리스탄과 로미오는 미처 그 결혼이라는 ‘계약’의 정치경제적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결혼생활이라는 ‘일상’의 지리멸렬함을 깨닫기도 전에, 사랑이라는 열병 속으로 투신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여전히 로미오의 후예들과 트리스탄의 제자들이 만들어낸 로맨틱 러브의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다. 낭만적 사랑은 현실에서 충족할 수 없는 인간의 환상을 투사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의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쿨’한 척 하면서도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꾼다. 아주 사소한 일상의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조차 너무 많은 ‘조건들’을 따지는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사랑은 점점 더 ‘불가능한 오아시스’가 되어간다. 설령 다른 건 다 안 이루어져도, 사랑만은 이루어지기를, 이 시대의 순정파 로맨티스트들은 꿈꾼다. 때로는 영원히 닿을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환상으로, 때로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련한 희망으로. 너무 많은 곳에서 걸핏하면 좌절을 경험하는 현대인들, 도처에서 우울증과 자살의 기미를 목도하는 현대인은 이제 ‘사랑 밖에는’ 구원의 도피처가 없어져버린 것일까. 현대인에게 사랑은 종교를, 예술을, 때로는 삶 그 자체를 대체하는 절대적 위치에 올라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지면 둘 중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된다지만, 제발, 그게 내가 아니기를.
- 영화 <이프 온리> 중에서
1초는 영원이에요. 당신과 함께라면.
- 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 중에서
난 비록 죽으면 쉽게 잊힐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영혼을 바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 내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 영화 <노트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