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vs <트리스탄과 이졸데> ①
1. 불가능한 사랑의 파괴적 매혹
- 윌리엄 서머셋 몸
- 헨리 오스틴 돕슨
아, 저 여인은 횃불에게 더 밝게 타는 법을 가르치고 있구나!
-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본 순간
사춘기 시절, 내가 가장 오래 좋아했던 대상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상이었다. 그것도 실물이 아닌 교과서에 나온 담뱃갑 크기의 작은 사진 하나에 나는 넋을 잃곤 했다. 사춘기 시절 나는 가까이 살아 있는 사물에 무관심했고 멀리서 아련히, 간신히 느낄 수 있는 타자의 존재에 목말랐던 것 같다. 친구도 곁에 있어 매일 볼 수 있는 친구보다 이제는 연락조차 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친구를 더욱 좋아했다. 다비드 또한 그런 이유로 좋았던 것 같다. 다비드와 연락하거나 만날 수는 없으니까. 살아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절대로 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해 내 헛된 사랑은 빛났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끝나지 않는 갈망이 곧 사랑이라 믿었다. 어린 시절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그 무엇과 동의어였다. 아득히 먼 대상에 대한 대책 없고 속절없고 목적 없는 그리움을 나는 사랑이라 불렀다. 그것이 편견임은 알고 있었지만, 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편견이었다. 다가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사랑이라 믿게 한 비극의 대명사는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그들의 사랑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은 철천지원수의 인연으로 맺어진 가문의 역사 때문이었으니.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이 지닌 소름끼치는 아름다움을 두 팔 벌려 예찬하는 버릇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먼 곳을 향한 그리움,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에 집착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영원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였을지도 모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던 미적 허영 또한 마찬가지다. 끝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의 변명이 아니었을까. 이룰 수도 있을 사랑을 지레 이룰 수 없다고 단정하고는 혼자 아파하는 일에 중독된 것은 아니었는지. 맹목적인 대상을 향한 덧없는 열정은 아름다운 만큼 허망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사랑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아니라 나의 이상향을 살아 있는 인간에게 투사하는 낭만적 열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내가 그리는 그 이상적 이미지와 다르다. 그 다름은 내 사랑의 이상형을 타인에게 덮어씌우기 때문이지 그 사람의 탓, 그 대상의 탓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 사랑의 대상보다 사랑 그 자체를 더욱 사랑한다. 그 순간 파괴되는 것은 단지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의 내면일 것이다. 우리는 여신처럼 날개옷을 떨쳐입은 환상적인 대상을 향한 사랑을 예찬하느라, 된장찌개를 끓이고 수챗구멍을 청소하는 현실적 사랑이 지닌 아름다움을 간과한다. 불가능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면서, ‘여긴 내가 잠시 정박하는 곳이야.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이제는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았던 어린 시절처럼, ‘사랑은 역시 이루어지지 않아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꾸고 노력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 턱없는 우연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랑의 ‘현실’을 믿는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없었더라면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사랑의 낭만적 의미 또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비극적 로맨스의 전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올해의 가장 뜨거운 계절에는 멀어질수록 아름다운 사랑, 희망이 없을수록 신비로운 사랑의 비밀을 담은 두 고전을 만나보자. 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희망이 없을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비극적 로맨스의 대명사,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랑하는 여인을 ‘신’의 자리에 등극시키고 오직 그녀만을 줄기차게 숭배하는 사랑의 문화적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어떠한 위로의 말도 못들은 체 하며, 소경 두 사람이 더듬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가듯 오직 서로를 갈구할 뿐이었다. 그러나 헤어져 있으면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다가도, 자리를 함께 하면 첫 고백이 두려워 안절부절못하였으니, 그들은 헤어져 있을 때보다 만났을 때 오히려 불행하였다.
- 『트리스탄과 이즈』, 이형식 옮김, 지만지, 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