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vs <호밀밭의 파수꾼> ⑤
5. 매일 이별해야 만날 수 있는 것들
가면서 계속 울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울었다. 지독하게 외롭고, 우울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인류가 멸종하고,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상당한 재능을 지닌 어린 아이 하나만 남는다면, 이 아이는 사물들의 전체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야. 그 애가 신이 되어 수호신, 낙원, 계율과 금기, 신약과 구약, 모든 것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 거야.
-헤세, 『데미안』 중에서
‘어른’이 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조금만 늦어져도 ‘캥거루족’ 소리를 듣기 쉽고, 자식에 대한 ‘애프터서비스’가 조금만 길어져도 ‘헬리콥터맘’ 소리를 듣기 쉬워졌다. 부모로부터의 경제적?정신적 독립은 예나 지금이나 ‘성인’의 징표인 것 같다. ‘엄마 품에만 있으면 이렇게 편한데 굳이 힘들게 어른이 돼야 하는가’ 하는 어리광과 ‘엄마 곁에서만 탈출한다면 만사 오케이, 곧바로 어른이 될 것 같다’라는 극단적인 환상. 이 모두가 사춘기의 전형적인 고민들이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은 부모로부터 되도록 빨리 독립하려는 유형의 소년들이다. 싱클레어는 교양과 신앙으로 무장한 모범적인 부모님으로부터, 홀든은 동생의 죽음 이후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모님으로부터 하루바삐 독립하고 싶어 한다. 싱클레어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평생 자신이 가꿔온 신념의 울타리를 지키는 보수주의자이고, 홀든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유능한 가장’이긴 하지만 왠지 정서적 공감대를 찾기는 어려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아버지다.
싱클레어가 데미안 되기, 혹은 카인 되기를 통해 다소 극단적인 방식으로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났다면, 홀든의 기숙사 탈출과 뉴욕 탐험의 종착역은 엉뚱하게도 ‘집’이었다. 홀든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연락망을 검색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조금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찾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할수록 더 짙은 외로움을 느낀다. 비상금도 다 떨어지고,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어른들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도 사라져갈 때쯤, 홀든이 ‘학교’도 ‘집’도 아닌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떠나려는 결심을 굳히기 직전, 그에게 떠오른 것은 막냇동생 피비였다.
부모님께는 너무 송구스러워 작별인사조차 할 수 없지만, 사랑스런 여동생 피비의 얼굴만은 꼭 보고 싶은 홀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 몰래 잠입하는 이상한 모험 끝에 마침내 피비를 만난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어렵게 만난 피비는 오빠에 대한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이제 갓 열 살이 된 소녀 피비는 귀신 같이 오빠의 ‘퇴학’ 사실을 눈치 채고는 걱정이 태산 같다. 또 퇴학을 당하다니, 이번에는 아빠가 오빠를 죽이고 말 거라며 피비는 노심초사한다. 도대체 오빠는 뭘 원하느냐고, 왜 걸핏하면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칠 궁리만 하냐고 다그치는 피비에게 홀든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준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명장면, 여동생 피비에게 홀든이 자신의 꿈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 샐린저, 공경희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29~230쪽.
피비는 빈털터리가 되어 자신을 몰래 찾아온 오빠의 괴상한 고백을 열심히 들어주지만, 아빠가 오빠를 죽일 것만 같은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 소녀가 소중히 간직했던 크리스마스 용돈을 오빠의 손에 쥐어주며 작별을 고하자 홀든은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여동생의 품에 안겨 엉엉 운다. 홀든은 모든 것을 다 잃을 위기의 구렁텅이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그토록 필요로 했던 것을,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자신은 이미 다 가지고 있었음을. 내 이야기를 언제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내가 정말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다 할지라도 나를 비웃지 않고 조용히 응원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여동생 피비와 앤톨리니 선생님, 홀든의 첫사랑 제인, 홀든의 친형 D.B까지도.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들을 이미 다 가지고 있었는데, 다만 자신이 손을 내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홀든은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지만, ‘현재 스코어’ 진정한 호밀밭의 파수꾼은 오히려 열 살배기 여동생 피비가 아닐까. 언제 절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는 홀든 자신이고, 든든한 호밀밭의 파수꾼은 막냇동생 피비였다. 내가 가장 지켜주고 싶었던 소중한 대상이, 거꾸로 나를 지키고 있는 수호천사였음을 알았을 때. 우리는 우리가 진정 지켜줘야 할 존재가 무엇인가를 알기 시작할 때, 그리고 나를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기 시작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걸까. 지금은 오히려 어린 피비가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오빠를, 온힘을 다해 붙들고 있다. 홀든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온힘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