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vs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②
개츠비 vs 블랑시: 현실보다 더욱 생생한 환상의 매혹
“그녀(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해요.”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당신의 집은 세계 박람회장 같아 보입니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현실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환상의 성곽을 사수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시간’이 가장 큰 적수다. 시간이야말로 그들의 마음속에서만은 완벽하게 유지되는 몽상의 세계를 시시각각 파괴하는 무형의 적수다. 개츠비는 이 세상 모든 시계를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힘겹게 억누르고 있는 듯 보이며, 블랑시는 자신의 늙어가는 얼굴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남자는 꼭 밤에만 만난다. 블랑시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은 ‘몇 살이냐’는 물음이고, 심지어 자신이 여동생 스텔라보다 어리다는 억지를 부리기까지 한다. 개츠비는 강박적으로 자신의 엄청난 부가 시간의 흐름조차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물 쓰듯 돈을 써댄다. 시간이야말로 그들의 몽상을 위협하는 ‘냉혹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최고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지독히 가난했던 청년 시절 사랑했던 데이지를 갑부 톰 뷰캐넌에게 빼앗긴 개츠비. 그는 온갖 미사여구로 데이지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데 인색하지 않지만, 데이지의 아름다움이 ‘돈’에서 나오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집안 대대로 갑부였던 톰 뷰캐넌의 재산이 ‘오래된 부’라면, 뭔가 석연치 않은 루트를 통해 자수성가한 개츠비의 재산은 ‘새로운 부’였다. 개츠비의 모든 재산은 하나같이 ‘엄청 새것’ 위에 아주 얇고 비싼 ‘오래된 부’의 상징을 코팅한 것처럼 보인다.
개츠비의 재산은 급조된 키치적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데 철저히 소비된다. 예를 들어 개츠비의 대저택은 노르망디에 있는 어떤 시청 건물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이에 비해 톰과 데이지 부부의 집은 이탈리아식 정원이 있는 식민지 시대풍의 쾌적한 대저택이다. 둘 다 ‘모방’이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뷰캐넌 부부의 모방은 좀더 그럴듯한, 좀더 ‘오래된 계보’를 지닌 셈이다. 톰 뷰캐넌은 개츠비의 부의 원천이 급조되었다는 사실을 교묘히 조롱하곤 한다. 톰은 개츠비를 향해 “근본을 알 수 없는 무명인사”라며 비웃는 것이다.
개츠비의 대저택은 허영심으로 가득한 데이지를 다시 개츠비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환상의 테마파크처럼 꾸며진다. 파티를 연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을 잔뜩 끌어모아 개츠비는 하루가 멀다 하고 화려한 파티를 열어준다. 개츠비의 이웃이자 소설의 내레이터인 닉은 탑에서 지하층까지 환하게 불이 밝혀진 개츠비 저택의 요란한 인테리어를 보며 감탄한다. 당신의 집은 세계 박람회장 같다고. 개츠비는 데이지가 ‘아주 값비싼 상품’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걸어다니는 명품 매장 마네킹 같은 데이지의 끝없는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호흡하는 산소는 곧 ‘돈’임을 알면서도, 개츠비는 기꺼이 그녀의 ‘산소’를 제공하고자 한다. 누가 뭐래도 데이지는 개츠비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구원의 여신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급조한 이 화려한 연극 무대에서 결코 편안하게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그는 화려한 파티의 열기와 소란에서 항상 떨어져, 약간 어두운 곳에 희미한 실루엣으로 서 있다. 파티의 환상은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아름답다는 듯이,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땀냄새와 술냄새에 취하기는 꺼려진다는 듯이. 닉은 파티의 주재자이면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개츠비에 비해 어디서든 처음부터 주인공인 양 당당하게 등장하고, 어디서든 거리낌없이 ‘남을 부려먹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톰 뷰캐넌 부부의 잔혹성을 간파한다. 이 잔혹성은 마침내 개츠비를 파괴할 야만적 힘의 실체이기도 했다.
그들은 경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물과 사람을 산산이 부수어버리고, 그런 다음 돈이나 거대한 경솔함 또는 그들을 함께 묶어주는 건 무엇이든 간에 그 속으로 도망쳐버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말끔히 치우도록 하는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