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마다 관람객들에게 요구하는 준수사항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입장하는 관람객들에게 전시실 안으로 음식물을 반입하지 말 것과 사진 촬영 시 플래시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합니다. 플래시를 사용하는 경우 강한 빛이 작품에 손상을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플래시를 사용하면 안 되겠죠. 그런데 간혹 사진 촬영 자체를 금지하는 미술관들이 있습니다. “아니, 왜요? 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거예요? 다른 미술관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데 왜 여기는 안 되는 거예요?” 미술관 직원에게 항의해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불허하던 미술관들이 사진 촬영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Doria Pamphili Galleria이나 리움 미술관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다른 미술관들도 사진 촬영을 허용할지 모릅니다. 그러길 빌어야죠. 그런데 개별 미술관 차원이 아니라 거의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곳이 두 곳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과 러시아입니다.
아주 오래전,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에 처음 갔을 때는 자료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는 강박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진과 비디오 촬영이 금지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갔으니까요.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을 못 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품 관람과 자료사진 촬영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두 번째 방문 때 사진을 못 찍게 되자 망연자실을 넘어서서 화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구글 질문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저만 그랬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관람객은 사진을 찍지 말라며 쫓아다니고, 심지어 찍은 사진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프라도 미술관 직원에게 이유를 따졌답니다. 이유인즉슨, 작품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찐” 미술 애호가들이 제대로 작품 감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실제로 유명 작품들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작품이 가려져서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미술관이 사진 촬영 금지 정책을 고수할 때 내세울 수 있는 좋은 이유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인증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로 넘쳐나는 다른 대형 미술관들은 사진 촬영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이라 관람객들이 볼멘 불평을 할 수밖에 없죠. 프라도 미술관이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이유가 아트 포스터나 도록 같은 것을 많이 판매하려는 상술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댓글도 있더군요. 실제로 사진 촬영을 금지하면 기프트 숍 매출이 늘어난다는 조사결과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작품 보호 차원에서 사진 촬영을 금하는 걸까요?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진 촬영 때문에 작품이 손상될 수 있나요? 제가 직관한 미술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von Willendorf』입니다. 이 작품은 약 25,900년 전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11.1㎝ 높이의 작은 조각상으로 빈의 자연사박물관에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작품이 맞은편의 미술사박물관에 전시되면 더 좋을 것 같지만, 미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보다 역사적 유물로서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는 것 같습니다. 이 오래된 유물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박물관에서 사진 촬영을 못 하게 할까요? 전혀 아닙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프라도 미술관이 작품 보호 차원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고 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거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25,900년 전. 어란상 석회암, 높이 11.1cm. 자연사박물관, 빈. |
앞에서 스페인에서는 ‘거의’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술관에서의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거의’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국립미술관도 있기 때문입니다. 프라도 미술관 옆에 있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에서는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같은 국립미술관인데 왜 다른 정책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 저는 당연히 이곳 미술관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관람객이 별로 없는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갈 때 계단 꼭대기에 걸린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Christ Crucified』1632를 보며 당연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와, 이 그림 위치가 진짜 좋다. 감동적이야. 계단을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우러러볼 수 있게 그림을 걸어놓았네. 똑똑해.’ 이러면서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1632. 캔버스에 유화, 249 × 170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
이 그림 이후에 일곱 작품의 사진을 더 찍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가 그린 마하Maja 부인의 초상화들이 나란히 걸려 있는 방에 들어섰습니다. 당연히 사진을 찍어야죠. 카메라를 눈에 대고 그림을 마주한 순간 어디선가 직원이 나타나서 사진을 못 찍게 하더군요.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한참을 걸어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사진을 찍지 못할 것이라는 각오를 어느 정도는 하면서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이곳 미술관도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더군요.
사진 촬영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스페인의 미술관들과 달리 러시아의 미술관들에서는 좀 특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러시아에 다녀온 지 몇 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동안 상황이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러시아의 미술관에서는 돈을 내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상당히 충격적이었죠. 그래도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보다 돈을 받고 사진 촬영을 허용해 주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100루블2,000원 정도을 내야 합니다.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미술관에서는 구관과 신관현대미술관에서 각각 200루블4천 원 정도을 내야 하고요. 인터넷 댓글을 살펴보니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더군요. 매표소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입장권을 사면 카메라가 그려진 노란색 스티커를 줍니다. 이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다녀야 사진을 찍을 때 직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하지 않습니다. 특이하죠? 스티커 사진을 찍어뒀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구글에서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스티커 사진이 딱 한 장 있는데 저작권 설정이 돼 있어서 여기에 실을 수가 없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이곳을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모든 국립미술관이 사진 촬영 요금을 받지는 않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국립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Русский музей과 모스크바의 푸슈킨 미술관Музей изобразительных искусств имени А. С. Пушкина에서는 따로 사진 촬영 요금을 받지 않습니다. 같은 국립미술관인데도 왜 어떤 곳에서는 사진 촬영 요금을 받고, 어떤 곳에서는 받지 않는지 명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일관된 기준이 있다면 뭔가 추론이 가능할 텐데 딱히 기준이 있는 것 같지 않으니까요.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미술관에서도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대개 상설전시와 별도로 특별전시회를 엽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본관 전시관 내에서 특별전시회를 여는 경우가 간혹 있고, 주로 맞은편 건물에서 특별전시회를 엽니다. 런던의 국립미술관에서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 특별전을, 퐁피두센터에서는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 특별전을 봤습니다. 달리 특별전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작품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죠.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 특별전을 봤습니다. 한 작가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특별전의 매력이죠. 요즘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특별전이 늘어나고 있지만, 특별전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마에서 우연히 미국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1894~1978의 전시회에 들렀는데 여기도 사진 촬영 금지였습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전시회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작품을 대여해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경우에는 작품에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금지한다고 합니다. 금전적인 배상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는 거죠. 특별전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작권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대여해 온 작품들로 특별전을 여는 경우 해당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그 작품들에 대한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사진 촬영을 허용할 수가 없답니다. 직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전시회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더군요. 그때부터는 특별전에서 사진 촬영 금지라는 말을 들어도 덜 분개하게 됐죠. 그런데 미술관의 자체 소장품으로 특별전을 여는 경우에는 사진 촬영을 금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퐁피두센터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는 사진 촬영이 허용됐던 것 같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된 작품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작품 캡션에 보면 카메라 모양 위에 X 표시가 돼 있습니다. 이런 표시가 된 작품 캡션을 살펴보면 왼쪽 모서리에 붉은색으로 ‘重要文化財중요문화재’ 혹은 ‘重要美術品중요미술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그런데 어떤 ‘중요문화재’에는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없는 반면, 어떤 ‘중요문화재’에는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돼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번에도 역시 작품 캡션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있는 작품들은 어느 미술관에서 대여했다거나 개인소장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도쿄박물관의 소장품이면 ‘중요문화재’라 해도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반면, 대여한 문화재나 미술품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는 거죠. 대여해 온 작품들로 여는 특별전시회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도쿄국립박물관처럼 특정한 작품만 촬영이 금지된 박물관이 한 곳 더 생각났습니다. 베를린의 박물관 섬에는 다섯 개의 뮤지엄구박물관, 신박물관, 국립회화관, 보데 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 훔볼트 포럼과 한 개의 갤러리국립회화관가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 이 중 신박물관Neues Museum의 대표적인 소장품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흉상Nefertiti Bust』기원전 1345일 겁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일층독일식으로는 지층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전시실을 따라가다 보면 통로 끝에 전시실이 있고 입구 너머로 네페르티티의 모습이 보입니다. 멀리서 사진 한 컷. 가까이 다가가 입구 앞에서 다시 사진 한 컷. 이제 흉상 바로 앞으로 다가갑니다. 드디어 네페르티티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려는 순간 사진 속 직원이 사진 촬영을 제지합니다. 이 조각상은 사진 촬영 금지 대상이랍니다. 전시실 밖의 입구에서는 사진 촬영을 해도 괜찮은데 전시실 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다니 조금 어처구니없는 규정처럼 보이지만 박물관 나름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입구에서라도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지켜야 할 다른 준수사항에 대해서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진 촬영 금지뿐만 아니라 다른 것을 요청하는 미술관들도 있습니다. 바로 외투 보관입니다. 러시아의 미술관들 말고는 다른 미술관에서 이런 요청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러시아에 갔을 때는 두 번 모두 겨울이었습니다. 지하철 승객들 모두 영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1965의 등장인물들이 입었던 것 같은 모피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들어가서 입장권을 살 때 직원이 외투를 아래층 ‘클록룸cloakroom’에 맡기라고 하더군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 사항이랍니다. 좋건 싫건 관람객은 무조건 외투를 보관소에 맡겨야 하는 겁니다. 근처 러시아 국립미술관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네 세탁소의 몇십 배 크기인 두 미술관의 지하 ‘클록룸’에 털외투들이 가득 걸려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물품보관소도 규모가 상당히 크지만 러시아 미술관들의 ‘클록룸’에 비하면 크다고 말할 수가 없죠.
외투를 ‘클록룸’에 맡기는 것은 제가 방문한 러시아의 모든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준수해야 하는 공통된 규정이었습니다. ‘클록룸’ 규정이 생긴 것은 아마도 보안문제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두꺼운 외투 속에 무기를 숨기거나 작품을 훔쳐 나가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아닐까요? 이런 추측을 하게 된 것은 예르미타시 궁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예카테리나 여제Catherine the Great, 1729~1796 시절 방문객들이 무기를 맡겨 놓은 다음 궁전에 들어가는 전통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예르미타시에 들어오려면 오만한 마음과 직함, 칼은 왼쪽에 다 맡기고 들어오라!”라고 명했답니다. 지극히 한정된 소수의 사람들만 이 궁전에 들어갈 수가 있어서 ‘예르미타시은둔자의 집’라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미술관의 ‘클록룸’ 규정이 무기를 맡겨야 했던 옛 관례의 변형된 형태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러시아의 미술관들처럼 외투를 보관소에 맡기라고 요청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일정한 크기 이상의 가방을 들고 전시실에 입장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큰 가방은 반드시 물품보관소나 로커에 넣어야 합니다. 보관료를 받는 물품보관소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로커에 넣으면 됩니다. 그런데 로커를 사용하려면 현지에서 통용되는 동전이 필요합니다. 물론 로커 사용 후 동전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로커를 사용하려면 일단은 동전이 있어야 하는 거죠. 방문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마다 가방을 로커에 넣는 일이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닙니다. 물품 보관소에 가방을 맡겼다가 지갑을 분실한 경우도 있고요. 저도 처음에는 잘 몰라서 중간 크기의 백 팩을 메고 다녔는데 이제는 전시실 입장 시 무사통과할 수 있는 소형 백 팩을 메고 미술관에 갑니다. 외투와 마찬가지로 가방 크기 제한도 보안 문제와 연관이 있겠죠?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여러 가능한 이유들과 더불어 다른 규정들을 살펴봤습니다. 이 이유들이 여전히 100퍼센트 납득이 되지는 않죠? 그래도 앞으로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하거나 큰 가방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해도 오늘 저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시면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