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시절 옆방에 살던 제니는 “LA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이라거나 “LA에서 최고로 맛있는 식당”이라며 맛집을 소개해 주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LA의 모든 빵집과 식당에서 다 먹어 보고 그런 소릴 하는 거야?’라고 반문하곤 했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거나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처럼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사항에 대해 최상급 표현을 쓰는 것은 무방합니다. 그렇지만 ‘맛있다’라거나 ‘아름답다’ 같은 주관적 평가에 대해 아무런 제한 없이 최상급을 쓰게 되면 개인의 한정된 경험을 토대로 성급하게 결론에 도달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죠. 이렇게 ‘성급한 결론’이라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 영어에서는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는 형용사나 부사를 최상급으로 표현할 때면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에서I’ve ever eaten’ 혹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I’ve ever seen’ 같은 어구를 뒤에 붙이거나 ‘가장 ~한 사람혹은 것 중 하나one of the ~est noun(s)’ 같은 어구를 앞에 붙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본 그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the most beautiful painting I’ve ever seen’이라거나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the most interesting book I’ve ever read’, 혹은 ‘가장 위대한 시인(들) 중 한 사람one of the greatest poets’ 같은 식으로 표현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도 이 공식에 따라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파란색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인상적’이라는 단어가 꼭 ‘아름답다’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곳저곳 작품을 보러 다니다 보면 독특하고 아름다운 파란색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묻곤 하죠. ‘와, 저 파란색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다른 색보다 파란색에 대해 이 질문을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파란색이 다른 색보다 “그림자shades”가 더 많아서 그럴까요? ‘블루의 50가지 그림자’로는 파란색이 지닌 다양한 ‘색조shades’를 망라하기에 부족한 것 같습니다. ‘Fifty Shades of Grey’라는 책과 영화 제목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로 번역되어 있길래 아재 개그를 한번 시도해 봤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파란색 색조가 최대 270가지나 되는군요. 저는 사실 파란색 색상 이름을 잘 모릅니다. 겨우 몇 가지만 분간할 수 있을 정도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2006의 여주인공 안드레아하고 비슷한 수준입니다. 비슷해 보이는 벨트 색깔을 가지고 잡지사 편집장 미란다와 직원들이 법석을 떨자 안드레아가 웃음을 터뜨립니다. 미란다가 자신들의 일을 사소하게 여기는 안드레아에게 일침을 가하죠. “넌 네가 입고 있는 파란색이 뭔지도 모르고 있어…… 그 파란색은 그냥 파란색이 아니야. 파란색 중에서도 터쿼이즈Turquoise나 라피스Lapis가 아니라 정확히는 세룰리언Cerulean이야.” 색깔 이름도 모르면서 미술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저한테 하는 말인 것 같아 뜨끔했습니다. 안드레아와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지금보다는 파란색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겠죠?
앞글, 「이 파란색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①」에 대한 복습도 할 겸 첫 번째 인상적인 파란색 작품으로 멜로초 다 포를리Melozzo da Forlì, 1438~1494년의 『음악을 연주하는 천사들과 아기 천사들, 기도하는 사도들의 두상』1480년경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처음 본 곳은 바티칸의 피나코테카Pinacoteca에 있는 아트숍이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와 천사 뒤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아름다워서 원작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트포스터부터 구매했죠. 사실 아래 첫 번째 그림 속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천사인 줄도 몰랐고, 이 그림들이 다른 여러 점의 그림과 더불어 한 그림의 일부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전시실에 들어가서 나란히 걸려 있는 열네 점의 그림을 보고 나서야 그림 속 파란 하늘이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죠. 예수가 승천할 때 음악을 연주하는 천사들과 아기 천사들, 기도하는 사도들을 그린 이 작품은 원래 교회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랍니다. 승천하는 예수를 따라 시선이 하늘로 향하도록 원근법을 잘 살려서 그린 것 같죠? 이 프레스코는 훼손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1711년에 바티칸 미술관으로 옮겨졌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열네 점의 작은 조각들은 전체 그림의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다음 사진들을 보시고 각 조각 그림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하늘이 원작에서는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멜로초 다 포를리, 『류트를 연주하는 천사』, 1480년경. 프레스코, 101 × 70 cm. 피나코테카, 바티칸. |
멜로초 다 포를리, 『비올라를 연주하는 천사』, 1480년경. 프레스코, 113 × 91 ㎝. 피나코테카, 바티칸. |
열네 점의 조각으로 남아 있는 멜로초 다 포를리의 프레스코. http://www.museivaticani.va/content/museivaticani/it/collezioni/musei/la-pinacoteca/sala-iv---secolo-xv-xvi.html 제공. |
이쯤 해서 궁금해지지 않나요? 파란색 천연 안료에 대한 앞글에 대해 복습도 할 겸 질문드리겠습니다. 이 그림들 속의 파란 하늘색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바티칸 컬렉션: 교황과 예술The Vatican Collections: The Papacy and Art』 1982 같은 책에도 나와 있듯이, 하늘과 천사의 파란색 옷은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입니다. 설마 라피스 라줄리를 벌써 잊어버리신 건 아니죠? 이 그림이 전시된 전시실에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기독교 성화들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이 무렵에는 이미 교회가 라피스 라줄리의 사용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 전시실에 있는 그림들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라피스 라줄리로 그린 파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금색 바탕에 진한 파란색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 그림들 속에서, 환한 파란 하늘색을 바탕으로 녹색과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같은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사도들과 천사들의 모습은 단연 두드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릴 파란색 그림은 로마의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이탈리아어: Museo Palazzo Massimo Alle Terme에 있는 리비아 빌라Villa of Livia의 정원 벽화입니다. 리비아Livia Drusilla, 기원전 59년~서기 29년는 아우구스투스 황제Caesar Augustus, 기원전 63년~서기 14년의 아내입니다. 마시모 궁전 박물관에는 리비아의 빌라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딸과 재혼한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 기원전 63년~기원전 12년가 살았던 파르네시나 빌라Villa Farnesina의 방들도 있습니다. 리비아의 빌라 방들과 마찬가지로 사면이 프레스코 그림으로 덮여 있죠. 그런데 방마다 색깔이 다릅니다. 빨간색 방, 흰색과 녹색 방,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파란색 방 등 여러 색깔의 방이 있습니다.
파르네시나 빌라의 방, 기원전 1세기.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 로마. |
파르네시나 빌라의 방, 기원전 1세기.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 로마. |
방들이 모두 독특하게 아름답죠? 그런데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이집트의 왕묘 벽화들과 폼페이의 빌라 벽화들이 주로 붉은색이어서 그랬는지 다른 방보다 리비아의 빌라 중 정원 벽화가 있는 파란색 방이 더 신선하고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정원 벽화는 여름용 연회 ‘식당triclinium’에 그려졌더군요. 한여름의 열기를 피할 수 있도록 지하에 식당을 만들고, 시원함을 배가하기 위해 네 벽에 꽃이 만발한 가상의 정원을 그려 넣은 거죠. 제가 이 그림을 보고 시원함을 느낀 걸 보면 벽화를 그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습니다. 로마 시대의 벽화들은 크게 네 시기로 나눠서 1기구조적 벽화: 기원전 200~기원전 80년, 2기건축적 벽화: 기원전 60~기원전 20년, 3기장식적 벽화: 기원전 20~기원전 10년, 4기복잡한 벽화: 60~79년로 분류되더군요. 정원 벽화처럼 이차원의 벽에 원근법을 이용해서 삼차원적인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그려진 일종의 눈속임Trompe-l’œil 벽화는 2기 벽화에 해당합니다. 파르네시나 빌라의 방 벽화들은 3기 벽화에 해당하고요. 리비아의 빌라와 정원 벽화는 흙 속에 묻혀 있다가 1863년에 발굴됐답니다. 로마에서 1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이곳 프리마 포르타Prima Porta의 빌라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조각상이 발견됐죠. 역사학자 데이비드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로마는 테베레이탈리아어: Tevere 강의 잦은 범람으로 충적토에 묻혀 있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팔라티노이탈리아어: Palatino 언덕에 있는 옛 궁전 건물들에는 지면으로부터 한참 아래쪽에 1층이 자리 잡고 있고, 판테온 바닥 면은 골목길보다 한참 내려가 있습니다. 리비아 빌라의 정원 벽화는 1951년에 벽에서 떼어내 복원 과정을 거친 다음 1998년부터 마시모 궁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1세기경. 대리석.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ugustus_of_Prima_Porta_(inv._2290).jpg#/media/File:Augustus_of_Prima_Porta_(inv._2290).jpg 제공. |
리비아의 별장 정원 벽화 원형, 기원전 30~기원전 20년. 리비아의 별장, 로마. https://www.culturalheritageonline.com/location-4308_Villa-di-Livia.php 제공. |
이전된 리비아의 별장 정원 벽화, 기원전 30~기원전 20년.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 로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ivia_Prima_Porta_10.JPG#/media/File:Livia_Prima_Porta_10.JPG 제공. |
리비아의 별장 정원 벽화 중 한 벽면.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 로마. |
두 번째 사진은 리비아의 별장이 발굴됐을 당시 정원 벽화가 그려진 방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사진은 마시모 궁전 박물관에 전시된 정원 벽화 모습이고요. 둥근 천장은 그대로 옮겨오지 않은 것 같죠? 박물관의 전시실이 아니라 원래의 자리인 빌라 지하 방에 정원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은데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니 어쩔 수 없죠. 항상 그렇듯이 저는 벽의 삼면을 한 컷에 담는 기술이 없어서 「위키피디아」에 있는 사진으로 대신했는데 그림 속의 아름다운 파란색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찍은 마지막 사진이 실물에 가장 근접합니다. 눈이 시원해지지 않나요? 프레스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차분한 색감도 좋고요. 그런데 사실 이 정원 벽화에서 중심이 되는 색은 녹색입니다. 파란색은 녹색의 나무와 화초들 뒤에 배경인 하늘로 등장하고요.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 1947~ 의 『파랑의 역사Blue: The History of a Color』2001에 의하면 “파란색 계통은 로마 회화에 별로 많이 나타나지 않으며, 주로 그림의 배경색이나 바탕색으로 쓰였다. 그래도 기원 전후 1세기에 아주 유행했던 풍경화에서는 다소 연한 파란색이 선호됐는데 이 색깔은 위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동양에 존재할 거라고 상상했던 매혹적인 정원이나 천국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을 보고 동양의 매혹적인 정원이나 천국이 연상됐나요?
다시 질문 나갑니다. 유럽에서 파란색이 서서히 부상하던 시기에 그려진 이 정원 벽화 속의 파란색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음악을 연주하는 천사들 그림 속의 하늘처럼 라피스 라줄리일까요? 이 정원 벽화 속 파란색은 라피스 라줄리보다 색감이 더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매리언 콜Marianne Cole 같은 학자들에 의하면 이 파란색은 인류 최초의 합성 안료인 이집션 블루Egyptian Blue라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란색에 대한 수요는 많은 반면 라피스 라줄리의 공급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이산화 규소와 석회, 구리 및 알칼리를 섞어서 파란색 안료를 만들어 냈답니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거죠. 이집션 블루는 고대 이집트 제4왕조기원전 2613~기원전 2494년 때 만들어져 널리 사용되다가 그리스-로마 시대기원전 332년~서기 395년 이후 사라졌다고 합니다. 파란색 천연 안료에 관한 앞글에서 보여드린 호렘헤브Horemheb 왕묘 벽화기원전 14세기 속 파란색이 바로 이 이집션 블루입니다.
네바문 왕묘 벽화 속 이집션 블루, 18대 왕조. 대영박물관, 런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e_Jardin_de_N%C3%A9bamoun.jpg#/media/File:Le_Jardin_de_Nébamoun.jpg 제공. |
네바문 왕묘 벽화 속 이집션 블루, 18대 왕조. 대영박물관, 런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ombofNebamun-2.jpg#/media/File:TombofNebamun-2.jpg 제공. |
리비아 빌라의 정원 벽화 속 이집션 블루가 차분함과 청량감을 선사해 줬다면, 세 번째 작품은 제게 파란색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파란색 모자이크 하늘에서 파란색의 천국을 맛보았으니까요. 이 파란색에 대해서는 제가 쓸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이냐고요? 라벤나Ravenna의 산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에 있는 갈라 플라치디아Galla Placidia, 388~450 영묘靈廟, Mausoleum입니다. 영묘란 “죽은 위인이나 신격화된 인물의 영혼을 모시는 묘지”위키백과입니다. 사실 라벤나를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모자이크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자이크를 장식 공예 정도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물감으로 그릴 수 있는 그 어떤 그림보다도 더 아름다운 색채와 형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모자이크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라벤나에서는 도시 전체에서 모자이크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5~6세기경에 지어진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Basilica di Sant'Apollinare Nuovo, 클라세의 산타폴리나레 성당Basilica of Sant’Apollinare in Classe, 아리안 세례당Arian Baptistery, 산비탈레 성당에서는 아름다운 녹색과 금색 모자이크를, 네오니안 세례당Neonian Baptistery과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에서는 파란색 모자이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모자이크를 보기 전까지는 산비탈레 성당 후진後陣, Apse의 모자이크가 라벤나에서, 아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였습니다. 기독교적인 내용과 상관없이 녹색과 금색 모자이크가 만들어 내는 색의 조화에 감동해서 펑펑 울 정도로요.
산비탈레 성당, 548년. 라벤나. |
이미 최고의 모자이크를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당 옆문으로 나가 영묘로 향할 때만 해도 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모양의 수수하고 자그마한 빨간 벽돌집에 무슨 대단한 작품이 자리하고 있을까 싶었으니까요. 사실 산비탈레 성당은 규모가 워낙 커서 그렇겠지만 후진Apse 한 곳에서만 모자이크를 볼 수 있고 나머지 부분은 아무 장식 없이 회벽 상태로 남겨져 (거의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묘에서는 입구의 천장부터 내부 전체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더군요. 모자이크의 천국이었습니다.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모자이크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천장의 파란색 모자이크입니다. 「선한 목자」 그림 위 천장의 파란색 모자이크에는 「에덴동산」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나요?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425~450년. 산비탈레 성당, 라벤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usoleum_of_Galla_Placidia_in_Ravenna.JPG#/media/File:Mausoleum_of_Galla_Placidia_in_Ravenna.JPG 제공. |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의 천장, 425~450년. 산비탈레 성당, 라벤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usoleum_of_Galla_Placidia_mosaics_(Ravenna).jpg#/media/File:Mausoleum_of_Galla_Placidia_mosaics_(Ravenna).jpg 제공. |
미셸 파스투로에 의하면, 프레스코 “벽화와는 달리 로마의 모자이크에서는 청색 계통의 색들이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 청색 계통의 모자이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모자이크는 “여러 가지 빛깔의 돌, 색유리, 조가비, 타일, 나무, 종이 따위의 조각을 맞춰 만든 무늬나 그림, 또는 그러한 미술 형식”입니다. 모자이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기원전 3천 년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모자이크의 장점은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거죠.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Papale di San Pietro in Vaticano에 걸려 있는 성화들은 모두 (혹은 한 점을 제외하고) 모자이크랍니다. 성당 안의 엄청난 습기 때문에 그림이 쉽게 손상되기 때문에 모자이크를 설치한 것이라고 하네요. 혹시 성베드로 성당을 방문하게 되면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어쨌든 초기 비잔틴 시대의 라벤나 모자이크는 유리로 만든 ‘테세라tessera’입니다. 투명한 유리를 녹이는 과정에 금속산화물을 첨가하면 색깔 있는 테세라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구리를 넣으면 진홍색 테세라가 만들어지고, 안티몬을 넣으면 노란색 테세라, 철을 넣으면 초록색 테세라, 망간을 넣으면 자주색 테세라가 만들어진답니다. 금색과 은색 테세라는 두 줄의 투명 유리 사이에 얇은 금박이나 은박을 넣어서 만들고요. 그러면 파란색 테세라는 무엇을 넣어서 만들까요? 산화코발트를 넣는답니다. 산화코발트는 코발트와 산소원자로 구성된 코발트 산화물로 파란색을 내는 발색제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모자이크는 테세라를 접착제로 벽면에 부착하는 반면,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유리를 납으로 된 리본으로 용접해서 창에 부착하는 거죠.
모자이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스테인드글라스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네요. 네 번째로 소개해 드릴 가장 인상적인 파란색 작품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프랑스어: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우리말로 ‘색유리 창’이라는 좋은 표현이 있더군요. 색유리 창이 기원전 7세기경에 중동에서 시작했다는 글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고 하네요. 유럽에서는 고딕식 대성당들이 지어지면서 큰 창들이 만들어졌고 이 창들을 장식할 스테인드글라스가 유행하게 됐답니다. 모자이크가 비잔틴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 양식이라면 스테인드글라스는 중세의 대표적인 미술 양식이라 할 수 있죠.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럽에서 1150년부터 1500년까지 높은 인기를 누렸던 가장 큰 이유는 글을 모르는 일반 신도들이 색유리 창에 묘사된 그림을 통해 성서의 내용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성서의 내용과 상관없이 아름다운 빛과 색을 만들어 내는 스테인드글라스라면 언제든지 감동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이 이차원적이라면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은 빛이 가미된 삼차원적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색유리 모자이크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색유리에 빛이 통과하면 색이 더욱더 생동감 있게 살아나니까요. 문자 그대로 색이 찬란하게 빛나는 거죠.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빛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개인적으로 녹색이나 빨간색이 많이 들어간 색유리 창보다는 파란색이 많이 들어간 색유리 창이 더 좋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색유리 창 중에서 제가 뽑은 가장 아름다운 두 창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회랑 내 부속 예배당. |
노트르담 대성당의 북쪽 장미창, 1250년경. |
위 사진에서 어느 색이 가장 예쁘나요? 가장 인상적인 파란색 작품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꼽긴 했지만 사실 이곳 스테인드글라스에 사용된 모든 색이 다 예쁩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사용된 색유리를 만드는 방법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유리에 금속산화물을 넣는 것입니다. 코발트를 넣으면 파란색 색유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런데 파란색 스테인드글라스는 모두 찬란하게 아름다울 줄 알았는데 탁하고 어두운 스테인드글라스도 있더군요. 미셸 파스투로에 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적, 재정적 제약 때문에 코발트 대신 염화구리와 망간을 넣어서 파란색 색유리를 만드는 곳이 늘어”났답니다. 그 결과 위 사진처럼 밝고 선명한 파란색이 아니라 아래 사진처럼 “좀 더 어둡고 진한 파란색”으로 바뀐 것 같아요. 퐁피두 센터 옆의 생 세브랭 성당프랑스어: Église Saint-Séverin, 12세기에 착공~17세기에 완공에 우연히 들렀다가 보게 된 스테인드글라스인데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많이 다릅니다. 굉장히 추상적이고 현대적이죠? 제작 연도를 확인할 수 없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곳 성당의 모든 색유리 창이 그렇진 않아요. 대부분은 고전적 스타일로 만들어졌습니다. 쾰른 대성당에도 매우 추상적인 색유리 창이 몇 군데 있더군요. 고전적인 스타일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재정 부족으로 세공을 포기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는 미학적인 노력의 산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생 세브랭 성당의 성가대석, 파리. |
생 세브랭 성당의 성가대석, 파리. |
파란색 모자이크에서 파란색 스테인드글라스로 이어지는 다음 파란색 작품은 청화백자靑華白磁입니다. 이 셋에는 한 가지 공통된 연결점이 있습니다.
청화 화조문 항아리, 청나라 옹정황제 1723~1735년. 국립고궁박물관, 타이베이. |
파란색이 정갈하면서도 기품 있죠? 사실 이 도자기 외에도 아름다운 청화백자는 무수히 많습니다.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리움미술관, 호림박물관의 청화백자 전시실에 가면 유리 진열창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바싹 붙어 서서 “와! 예쁘다!”를 연발하곤 합니다. 중국이나 대만의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청화백자를 보다가 한 번쯤 이 질문을 해보시지 않았나요? 청화백자 속 파란색 그림은 무엇으로 그렸을까요? 알고 보면 쉬운 질문입니다. 청화백자에 사용된 파란색 안료는 바로 ‘청화靑華’입니다. 앞에서 파란색 모자이크와 파란색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 때 코발트 산화물을 발색제로 첨가한다고 말씀드렸었죠? 이것이 이 둘과 청화백자의 연결점입니다. 청화는 코발트블루Cobalt Blue의 중국식 이름이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은색의 광물인 코발트를 은인 줄 알고 제련하기 위해 고온으로 가열했다가 이 파란색 안료를 얻게 됐다고 합니다. ‘청화’는 보통 ‘靑華’로 표기되지만 ‘靑花’로 표기되기도 합니다.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작품 캡션에 ‘靑花’를 사용하더군요.
남동석으로 만든 석청石靑은 천연 안료지만 청화는 원석을 빻아서 바로 안료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열 과정을 통해 화학적 변화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합성 안료 범주에 포함됩니다. 코발트 원석을 갈아서 입자로 만든 다음 섭씨 1,200도 이상으로 가열해서 청화를 얻는데 입자로 된 코발트는 진한 회색이지만 가열하면 파란색으로 변한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유리나 도자기에 파란색을 내는 데 사용돼 왔던 코발트블루 안료는 8~9세기경에 중국에 들어가 청화백자에 사용됩니다. 중국에서는 코발트블루를 회청回靑 혹은 회회청回回靑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회回’나 ‘회회回回’가 이슬람을 지칭했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457년세조 3년에 명나라에서 회청이 수입되면서 청화백자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코발트 원석.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obalt_electrolytic_and_1cm3_cube.jpg#/media/File:Kobalt_electrolytic_and_1cm3_cube.jpg 제공. |
자연의 재료를 쓰지 않고 화학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 낸 현대적인 합성 안료, 코발트블루는 1802년에 개발됐습니다. 프랑스의 내무장관 장 앙투안 샤프탈Jean-Antoine Chaptal, 1756~1832이 저명한 화학자 루이 자크 테나르Louis Jacques Thénard, 1777~1857에게 울트라마린을 대체할 합성 안료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했고, 테나르가 염화코발트와 알루미늄을 혼합해서 코발트블루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보다 색이 더 밝아서 화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네요.
이쯤 해서 프러시안 블루가 어떤 색깔인지 궁금해지죠? 그래서 프러시안 블루로 그린 작품을 여섯 번째 인상적인 파란색 작품으로 준비했습니다. 바로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의 『후지산 36경富嶽三十六景』 중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1830입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자주 보셨을 거예요.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830년. 목판화, 25.72 × 38 cm.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 도쿄. |
역동적이고 대담한 구도에 흰색과 파란색 위주로 간결하고 선명하게 그려진 이 작품은 아름답다기보다는 강렬하죠? 높은 파도에 휩쓸려 전복될 것 같은 배들을 보면서 저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작품, 『해변의 수도승독일어: Der Mönch am Meer』1808~1810이 생각났습니다. 두 작품 모두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미약하지만 절대 압도당하지는 않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이 그림에서도 바다와 하늘에 파란색이 사용됐는데 정확히 무슨 색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해변의 수도승』, 1808~1810년. 캔버스에 유화, 110 × 172 cm. 알테 피나코테크, 베를린. |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주제 자체가 큰 파도라서 작품이 상당히 클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작품 정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높이 26cm, 폭 38cm밖에 안 되는 작은 그림입니다. 도쿄의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the Sumida Hokusai에 전시돼있는 『후지산 36경』의 36점 작품들 모두 똑같은 크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작품은 ‘우키요에’이기 때문입니다. 우키요에일본어: 浮世絵는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일본 에도일본어: 江戶, えど 시대에 성립한 당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 그린 풍속화의 형태”위키백과로 대개는 여러 가지 색으로 찍어낸 목판화입니다. 우키요에가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목판화의 형식적 규격이 정해진 것 같습니다. 우키요에 작품들은 목판화기 때문에 한 미술관에만 있지 않고 여러 미술관에서 같은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보스턴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보고, 일본의 여러 미술관에서 만난다 해도 너무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에서는 목판화 장인이 후지산 36경 중 ‘빨간 후지’로 널리 알려진 『청명한 아침의 시원한 바람凱風快晴』의 제작과정을 시연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청명한 아침의 시원한 바람』, 1830년. 목판화, 25.72 × 38 cm.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 도쿄. |
이 목판화에도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와 똑같은 파란색이 들어 있습니다. 『후지산의 36경』 중에는 농담을 달리해서 거의 파란색으로만 만들어진 목판화도 여럿 있습니다. 그러니 어김없이 궁금해지더군요. ‘저 작품들에 쓰인 파란색 안료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천연 안료일까? 라피스 라줄리 말고 일본 고유의 파란색 천연 안료가 따로 있나?’ 앞 다섯 작품의 안료에 대한 궁금증은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가며 풀었지만 이 목판화에 대한 궁금증은 미술관의 안내 데스크 직원이 해결해 줬습니다. 한 직원이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유럽에서 수입된 합성물감인 프러시안 블루라고 알려주더군요. 프러시안 블루는 1780년대에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프러시안 블루가 1706년에 만들어졌으니까 일본에 빨리 수입된 거라고 봐야겠죠? 그전에는 일본에서 구할 수 있는 파란색이 자주달개비 꽃잎으로 만든 안료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1800년대에 프러시안 블루는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답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에서도 프러시안 블루의 다양한 색감을 볼 수 있습니다.
프러시안 블루는 최초의 현대적 합성 안료입니다.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화학적 합성을 통해 안료를 만들어 낸 거죠. 프러시안 블루는 앞에서 말씀드린 코발트블루보다 백 년 정도 앞서서 만들어졌습니다. 1706년에 베를린에 살던 요한 야콥 디에스바흐Johann Jacob Diesbach, 1670~1748라는 염료업자가 붉은색 안료를 만들려다가 실수로 진한 파란색 안료를 발견하게 됐답니다. 프러시안 블루는 시중에 나오자마자 그동안 고가에 거래되던 라피스 라줄리로 만들어진 울트라마린을 단숨에 대체했고 파리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답니다. 시간이 흘러도 색깔이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들기도 쉽고 저렴한 데다 착색도 잘 됐기 때문에 염료, 잉크, 유화물감, 수채화 물감 등 다양한 형태로 응용됐답니다. 아래 파란색 색상표를 보면서 지금까지 살펴본 파란색을 비교해 보십시오.
https://en.wikipedia.org/wiki/Category:Shades_of_blue 제공. |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미술관 건너편 건물 벽에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가 그려져 있더군요. 플래카드나 전광판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벽화였습니다. 큰 파도를 담기에는 목판화의 크기가 좀 작다 싶었는데 큼지막한 벽화가 제 아쉬움을 달래주더군요.
건물 외벽에 그려진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도쿄. |
이제 마지막 작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이 파란색,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로만 그린혹은 칠한 『IKB 3 모노크롬 블루IKB 3 Monochrome bleu』1960입니다.
이브 클랭, 『IKB 3 모노크롬 블루』, 1960년. 199 × 153 cm, 캔버스에 순수 안료와 합성 레진. 퐁피두 센터, 파리. |
앞에 소개해 드린 여섯 작품과는 느낌이 다르죠? 물론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의 천장 모자이크에도 기하학적인 추상적 문양이 들어 있지만 형상 없이 오로지 한 가지 색으로만 그려진 이 작품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퐁피두 센터에는 이 작품 외에도 선명하고 진한 울트라마린으로만 채색된 이브 클랭의 조각 작품, 『SE 71, 나무SE 71, L’Arbre』1962도 있고 『테네시 윌리엄스에 대한 경의Hommage à Tennessee Williams』1960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두 작품에는 형상의 흔적이 남아 있죠. 이 세 작품에 사용된 울트라마린은 이브 클랭이 파리의 물감 제조업자인 에두아르 아당Edouard Adam과 함께 만들고 특허까지 받은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입니다.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가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처럼 보이나요? 이브 클랭은 1956년부터 IKB로 단색 추상화를 제작하기 시작해서 거의 200점에 달하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단색 추상화가 “자유를 향해 열려 있는 창이자, 측량할 수 없는 색의 존재 속으로 빠져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하면서요. 『IKB 3 모노크롬 블루』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색채 본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겁니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재현의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며 파란색의 무한함 속으로 헤엄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브 클랭, 『SE 71, 나무』, 1962년. 스펀지에 순수 안료와 합성 레진. 퐁피두 센터, 파리. |
이브 클랭, 『테네시 윌리엄스에 대한 경의』, 1960년. 혼합재료, 275 × 407 cm. 퐁피두 센터, 파리. |
지금까지 파란색이 인상적이었던 일곱 작품을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다들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죠? 여러분도 ‘나만의 파란색 베스트 작품 리스트’를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이렇게 일곱 작품을 연결해 놓고 보니까 파란색의 역사가 간략하게나마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무리로 복습 문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파란색의 역사가 라피스 라줄리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라피스 라줄리와 함께 파란색의 역사가 시작했고, 라피스 라줄리가 파란색의 기준이 됐으며, 이후에 발견되거나 만들어진 다른 파란색 안료는 라피스 라줄리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완벽한 파란색을 찾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요. 다음 중 라피스 라줄리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지거나, 혹은 라피스 라줄리를 대체할 수 있는 파란색 합성 안료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을 맞힌 분께는 제가 임시 보호 중인 귀여운 아기 길고양이를 입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1. 이집션 블루Egyptian Blue
2.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
3. 러시안 블루Russian Blue
4. 코발트 블루Cobalt Blue
5.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
길게 고민하셔야 하나요? 문제를 풀면서 파랑에 대한 노래를 한 곡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www.youtube.com/watch?v=rumFzxyQiPg) 가사 중간에 삽입된 그림들은 곡 분위기에 맞춰서 제가 임의로 선정한 겁니다. 노래를 듣고 나서 어떤 파랑이 되고 싶은지 시를 한 번 써보세요.
만약 내가 파랑이라면If I were Blue
─ 퍼트리샤 바버Patricia Barber
만약 내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같은 파랑이라면
나한테 뛰어들어서 미끄러지듯 헤엄쳐 봐요.
캘리포니아 하늘 아래.
내가 당신의 입과 코와 눈 속에 있을 거예요.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년. 캔버스에 아크릴, 242.5 × 243.9 cm. 테이트 브리튼, 런던. |
만약 내가 에드워드 호퍼의 오후 같은 파랑이라면
산들바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창틀을 들어 올려요.
내 여름이 당신의 뺨을 붉게 물들이도록
부드럽고 온화한 계절 아래 반듯하게 누워 봐요.
에드워드 호퍼, 『케이프 코드의 정오』, 1949년. 캔버스에 유화, 68.75 × 98.75 cm. 데이턴 미술관, 데이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igh-Noon-Edward-Hopper-1949.jpg#/media/File:High-Noon-Edward-Hopper-1949.jpg 제공. |
(중략)
만약 내가 파랑이라면,
창백한 피카소 블루라면,
아름다움이 슬픔을 덮듯이
내가 당신을 덮어줄게요.
잠자는 당신을, 우울함에 빠진 당신을.
당신에게 평화를 줄게요.
내가 파랑이라면.
파블로 피카소, 『늙은 기타리스트』, 1903~1904년. 패널에 유화, 122.9 × 82.6 cm. 시카고 미술관, 시카고. https://en.wikipedia.org/wiki/File:Old_guitarist_chicago.jpg#/media/File:Old_guitarist_chicago.jpg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