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들에게 겨울방학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한 학생이 일본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더군요.
“도쿄에 가면 국립서양미술관과 도쿄국립박물관에 꼭 가 봐요. 두 미술관이 붙어 있으니까 찾아가기 쉬울 거예요. 국립서양미술관에 가면 정원에서 로댕의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어요.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들』을 실제로 본 적 있어요? 파리에 가지 않더라도 도쿄에서 이 작품들을 볼 수 있으니까 놓치지 말고 보고 와요.”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들』이 파리에도 있어요? 작품들이 딱 한 점씩만 있는 게 아닌가요?”
“아니에요. 여러 점 있어요. 내가 본 것만 해도 여러 점 돼요.”
“똑같은 작품이 여러 개면 하나만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인가요?”
앞글들, 「이 그림이 왜 또 여기 있어요?」 시리즈를 참조하면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베껴 그린 모작模作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베껴 그린 모작은 가짜가 아닌 진품으로 간주되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베낀 다음 그것을 다른 작가의 작품인 것처럼 속이는 경우에만 가짜인 위작僞作이 된다는 건 기억하시죠? 그렇다면 조각 작품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1902과 『칼레의 시민들Les Bourgeois de Calais』1889은 모두 청동bronze으로 주조된 작품들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1880의 일부로 처음에는 약 70cm 크기로 제작됐다가 1904년에 사람 크기185cm로 확대 제작됐다고 하네요. 청동 주조 작품의 경우에는 하나의 형틀주형鑄型, mold을 이용해서 똑같은 작품을 제작할 수가 있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똑같은 작품이 파리에도 있고 도쿄에도 있습니다. 하나의 형틀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모두 진품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화 작품과 다른 점이 하나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의 경우에는 모작의 수를 제한하지 않지만, 청동으로 주조된 작품의 경우에는 원형이 훼손될 수 있는 형틀의 특성을 고려해서 열두 번째로 찍어낸 조형물까지만 진품으로 인정한답니다. 프랑스에서는 1956년에 이것을 법으로 제정해서 하나의 형틀로 찍어낼 수 있는 청동 주조 작품의 수를 열두 점으로 제한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청동 조각 작품에만 해당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조각sculpture’이라고 부르는 ‘조소彫塑’는 덩어리를 깎아내면서 형태를 만드는 마이너스 기법의 조각carving과 하나씩 더해가면서 형태를 만드는 플러스 기법의 소조modeling로 구분됩니다. 쉽게 예를 들면, 대리석을 깎아서 만든 작품은 ‘조각’ 작품이고, 찰흙으로 형상을 만든 다음 청동으로 주조한 작품은 ‘소조’ 작품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일상적으로는 ‘조각’이 ‘조각’과 ‘소조’ 모두를 지칭하는 것 같아요. ‘carving’과 ‘modeling’을 모두 아우르는 ‘sculptur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조각, 조소’로 정의돼 있거든요. 세분하면 ‘조각’과 ‘소조’지만 때로는 ‘조각’이 ‘소조’까지 포함하는 통칭이 되는 거죠. 저도 『생각하는 사람』을 굳이 ‘소조’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조각’ 작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쨌든 대리석 ‘조각’ 작품은 복사본 제작에 제한이 없는 반면, ‘소조’인 청동 주조 작품은 열두 개로 복사본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소조’ 작품을 제작할 때 제작 순서대로 붙이는 번호를 에디션edition이라 부릅니다. 판화나 사진의 경우에도 에디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죠. 지금까지 『지옥의 문』은 일곱 번째 에디션까지, 『칼레의 시민들』은 열두 번째 에디션까지 제작됐다고 합니다. 『칼레의 시민들』은 진품으로 인정될 수 있는 에디션을 열두 개 모두 채운 거죠. 이 말은 저 같은 미술 초보는 새로운 곳에서 『칼레의 시민들』을 볼 때마다 ‘아니, 여기에도 『칼레의 시민들』이 있네!’ 하면서 열두 번 놀랄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의 정원에 있는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들』, 『생각하는 사람』 모두 열두 개의 에디션 안에 들어있는 작품들입니다. 『지옥의 문』과 『생각하는 사람』의 첫 번째 에디션은 파리의 로뎅 미술관Le Musée Rodin에, 『칼레의 시민들』의 첫 번째 에디션은 칼레에 있지만, 국립서양미술관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이곳에 있는 에디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비에 젖어서 작품들이 더 운치 있게 보일 수 있습니다.
오귀스트 로댕, 『지옥의 문』, 1880~1890년/1917년 (원형), 1930~1933년 (주조). 브론즈, 540 × 390 × 100 cm. 국립서양미술관, 도쿄. |
오귀스트 로댕, 『생각하는 사람』, 1881~1882년 (원형), 1902~1903년 (확대), 1926년 (주조). 브론즈, 186 × 102 × 144 cm. 국립서양미술관, 도쿄. |
오귀스트 로댕, 『칼레의 시민들』, 1884~1888년 (원형), 1953년 (주조). 브론즈, 180 × 230 × 220 cm. 국립서양미술관, 도쿄. |
우리나라에도 로댕의 진품이 있을까요? 네, 우리나라에도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들』 진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소장한 곳은 로댕갤러리Rodin Gallery였는데 2011년에 ‘플라토PLATEAU’로 이름이 바뀌었답니다. 아쉽게도 이 미술관은 2016년에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 지금은 두 작품이 호암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옥의 문』은 일곱 점 더불어 변형된 형태의 여러 작품들, 『칼레의 시민들』은 열두 점 더불어 개별 인물상들, 사람 크기의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28점가량 더불어 『지옥의 문』 속 원형 크기의 청동 조각과 석고 형태의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작품 수와 같은 수의 장소에서 똑같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파리의 로댕 미술관Le Musée Rodin에서 청동으로 주조된 『지옥의 문』을 보고, 오르세 미술관Le Musée d'Orsay에서 석고로 된 『지옥의 문』1917을 본 다음 서울로 돌아오다 도쿄에서 환승을 하게 됩니다. 저녁까지 시간이 있어서 도쿄 시내의 국립서양미술관에 들르죠. 그런데 파리에서 봤던 『지옥의 문』이 이곳 미술관에 또 있는 거예요.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열두 점까지 똑같은 청동 조각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미술 초보들은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어, 왜 똑같은 작품들이 이렇게 많은 거지? 한 작품만 진짜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인가? 내가 본 세 작품 중 어느 게 진짜야?’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저만 이런 질문을 한 게 아닌 것 같아서 살짝 안심했죠.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나 미술관을 기어다니던 ‘미술관 벌레museum-worm’ 애벌레 시절, 맨 처음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이탈리아에서 미술 기행을 할 때였습니다. 그림에 모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막 깨우쳐가고 있던 터였지만 조각에도 모작조각을 복제한 작품인 경우에는 ‘모작模作’ 대신 ‘모각模刻’이라는 용어를 쓰더군요이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던 때였죠. 이때만 해도 저는 조각 작품은 세상에 딱 한 점씩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청동으로 주조된 조각 작품이야 같은 틀에서 찍어내면 되겠지만 대리석 조각 작품은 복제할 수 없을 줄 알았으니까요.
이탈리아 미술 기행에서 조각에 대해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 시대의 많은 조각 작품들이 그리스 조각의 모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모각 작품이 다시 모각되어 여러 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모각의 모각이 이루어진 거죠. 로마의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Museo Palazzo Massimo Alle Terme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조각 작품으로는 2세기경에 제작된 『원반 던지는 사람Discobolus of Myron』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 조각가 미론Myron이 기원전 460~450년경에 제작한 조각을 복제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조각상 옆에는 머리와 한 팔이 없는 또 다른 『원반 던지는 사람』이 있더군요. 「위키피디아」를 보니 이 두 복사본 외에도 여러 복사본이 있다고 합니다. 『원반 던지는 사람』 덕분에 조각에도 모각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원반 던지는 사람』, 2세기경. 대리석.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 로마. |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로마의 캄피돌리오Campidoglio 광장 양옆에는 카피톨리노 박물관Musei Capitolini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광장 지하 통로로 건물들이 연결돼있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곳의 대표적인 조각 중 하나가 『카피톨리노의 비너스』입니다. 전형적인 ‘베누스 푸디카Venus Pudica, 정숙한 비너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비너스상은 기원전 4세기경에 아테네의 프락시텔레스Praxiteles가 만든 『니도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Knidos or Cnidus』를 모방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카피톨리노의 비너스』 역시 수많은 복사본이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카피톨리노의 비너스』, 기원전 4세기. 대리석, 193 cm, 카피톨리노 박물관, 로마. |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모두 갖춘 양성의 신, 헤르마프로디투스Hermaphroditus를 조각한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투스Sleeping Hermaphroditus』를 맨 처음 본 곳은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이었습니다. 뒷모습은 틀림없이 여성인데 옆으로 돌아가서 보니 여성이면서 남성이었죠. 이 조각 작품을 본 다음 날 보르게세 미술관Galleria Borghese에 들렀더니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투스』가 또 있더군요. 원래 보르게세 미술관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가인 폴리클레이토스Polycles, 기원전 2세기의 청동 원작을 모각한 조각상이 있었는데 나폴레옹Napoleon I이 프랑스로 가져가 버렸답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조각상은 안드레아 베르곤디Andrea Bergondi라는 이탈리아 조각가가 만든 복사본이랍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투스』는 나중에 실물 영접을 할 수 있었죠. 제가 직관한 세 점의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투스』 외에도 많은 복사본들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찍은 조각상의 뒷모습은 초점이 흔들렸고 옆모습 사진은 너무 대담한 구도여서 「위키미디어」에 있는 뒷모습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세 조각상에서 침대의 모양을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침대에서 잠자고 있는 헤르마프로디투스가 가장 편안해 보이나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조각상의 침대는 1620년에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가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투스를 위해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지저분해 보이는 게 문제네요. 침대가 조금 불편해 보이긴 하지만 제 눈에는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 조각상이 가장 아름다워 보입니다.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투스』, 제작 연도 미상. 대리석. 국립 마시모 궁전 박물관, 로마. |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투스』, 제작 연도 미상. 대리석. 보르게세 미술관, 로마. |
카피톨리노 박물관의 또 다른 대표 조각상으로는 『가시를 뽑는 소년Spinario Cavastina or Boy with Thorn』이 있습니다. 헬레니즘 양식으로 기원전 1세기에 제작된 이 조각상은 로마에서만 50개 이상의 복제품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저도 여러 곳에서 이 조각상을 만났습니다.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이 조각상을 처음 보고 며칠 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에서 똑같은 조각상을 또 만났죠. 그런데 이곳의 『가시를 뽑는 소년』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더군요. 이후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서 대리석 복사본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청동으로 된 복사본을 봤습니다. 『가시를 뽑는 소년』을 여기저기서 만난다 해도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왼쪽 조각상 - 『가시를 뽑는 소년』, 기원전 1세기. 브론즈, 73 cm. 카피톨리노 박물관, 로마. 오른쪽 조각상 - 『가시를 뽑는 소년』, 기원전 1세기. 대리석.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
『가시를 뽑는 소년』과 더불어 여러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으로는 『마르시아스Marsyas』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 역시 기원전 2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사라진) 조각상을 로마제국 시대에 모각한 복사본이라고 합니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와의 음악 대결에서 이긴 후 신에게 도전한 오만함에 대한 벌로 마르시아스를 나무에 결박해 놓고 산 채로 살가죽을 벗겨서 죽입니다. 이 조각상을 볼 때면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는 지배계급의 잔인함에 분개하고, 한편으로는 공고한 기득권 체제에 맞서다 좌절당한 마르시아스의 모습이 힘없는 서민들의 모습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아래 카피톨리노 박물관의 조각상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머리와 양팔, 몸통과 양다리 부분의 색이 양 손발 색과 다르죠? 피 흘리고 있는 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각가가 이 부위에 붉은빛이 감도는 대리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두 손과 두 발에는 흰색 대리석을 사용하고요. 기발하지 않나요? 조각상에 채색을 하는 것보다 몇백 배 더 똑똑한 방법인 것 같아요.
똑같은 작품을 볼 때마다 제 반응은 항상 거의 똑같습니다. ‘앗, 이 작품이 여기 또 있네.’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가시를 뽑는 소년』과 『마르시아스』를 보고 나서 며칠 후 들른 우피치 미술관에 또 다른 『가시를 뽑는 소년』과 『마르시아스』가 있더군요. 카피톨리노의 마르시아스가 묵묵히 체념하듯 자신의 시련을 견뎌내고 있는 모습이라면 우피치의 마르시아스는 비웃는 모습으로 여전히 신에게 도전하는 오만한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두 조각상이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르죠?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마르시아스』는 고개를 숙인 카피톨리노 박물관의 마르시아스와 비슷합니다.
『마르시아스』, 기원전 1세기. 대리석, 149 cm. 카피톨리노 박물관, 로마. |
『마르시아스』, 2세기경. 대리석. 루브르 박물관, 파리. |
『마르시아스』, 기원전 1세기. 대리석.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투스』 세 모각과 『가시를 뽑는 소년』 두 모각, 『마르시아스』의 세 모각을 비교하면서 조각과 소조의 차이점을 한 가지 더 깨달았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처럼 청동으로 주조된 복사본들은 같은 틀에서 찍어냈기 때문에 다른 점이 없는 반면, 대리석으로 만든 복사본들은 모각하는 조각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서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가지는 것 같아요. 너무 당연한 사실인가요?
기원전 1세기경에 제작됐을 것이라 추정되는 『라오콘 군상Laocoön and His Sons』 역시 그리스 시대의 조각품을 복제한 것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 작품이 원작인지 아니면 모작인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원작일 가능성이 있는 『라오콘 군상』은 바티칸 박물관의 벨베데레Belvedere 정원에 있습니다. ‘벨베데레’는 ‘좋은 경치’란 뜻이랍니다. 스페인어 ‘부에나 비스타Buena vista’도 같은 뜻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키스Der Kuss』1907~1908로 유명한 ‘벨베데레’ 궁전이 있죠. 바티칸의 벨베데레 정원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벨베데레의 아폴론Apollo del Belvedere』일 겁니다. 역시나 이 작품도 BC 320년에 제작된 청동상을 대리석으로 모각했다고 합니다.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있는 아폴론 두상 복사본을 제외하고 『벨베데레의 아폴론』 복사본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라오콘 군상』의 복사본은 우피치 미술관에 있더군요. 이탈리아 미술 기행을 통해 조각에 모작/모각/복사본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배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모스크바의 푸슈킨 미술관러시아어로 Музей изобразительных искусств имени А. С. Пушкина, 영어로 The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은 모각의 극한을 보여 주더군요. 이곳에는 세상에 알려진 유명한 조각 작품들의 석고 복사본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석고상 전시실의 일부일 뿐입니다. 로마의 카피톨리노 박물관과 바티칸 박물관을 비롯해 유럽의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유명한 조각상들이 이곳에 다 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시실 밖 로비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David』1501~1504도 서 있더군요.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모각 작품을 보고 그 모각들이 모두 훌륭한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지만, 이곳 미술관에서 무수한 석고 복사본들을 맞닥뜨렸을 때는 ‘이걸 진짜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나? 이건 미술학원에서 쓰는 데생용 석고상들 같아’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푸슈킨 미술관의 석고 복사본 조각상 전시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ellenistic_hall_in_Pushkin_museum_03_by_shakko.jpg#/media/File:Hellenistic_hall_in_Pushkin_museum_03_by_shakko.jpg 제공. |
푸슈킨 미술관의 초대 관장이었던 이반 츠베타예프Ivan Tsvetaev, 1847~1919가 관람객 교육용으로 이 석고상들을 들여왔다고 합니다. 백 년 동안 이 석고상들을 잘 보존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역사적인 의미가 생겼다고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석고상들도 진품으로 인정해야 할까요?
미술관을 다니면서 똑같은 조각 작품들을 만날 때나, 똑같은 조각 작품이 이 미술관에도 있고 저 미술관에도 있다는 글을 읽을 때 궁금했던 것들이 조금은 해소됐길 바랍니다. 부디 미술관에서 저처럼 너무 많이 놀라진 마시길 빕니다. 아, 제가 던진 마지막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곤혹스럽다고요? 찬반양론이 다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을 갖고 천천히 답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