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Galleria Borghese과 바르베리니 궁전 국립고전 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in Palazzo Barberini, 줄여서 바르베리니 미술관에는 『라 포르나리나La Fornarina』가 한 점씩 걸려 있습니다. 사진상으로는 보르게세 미술관의 『라 포르나리나』86 × 58.5 cm가 바르베리니 미술관의 『라 포르나리나』85 × 60 cm보다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그림의 크기가 비슷합니다. 우선 두 그림의 사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의 『라 포르나리나』는 출입문 위쪽 높은 곳에 걸려 있어서 선명하게 사진 찍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르베리니 미술관의 라 포르나리나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두 그림은 흡사합니다. 아, 액자 모양이 다르군요. 두 그림이 99% 정도 비슷하다면 둘 중 하나는 원작原作이고 다른 하나는 원작을 베껴 그린 모작模作이겠죠? 모작이 여러 점 있다면 두 작품 다 모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두 작품 중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안심하고 이 질문을 드립니다. 둘 중 어느 작품이 원작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힌트는 작품이 걸려 있는 위치입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의 『라 포르나리나』는 출입문 위쪽 높은 곳에, 바르베리니 미술관의 『라 포르나리나』는 관람객 눈높이에 걸려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작품의 위상은 그 작품이 전시돼 있는 위치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작품은 관객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눈높이로 전시돼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 정도 힌트면 아래 그림이 원작이라는 걸 다 아셨죠? 아래 그림을 그린 화가는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입니다.
『성 제롬Saint Jerome』보다는 나중에 만났지만 『라 포로나리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인연을 쌓아온 친구 같은 작품입니다. 『성 제롬』이 같은 제목으로 여러 작품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면, 『라 포르나리나』는 모작들, 그중에서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모작의 존재를 알려준 작품입니다.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 혹은 『젊은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Young Woman』1518~1519이 제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된 것은 영화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2013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라 포르나리나』는 그다지 인상적인 초상화는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남자주인공이 친구의 도움으로 로마에 있는 한 건물로 들어갈 때 『라 포르나리나』가 어둠 속에서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며 나타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요. 이 장면을 보고 나니 『라 포르나리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이 초상화가 그렇게 아름다운가? 엄청나게 아름다운 초상화 같지는 않은데 내 눈이 이상한 건가?’ 마침 이탈리아 여행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 초상화도 ‘직관’해야 할 작품 목록에 추가했습니다. 로마 여행 사전 답사로 여행 작가인 릭 스티브스Rick Steves의 비디오를 보며 로마의 미술관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을 때 보르게세 미술관의 2층 통로에서 미술관 소개를 하는 그의 머리 위로 『라 포르나리나』가 보이더군요. 그 후 제 머릿속에는 『라 포르나리나』가 보르게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입력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탈리아 여행 가이드북에는 『라 포르나리나』가 보르게세 미술관이 아닌 바르베리니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소개돼 있더군요. ‘이 그림이 왜 또 여기 있지?’ 제 특기인 궁금증이 또다시 연기처럼 모락모락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라파엘로가 『라 포르나리나』를 두 가지 버전으로 그린 걸까?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 먼저 그려진 원작이고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 모작인가? 그래서 『라 포르나리나』가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고 알려진 것일까?’
보르게세 미술관 로비에서 관람 예약 시간을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안내 데스크에 가서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라 포르나리나』가 여기도 있고 바르베리니 미술관에도 있는데 어느 게 원작인가요?” 안내 데스크 직원은 다른 일로 바빴는지 제 질문에 관심을 안 기울여 주더군요. 혼자 힘으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죠. 일층에서 『페르세포네의 납치Ratto di Proserpina』1621~1622와 『아폴론과 다프네Apollo e Dafne』1622~1625, 『다비드David』1623~1624 같은 조반니 베르니니Giovanni Bernini, 1598~1680의 조각 작품들을 보고 이층으로 올라가서 드디어 『라 포르나리나』 앞에 섰습니다. 불편하게 고개를 젖히고 봐야 하는 통로 위쪽 벽에 그림이 걸려 있더군요. 거장 라파엘로의 작품이 걸려 있기에는 걸맞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했던 것이 있죠? 작품에 대한 궁금증의 답은 많은 경우 작품 캡션에 들어 있다고요. 역시 이번에도 작품 캡션에 답이 들어 있더군요.
이 그림은 라파엘로의 작품이 아니라 라파엘로와 이름도 비슷하고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도 비슷한 동시대 화가, 라파엘리노 델 콜레Raffaellino del Colle, 1490~1556의 작품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름 뒤에 ‘attr.’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attr.’은 전칭작을 나타내는 이탈리아어, ‘attribuita a’의 약자입니다. 그러니까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라 포르나리나』는 라파엘로의 작품이 아니라, 라파엘리노라는 동시대 화가가 라파엘로의 작품을 베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전작傳作 모작인 거죠. 그런데 보르게세 미술관 웹사이트에서 자료를 찾다 보니 전傳 라파엘리노 델 콜레의 『라 포르나리나』 외에도 모작이 한 점 더 있더군요. 한 미술관에 똑같은 그림이 두 점 있는 거죠. 웹사이트 설명에 의하면,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있는 『라 포르나리나』를 라파엘로가 베껴 그린 모작1518/19이랍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 두 번 다녀왔지만 두 번 모두 라파엘리노 델 콜레의 모작만 직관하고, 아직 라파엘로의 모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못 보고 놓쳤거나 미전시 중이었거나 둘 중 하나였겠죠. 다음에 보르게세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면 『라 포르나리나』 두 점이 모두 전시되어 있는지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보르게세 미술관에 가시면 이 글을 떠올리며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와 라파엘리노 델 콜레의 『라 포르나리나』 모두 모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바르베리니 미술관으로 가서 라파엘로의 원작을 봐야겠죠?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가 작곡한 『로마의 소나무』1924에도 등장하는 보르게세 별장의 소나무 정원을 지나 20분 정도 걸어가면 바르베리니 미술관이 나옵니다. 드디어 마주한 라파엘로의 원작 『라 포르나리나』.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라파엘로 산치오, 『라 포르나리나』, 1518~1520년. 나무에 유화, 85 × 60 cm. 바르베리니 미술관, 로마. |
라 포르나리나를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흐릿해진 제 시력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림 속 라 포르나리나에게서 특별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첫 번째 특별한 점은 의학자들이 찾아낸 겁니다. 의학자들은 왼쪽 가슴 색이 다르고 함몰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라 포르나리나가 암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답니다. 그런데 로마 여행 중에 만난 역사학자 데이비드 선생님은 의학자들과는 다른 참신한 특징을 찾아내더군요.
“라 포르나리나의 팔을 봤어요? 팔뚝이 우람하지 않아요?”
“신경 써서 보질 못했어요. 그러고 보니 팔뚝이 진짜 굵네요.”
“‘라 포르나리나’가 ‘빵집 딸’이란 뜻이잖아요. 빵 반죽을 계속하다 보니 팔뚝이 굵어진 거예요. 빵집 딸,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는 라파엘로의 모델이자 연인이었죠. 그런데 라파엘로에게는 교황의 조카인 약혼녀가 있었어요. 라파엘로와 라 포르나리나는 비밀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라 포르나리나가 ‘우르비노의 라파엘로Raphael Vrbinas’라고 적힌 밴드를 팔에 두르고, 왼손에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 비밀결혼을 했을 확률이 높아요. 그러다 라파엘로가 37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죠. 라파엘로의 제자는 스승이 그려놓은 라 포르나리나의 초상화에서 반지가 보이지 않도록 재빨리 덧칠을 해놓았대요. 혹시라도 비밀연애가 들통나서 스승인 라파엘로가 판테온에 묻히지 못할 걸 우려한 거죠. 2001년에 엑스레이 조사 과정에서 숨겨진 반지의 존재가 드러났다고 하네요. 지금은 반지 위에 덧칠된 부분을 지워놓았대요.”
데이비드 선생님의 설명 덕분에 전傳 라파엘리노 델 콜레의 『라 포르나리나』에서 라 포르나리나가 반지를 끼고 있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라파엘로의 제자가 반지 위에 덧칠해 놓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테니까요. 보르게세 미술관 웹사이트에 있는 라파엘로의 모작 사진에는 희미하게 반지 형체가 보이는 것 같은데 확대 기능이 없어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 다시 가게 되면 반지 여부를 꼭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라파엘로와 라 포르나리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설說일 뿐 실제로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죠.
전傳 라파엘리노 델 콜레의 『라 포르나리나』와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1518~1520를 만난 이후 세 미술관에서 『라 포르나리나』와 연관된 작품들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피렌체의 피티 미술관Pitti Galleria에 있는 라파엘로의 『베일을 쓴 여인La Donna Velata』1516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고 『라 포르나리나』와 『베일을 쓴 여인』의 연관관계를 한번 찾아보십시오. 두 그림의 모델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셨나요? 사실 처음 『베일을 쓴 여인』을 봤을 때만 해도, 저는 그림 속 여성이 라 포르나리나인 마르게리타 루티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두 작품의 모델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고 헤어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죠. 그런데 『베일을 쓴 여인』 속의 마르게리타 루티가 『라 포르나리나』 때의 마르게리타 루티보다 더 어려 보이죠? 그 이유는 『베일을 쓴 여인』이 『라 포르나리나』보다 2~4년 정도 먼저 그려졌기 때문일 겁니다. 두 그림에서 마르게리타 루티의 헤어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해도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습니다.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자세가 똑같죠? 라 포르나리나의 이런 자세를 어떤 학자들은 라파엘로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해석하고, 어떤 학자들은 가슴과 허벅지를 손으로 가리는 ‘베누스 푸디카Venus pudica; 정숙한 비너스’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 역시 의견이 분분합니다. 혹시 이때부터 암 때문에 통증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라파엘로, 『베일을 쓴 여인』, 1516년. 캔버스에 유화, 82 × 60.5 cm. 피티 미술관, 피렌체. |
그런데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앞의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낯선 『라 포르나리나』를 만났습니다. 물론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린 자세와 튼튼해 보이는 어깨는 친숙하지만요. 이 그림은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Sebastiano del Piombo, 1485~1547의 『라 포르나리나』입니다. 작품 캡션에는 제목이 ‘『라 포르나리나』로 알려진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Woman』’1512으로 적혀 있더군요. ‘여러 화가의 모델이 될 정도로 라 포르나리나가 그렇게 아름다웠나? 이 그림으로 봐서는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라파엘로가 그린 라 포르나리나와 너무 다르게 생겼잖아. 같은 사람을 그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라파엘로가 요즘 말로 포토샵을 한 건가?’ 이 궁금증에 대한 답도 작품 캡션에 들어 있더군요. 이 그림은 처음에 라파엘로의 전설적인 연인, 라 포르나리나의 초상화로 잘못 알려졌다가 나중에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 속의 여인은 빵집 딸이 아니라 여류 시인일 확률이 높답니다. 라 포르나리나를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라 포르나리나』와 연관 있는 작품을 만나게 돼서 반가웠죠.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라 포르나리나』로 알려진 『어느 여인의 초상』, 1512년. 패널에 유화, 68 × 55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
그런데 하버드 대학교 미술관Harvard Art Museums에서 『라 포르나리나』와 연관 있는 세 번째 작품을 뜻하지 않게 발견했을 때는 반가움과 신기함을 넘어서서 다른 감정이 들더군요. 라파엘로와 마르게리타 루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됐습니다. 라파엘로가 마르게리타 루티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 다음 날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설도 있지만, 마르게리타 루티가 결혼을 거부하며 라파엘로를 떠났다거나, 라파엘로가 그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라파엘로의 후원자인 교황이 마르게리타에게 돈을 줘서 멀리 보냈다는 등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추측이 분분하다 합니다. 어쨌든 두 사람이 계속 사랑을 이어 나가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보자 안심이 되더군요. 행복한 순간이 그림으로 박제됐으니, 두 사람이 영원히 행복한 관계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입니다. 그림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그림 속 라 포르나리나가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와 비슷하나요? 실제로 앵그르가 라파엘로의 『의자에 앉은 성모 마리아Madonna della Seggiola』1513~1514 속 성모 마리아를 참조해서 라 포르나리나를 그렸다고 합니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Grande Odalisque』1814 역시 이 성모 마리아를 참고했다고 하네요. 라파엘로의 모습은 라파엘로의 『자화상Self-portrait』1501에서 따오고요.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1509~1511에도 라파엘로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라파엘로와 라 포르나리나』, 1813년. 캔버스에 유화, 63.8 × 53.3 cm. 하버드 대학교 미술관, 케임브리지. |
『라파엘로와 라 포르나리나』 그림 중 일부. |
라파엘로, 『의자에 앉은 성모 마리아』, 1513~1514년. 패널에 유화, 71 × 71 cm. 피티 미술관, 피렌체.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오달리스크』, 1814년. 캔버스에 유화, 88.9 × 162.56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라파엘로, 『자화상』, 1504~1506년. 패널에 유화, 47.5 × 33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affaello_Sanzio.jpg#/media/File:Raffaello_Sanzio.jpg 제공. |
라 포르나리나와 연관된 작품 중 제가 직관한 작품은 위 세 점뿐이지만 자료를 찾다 보니 라파엘로와 라 포르나리나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이 있더군요. 미술관에 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이 작품들을 만날 날이 오겠죠? 여러분도 미술관에 가면 『라 포르나리나』와 연관된 작품이 있는지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