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기행을 떠날 때면 저는 한 도시에 숙소를 정해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미술관 관람 계획을 짭니다. 미술관 도록을 몇 권만 사도 바윗덩어리처럼 무거워지는 가방을 끌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것이 너무 버거워서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죠. 예를 들어, 숙소를 파리에 정해 놓고 여행 기간 중 며칠은 다른 도시를 다녀옵니다. 하루는 새벽에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가서 국립미술관과 반 고흐 미술관 관람을 한 다음 저녁에 기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고, 또 하루는 아침에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가서 국립미술관과 테이트브리튼 미술관을 관람한 다음 유로스타로 밤에 파리로 돌아오고요. 또 하루는 새벽에 비행기로 마드리드로 날아가서 프라도 미술관과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를 관람하고 다시 비행기로 밤에 파리에 돌아오는 식이죠. 깜깜한 새벽에 파리를 떠나서 자정이 넘는 시간에 파리로 돌아오는 겁니다. 이렇게 여행 일정을 짜면 짧은 여행 기간에 최대한 많은 미술관에 다녀올 수 있으니 가성비로 따지면 최고의 여행이 될 수 있죠. 문제는 다른 도시를 다녀오는 날이면 심각한 수면 부족과 영양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나마 잠은 오고 가는 기차와 비행기 안에서 보충할 수 있지만 밥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새벽에 기차나 비행기를 타야 하니 아침은 거르고, 미술관이 문을 닫는 5시까지 두세 곳의 미술관을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 하니 점심은 가방에 들고 간 초코바나 과자로 때우고, 저녁때는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샌드위치로 대충 때우는 거죠. 낭만적인 미식 여행을 꿈꾸며 파리 여행에 동행했던 제 올케는 날마다 이어지는 강행군에 제발 밥 좀 먹고 잠 좀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울먹이더군요. 제가 파리에 남아 우아하게 맛집 순례를 하라고 강력하게 권했음에도 철인 3종 경기 못지않게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미술관 기행에 멋모르고 동참했다가 호되게 당한 거죠. 다시는 따라나서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러 미술관을 다니면서 작품도 많이 보고 유명 작품들 앞에서 인증사진도 많이 찍었다며 또 데려가 달라고 하더군요. 물론 다른 도시로 이동하지 않는 날에는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여러 도시의 여러 미술관을 다니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부수적 효과가 생기더군요. 똑같은 그림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커지는 겁니다. 한 도시에서만 미술관 기행을 하면 똑같은 그림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한 미술관 안에서 똑같은 그림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한 도시의 두 미술관에서 똑같은 그림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Galleria Doria Pamphilj에는 『숫양과 함께 있는 어린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 Youth with a Ram』 두 점이 같은 전시실에 걸려 있습니다. 한 점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카피톨리니 박물관Musei Capitolini에 있는 원작原作1602을 베껴 그린 모작模作1602이고 다른 한 점은 카라바조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모작입니다. 『바쿠스Bacchus』는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1593과 바르베리니 궁전 국립고전 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in Palazzo Barberini1593에 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725의 『나폴레옹 대관식Le Sacre de Napoléon』1805~1807과 이아생트 리고Hyacinthe Rigaud, 1659~1743의 『루이 14세의 초상Portrait of Louis XIV』1701은 원작은 루브르 박물관에, 모작은 베르사유 궁전에 있습니다. 극히 예외적인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한 도시에서 여러 미술관을 모두 섭렵한다 해도 똑같은 그림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고 다음 날 런던의 국립 미술관을 간다거나, 오늘 베를린의 게멜데갈러리를 보고 며칠 후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을 관람하는 경우 동일 작가들의 작품을 반복해서 볼 확률이 높아집니다. 동시에 똑같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지고요. 두 작품을 본 시간 간격이 짧다 보니 똑같이 생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볼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어제 저 미술관에서 본 그림이 오늘 이 미술관에 있으면 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모작이 무엇인지 몰랐던 왕초보 시절, 맨 처음 이런 경험을 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혼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림에도 귀신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어, 어제 다른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봤는데 왜 이 그림이 여기 또 있는 거지?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경험은 미술 초보들이 한 번씩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게 된 첫 번째 작품은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 Baptiste Siméon Chardin, 1699~1779의 『식사 전 기도Le Bénédicité』1740였습니다. 그러나 『식사 전 기도』 이후에도 미술관에서 똑같은 작품들을 마주칠 때마다 매번 놀라서 이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질문을 할지 모릅니다.
『식사 전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영화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겠습니다. 최근에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Delicious』2022라는 프랑스 영화를 봤습니다. 제목 그대로 음식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 중간중간에 요리와 과일, 채소, 꽃, 동물로 세팅된 테이블 모습이 정지된 상태로 몇 초 동안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영화 속에 정물화가 등장하는 거죠.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의 한 장면. |
진짜 정물화 같죠? 컴퓨터로 영화를 보다가 정물화 장면이 나오면 일시 정지를 누르고 사진을 찍어 뒀는데, 영화 비평이나 감상이 들어간 글에는 영화 스틸을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사진을 다운로드했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와, 샤르댕 그림 같다’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나중에 영화 리뷰를 보니 “관능적이고 낭만적인 장면연출이 샤르댕의 정물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https://gettotext.com/tonight-on-tv-a-movie-that-will-make-you-hungry/ 이 영화의 감독인 에릭 베스나르Éric Besnard도 “등장인물들이 일하는 모습을 배치할 때는 샤르댕의 장르화로부터, 영화의 막간에 등장하는 정물을 배치할 때는 샤르댕의 정물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https://www.createastir.ca/articles/delicious-rendez-vous-french-film-festival고 인터뷰를 했고요. 샤르댕과 이 영화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 저도 이제 그만 하산해도 되겠죠?
예전에 드라마에 나온 장욱진1917~1990 화백의 생가에 꼭 가보고 싶다는 동료 선생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함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따님이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전집 도록을 보여주더군요. 그림들을 죽 훑어보고 나서 “파울 클레의 그림하고 분위기가 비슷해요”라고 말씀드렸죠. 나중에 집에 와서 장욱진 화백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많은 평론가들이 장욱진 화백과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와 호안 미로Joan Miró, 1893~1983의 연관성을 언급하더군요. 이탈리아의 라벤나Ravenna에서는 산비탈레 성당Basilica of San Vitale의 금색 모자이크 그림들을 보면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금빛 그림들이 떠올랐습니다. 클림트가 라벤나에 다녀간 적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성당을 다녀온 후 자료를 찾아보니, 역시나 클림트가 실제로 라벤나를 방문해서 이곳 모자이크 그림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제 예상이 맞을 때면 우쭐해서 친구들한테 말합니다. “나 이제 하산해도 될 것 같아.” 옛날식 제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MZ세대 독자들도 있겠죠?
장 시메옹 샤르댕은 17세기에 시작된 정물화를 발전시켜서 완성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물화 장르의 베토벤이라 할 수 있죠. 샤르댕의 정물화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배와 너트와 술잔Pears, Nuts, and Glass of Wine』1768입니다.
장 시메옹 샤르댕, 『배와 너트와 술잔(Pears, Nuts, and Glass of Wine)』, 1768년. 캔버스에 유화, 33 × 41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샤르댕의 정물화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인 페테르 클라스Pieter Claesz, 1597~1660의 정물화나 스페인의 화가인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 1598~1664의 정물화와 분위기가 다릅니다.
페테르 클라스, 『포도주 잔, 화로, 사기 담뱃대, 청어, 빵, 카드 한 벌이 있는 정물화』, 1638년. 패널에 유화, 50.2 × 68.6 cm. 보스턴 미술관, 보스턴.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 1633년. 캔버스에 유화, 62.2 × 107 cm. 노턴 사이먼 미술관, 파사데나. |
누구의 정물화가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클라스와 수르바란의 정물화에서는 명암대비가 더 뚜렷하고 윤곽선이 더 선명해서 정물들이 탱글탱글해 보입니다. 정물들이 화면 밖으로 톡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클라스의 정물화가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자주 보다 보니 조금씩 좋아지더군요. 수르바란의 정물화는 클라스의 정물화보다 깊이는 있지만 너무 정갈하고 선명해서 사진을 보는 것 같죠? 저는 정물과 배경의 경계가 흐려서 정물이 배경에 더 잘 스며든 샤르댕의 정물화가 좋습니다. 샤르댕의 정물화에서는 소박하면서도 일상적인 생활용품들에서 품격과 깊이가 느껴집니다. 샤르댕은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적인 대상들을 소재로 한 정물화를 많이 그렸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다룬 장르화genre painting도 많이 그렸습니다.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 1939~2017는 『일상 예찬Éloge du quotidien』1997에서 “일상생활을 묘사한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거기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유럽 회화”만 장르화라고 불렀지만, 장르화는 일반적으로 풍속화를 가리킵니다. 샤르댕의 장르화에는 물을 길어오거나 장을 보고 돌아온 하녀나, 자기보다 겨우 몇 살 아래인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가정교사, 비눗방울이나 카드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 같은 보통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풍경화와 정물화를 선호하지만, 미술관에서 샤르댕의 정물화들을 챙겨 보다 보면 같이 전시된 장르화들까지 꼼꼼하게 챙겨 보게 됩니다. 그러다 알게 된 그림이 『식사 전 기도』입니다.
앞글, 「화가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샤르댕’은 ‘샤르당’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샤르당’이 ‘샤르댕’보다 더 세련된 파리식 발음이라고 합니다. 샤르댕의 『식사 전 기도』를 처음 본 곳은 루브르 박물관의 쉴리Sully관에 있는 프랑스 회화 전시실이었습니다. 이 전시실에는 동시대 18세기 작가인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와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 1684~1721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돼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화가들이니 평소보다 더 열심히 사진을 찍었죠. 물론 샤르댕의 『식사 전 기도』도 포함해서요.
장 시메옹 샤르댕, 『식사 전 기도』, 1740년. 캔버스에 유화, 49.5 × 38.5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중산층 가정의 일상적인 저녁 식사 풍경을 담고 있는 이 그림 속에서 어머니는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있고 두 아이는 식탁에 앉아 식전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사진으로는 분간이 잘 안 되지만 음식을 장만하느라 찬물에 손을 담그고 있어서 어머니의 양손이 발개져 있습니다. 큰아이는 엄마의 말에 얌전히 기도를 드리는 반면에, 앞쪽 동생은 장난감을 가지고 더 놀고 싶은 마음에 기도하는 시늉만 내고 있고요. 귀여운 꼬맹이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그런데 앞쪽 동생이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지적한 평론가들이 있더군요. 동생이 앉아 있는 의자 뒤에 걸려 있는 커다란 북이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인 데다 프랑스에는 남자아이들에게 짧은 바지를 입히기 전에 드레스를 입히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대면서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의 아이들Madame Georges Charpentier con i figli』1878에서도 여자아이 복장을 한 남자아이를 볼 수 있으니까요. 가운데 앉아 있는 꼬마가 샤르팡티에 부인의 아들, 폴Paul입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의 아이들』, 1878년. 캔버스에 유화, 153,7 × 190,2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
일리 있는 지적 같죠? 어쨌든 『식사 전 기도』를 보고 나서 며칠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예르미타시 미술관을 관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봤던 『식사 전 기도』가 그곳에 또 걸려 있었습니다. 그림의 크기도, 구도도, 색깔도, 제목도 모두 비슷했습니다. ‘이 그림이 왜 또 여기에 있지? 분명히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책에 나와 있는데. 이건 위작이 틀림없어. 그런데 이렇게 전통 있고 명망 있는 예르미타시 미술관이 위작을 전시하고 있다고? 루브르에 이 그림이 있다는 걸 이 미술관에서는 모르는 거 아냐? 미술관에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하나?’ 온갖 황당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이 그림이 위작인 것 같다는 말을 미술관에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 그랬다면 러시아에서 제 무식함을 뽐내며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뻔했으니까요.
장 시메옹 샤르댕, 『식사 전 기도』, 1744년. 캔버스에 유화, 50 × 38 cm. 예르미타시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
루브르 버전과 예르미타시 버전을 한 번 비교해 보세요. 거의 똑같이 생긴 두 그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식탁 앞쪽 바닥의 화로 옆에 놓인 국자 혹은 부삽 같은 용기입니다. 루브르 버전에는 이 용기가 없는 반면, 예르미타시 버전에는 있습니다. 예르미타시 버전에서는 어린 두 아이의 뺨이 훨씬 더 붉어 보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두 그림의 사진을 대조해 보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야 루브르 버전1770이 원작이고, 예르미타시 버전1774이 모작인 걸 알았습니다. 더불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모작하는 경우는 표절이 아닐 뿐만 아니라 모작과 위작은 다른 개념이라는 것도 알게 됐죠.
그런데 몇 년 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세 번째 『식사 전 기도』를 발견했습니다. 샤르댕의 그림이 있는 프랑스 회화실은 사방이 탁 트인 구조가 아니라 입구 쪽에 파티션 같은 칸막이가 설치돼 있고 칸막이벽에 그림들이 걸려 있습니다. 『식사 전 기도』와 샤르댕의 다른 정물화 그림들을 보고 칸막이벽을 따라 부셰의 그림들로 넘어가려는데 또 다른 『식사 전 기도』가 보이더군요.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있는 『식사 전 기도』 말고 세 번째 『식사 전 기도』가 있었던 겁니다. ‘한 전시 공간에 똑같이 생긴 두 그림이 전시돼 있다니! 이건 뭐지? 내가 잘못 본 건 아니지?’ 첫 번째 그림으로 다시 돌아가서 설명문을 읽어보니 두 그림 모두 1740년에 그려진 것이었습니다. 이 두 그림은 국자 혹은 부삽이 없는 것까지 똑같습니다. 액자 모양만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 두 그림 중 어느 그림이 원작이고 어느 그림이 모작일까요?
장 시메옹 샤르댕, 『식사 전 기도』, 1740년. 캔버스에 유화. 루브르 박물관, 파리. |
너무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답은 가까이에 있으니까요. 제가 항상 강조하듯이 작품 캡션에 답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번째 『식사 전 기도』는 “1740년 살롱전에 출품된 그림의 복제본”이랍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두 모작 외에도 로테르담Rotterdam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과 스톡홀름Stockholm의 국립미술관, 윔즈Wemyss 부인의 컬렉션에 모작이 한 점씩 있다고 합니다. 총 다섯 점의 모작 중 세 점을 보지 못했으니 운이 좋으면 앞으로 세 번 더 놀랄 기회가 있겠죠?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여러 미술관을 다니다가 만난 모작들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암굴의 성모Virgin of the Rocks』도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는 흔히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작품으로 소개됩니다. 이 그림의 모작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저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나서 며칠 후 런던의 국립박물관에서 두 번째 『암굴의 성모』를 접했을 때 또다시 충격에 빠졌습니다. 작가 자신의 모작에 대해 그 동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겪으면 반응방식은 처음과 동일합니다. ‘어, 이 그림이 왜 또 여기에 있는 거야? 이 그림에도 모작이 있었던 거야?’ 루브르 버전은 1483~1486년에, 국립박물관 버전은 1495~1508년에 제작됐으니 루브르 버전이 원작이고 국립미술관 버전이 모작입니다. 먼저 두 작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액자를 보여 드리고 싶어서 제가 찍은 사진들도 곁들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그림 앞에 몰려드는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그림 전체를 찍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원작과 모작이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많죠? 일단 성모 마리아와 오른쪽의 앉아 있는 천사 우리엘Uriel의 옷 색깔이 다릅니다. 성모 마리아의 옷은 녹색에서 파란색으로, 천사 우리엘의 옷은 붉은색에서 녹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동굴 밖의 하늘도 국립미술관 버전에서는 파란색이 더 진해졌죠? 구도 면에서는 루브르 버전에서는 천사 우리엘이 세례 요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지만 국립미술관 버전에서는 손을 내리고 있습니다. 루브르 버전에는 없던 후광이 국립미술관 버전에서는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아기 요한 머리 뒤에 생겼고요. 루브르 버전에서 두 아기 중 누가 예수고, 누가 요한인지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수용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국립미술관 버전에서는 아기 예수가 작은 십자가를 들고 있는 것으로 수정했답니다. 아기 예수의 발밑에 있는 꽃들도 두 그림이 다릅니다. 여러 변화가 생겼지만 국립미술관 버전이 루브르 버전의 모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죠. 두 그림 중 어느 그림이 더 좋으세요?
『식사 전 기도』를 시작으로 여러 미술관에서 똑같이 생긴 그림들을 만났습니다. 피렌체의 피티 미술관Palazzo Pitti에서 크리스토파노 알로리Cristofano Allori, 1577~1621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디트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1620를 봤는데 며칠 후 바티칸의 피나코테카Pinacoteca에도 알로리의 『유디트』1613년 이후가 있더군요. 몇 년 후에 베를린의 게멜데갈러리에서 세 번째 『유디트』1610/15를 봤습니다. 이 세 그림 중 원작이 있을까요? 「위키피디아」를 보니 영국왕실컬렉션British Royal Collection이 소장하고 있는 『유디트』1613가 원작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왕실컬렉션 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게멜데갈러리의 『유디트』 때문에 어느 버전이 원작인지 살짝 헛갈립니다. 분명히 작품 캡션에 제작년도가 ‘1610/15’로 나와 있거든요. 1610년 아니면 1615년에 제작된 작품이란 말인데 만약 1610년에 제작된 것이 맞다면 게멜데갈러리 버전이 원작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 문제는 미술사학자들이 해결하겠죠? 아래 세 모작을 비교해 보면 거의 모든 것이 흡사한데 유디트가 매고 있는 허리띠의 색깔과 문양이 조금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피티 미술관의 유디트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버전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디트』, 1620년. 캔버스에 유화, 139 × 116 cm. 피티 미술관, 피렌체.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디트』, 1613년 이후. 캔버스에 유화. 피나코테카, 바티칸.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디트』, 1610/15년. 캔버스에 유화. 게멜데갈러리, 베를린. |
사실 작가들에 의한 모작들의 사례는 끝없이 이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식사 전 기도』, 『암굴의 성모』, 『유디트』 세 작품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찾아낸 모작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모작들에 대한 정보가 빠져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La Fornarina』1518~1520와 『루이 14세의 초상』, 『바쿠스』, 『유디트』의 모작들에 대해 제가 찾아낸 정보를 「위키피디아」에 공유했습니다. 앞으로 모작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위키피디아」에 공유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미술관에서 작가 자신의 모작이건, 다른 사람에 의한 모작이건 어떤 작품의 모작을 발견하게 되면 제게, 아니면 「위키피디아」에 공유해 주세요. 저처럼 모작을 만날 때마다 너무 놀라진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