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관람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 되고 나서 처음 얼마 동안 저는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기로 사진을 찍던 시절도 아니었고, 가지고 있던 카메라의 성능이 썩 좋지도 않아서 어두침침한 전시실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하면 제대로 된 사진이 한 장도 없었습니다. 미술관 도록에 제가 찍은 사진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굳이 좋지도 않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고 미술관 도록을 찾아보면 없는 경우가 많더군요. ‘아, 이래서 직접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거구나.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모두 도록에 실리는 것은 아니니까. 대형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경우 소장품이 모두 수록된 도록을 발간하면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니겠지.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나 같은 사람은 살 수도 없을 거야. 그래, 그냥 내가 찍자.’ 사진을 전공한 선배 아들에게 카메라 상담을 한 다음 성능이 더 나은 카메라를 장만하고 실내용 렌즈도 구입했습니다. 이제는 미술관에 가면 미친 듯이 사진을 찍습니다. 물론 제 얼굴이 들어간 인증사진을 찍지는 않습니다. 육안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보다 카메라 렌즈에 한쪽 눈을 대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죠. 그렇다고 미술관에 전시된 모든 작품을 다 찍지는 않습니다. 그러긴 불가능하죠. 명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과 제 마음에 드는 작품들 위주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가끔 고민이 됩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까지 사진을 찍어야 하나? 그냥 작품을 보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여러분은 어떠세요? 미술관에 가면 사진 찍느라 바쁘신가요? 아니면 눈 속에, 마음속에 작품을 담아오시나요?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미술관의 소장 작품이 전부 수록된 도록을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항공사의 초과 수하물 요금을 걱정하지 않을 만큼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분들. 두꺼운 도록들이 든 여행 가방의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어깨가 튼튼하신 분들. 한 번 본 작품을 캡션 내용까지 모두 기억할 수 있는 뛰어난 암기력을 가진 분들. 이런 분들은 당연히 사진 찍을 시간에 작품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경제적 여유도, 뛰어난 암기력도 없는 제게는 작품을 마음속에 저장하기보다 카메라에 담는 쪽이 훨씬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사진을 안 찍었으면 어쩔 뻔했어. 사진 찍어두기를 정말 잘 한 것 같아!’라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우선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사진 자료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찍어놓은 사진 자료들이 없었다면 그냥 글로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했을 테니까요. 물론 인터넷에서 작품 사진을 구하기는 쉽지만 저작권 때문에 글에 자유롭게 인용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작품 사진에는 액자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액자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에는 작가가 그림에 맞춰서 액자를 주문 제작했다고 합니다. 제가 오래전에 번역했던 『로스트 페인팅The Lost Painting』2007에 보면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가 액자를 주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면 이 책이 생각나서 액자까지 나오도록 사진을 찍곤 합니다. 제 글에 실린 작품 사진들 중에서 액자가 보이는 사진들은 대부분 제가 찍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진 가장자리의 빈 공간과 액자를 잘라내고 그림만 실으려고 했는데 액자와 작품 캡션, 그림이 걸려 있는 벽의 벽지 모양과 색깔까지 다 들어간 사진이 오히려 미술관의 현장성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엉성한 제 사진들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사실 미술관마다 독특한 벽지 패턴과 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벽지로 미술관의 특성이 드러나기도 하거든요.
제 사진 자료에서는 그림과 더불어 액자 모습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캡션도 함께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 작품 사진은 찍으면서 작품 캡션은 안 찍는 분들이 많더군요.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눈으로 본 것을 잊기 마련이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된 그 많은 작품들의 이름을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겠어요? 작품과 작품 캡션을 함께 찍어두면 사진을 보면서 작품을 익힐 수 있어서 좋습니다. TV에 미술관 사진이 들어 있는 USB를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슬라이드 쇼를 하면 집에서 미술관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작품이 서너 개 밖에 안 나오는 액자형 TV에 비할 바가 아니죠.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어두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첫 번째 작품은 『승리의 여신Victoire de Samothrace』기원전 200~190이었습니다. 『다 빈치 코드Da Vinch Code』2003에서 댄 브라운Dan Brown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반드시 봐야 할 작품으로 『승리의 여신』과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기원전 150~125, 『모나리자Mona Lisa』1503를 추천합니다. 댄 브라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서 올려다본 『승리의 여신』은 한 마디로 ‘최고Awesome!’였습니다. 아래층에서 올려다봐도, 위에서 내려다봐도,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멋있었죠.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보다 ‘멋지다’라는 수식어가 더 적합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처음 다녀온 친구가 그러더군요. “얼굴이 없어서 별로였어. 『밀로의 비너스』는 예쁘더라. 역시 얼굴이 중요한 것 같아.” 저는 오히려 얼굴이 없어서 『승리의 여신』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 친구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런데 몇 년 후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다시 올려다 본 『승리의 여신』이 달라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멋있어 보이지가 않더군요. ‘내가 이 조각상을 여러 번 봐서 그러는 걸까? 지난번까지는 너무 멋있었는데 지금은 왜 전만큼 안 멋있는 거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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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의 『승리의 여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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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의 『승리의 여신』 |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전 파리 여행 때 찍은 『승리의 여신』 사진들을 보게 됐습니다. 이전 여행 사진들과 이번 여행 사진들을 나란히 놓고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도 위 두 사진을 보고 그 이유를 한 번 추측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물론 사진 찍은 각도가 조금 다르긴 합니다. 제가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이 아닌 데다, 두 사진을 비교하기 위한 용도로 찍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각도가 다를 수 있죠. 그래도 두 여신상의 전체적인 색깔이 확연히 달라진 것은 아셨죠? 2013년의 여신상이 세월의 고색창연함을 입고 있다면 2016년의 여신상은 보송보송한 새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지난 삼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구나!’ 재빨리 구글을 검색해 보니 역시나 무슨 일이 있었더군요. 루브르 박물관에서 2013년 9월부터 여신상을 들어내서 일 년에 걸쳐 복원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온갖 먼지와 그을음으로 거무스름하게 내려앉은 세월의 때를 벗겨내고 여신의 하얀 대리석 속살을 드러낸 거죠. 벗겨낸 때와 함께 여신상의 아름다움도 함께 씻겨 내려간 것만 같아 아쉽지만 쾰른 성당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성당들에 가보면 항상 클리닝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 시작해서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처음 시작한 부분이 다시 거무스름해진 상태가 돼 있어서 클리닝 작업을 또 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클리닝 작업이 끝없이 이어진답니다. 하얀 대리석이 얼마나 검게 변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쾰른 성당인 것 같아요. 까마득하게 하늘로 치솟아 있는 성당의 시커먼 대리석 외벽은 멋있다기보다 무시무시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오염의 정도가 심해졌다면 『승리의 여신』도 쾰른 성당 외벽처럼 무섭게 변했을지 모릅니다. 뽀얀 대리석에 조금씩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으면 언젠가는 여신상이 2013년 이전의 아우라를 되찾을 날이 오겠죠? 아, 생각해 보니 달라진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복원 과정에서 여신의 발밑에 있던 단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여신의 키가 조금 작아졌습니다. 얼마 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술전문가가 복원 작업 이전에는 여신 발밑에 배가 없었는데 복원 후 배가 생겼다고 잘못 알려주더군요. 아래 두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배는 그대로입니다. 승리의 여신이 뱃머리에 올라선 자세로 바닷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는 거죠. 사진을 찍어두길 잘 한 것 같죠? 사진들 덕에 궁금증도 해결할 수 있고, 근거를 대며 오류를 지적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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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복원 전의 『승리의 여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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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복원 후의 『승리의 여신』 |
작품을 직관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작품의 의미를 나중에 사진을 보고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DIC 가와무라 미술관DIC川村記念美術館, DIC Kawamura Memorial Museum of Art은 도쿄 외곽에 있는 근현대 미술관으로,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방도 있고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근현대 작품들과 더불어 호수 위에 백조들이 떠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미술관에 한 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술관 앞의 버스정류장에 앉아 편의점 김밥을 꾸역꾸역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있을 때였습니다. 미술관 기행을 할 때 낮 시간에 멋진 식당에 앉아 느긋하고 우아하게 식사를 한다는 것은 꿈일 뿐입니다. 미술관들이 문을 닫기 전에 이곳저곳 들러 작품 보기도 빠듯하니까요. 그저 아사餓死를 면하기 위해 김밥을 먹고 있는데 앞쪽 화단에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반구半球를 바닥에 놓고 그 위에 평평한 원을 반으로 잘라 반원 두 개를 교차해서 배치해 놓은 작품이었습니다. 작품 캡션을 보니 제목이 『움직이는 우주Moving Cosmos』1968더군요. ‘아, 반구는 지구를 상징하고 평면 반원들은 우주를 상징하나 보다. 저 위쪽 반원들이 바람개비처럼 움직이는 건가? 제목이 『움직이는 우주』이니까 움직이겠지?’ 이렇게 단순한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보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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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쿠니 이다, 『움직이는 우주』, 1968년. DIC 가와무라 미술관, 도쿄. |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일본에서 찍은 미술관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눈으로 봤을 때는 놓쳤던 작품의 의미가 사진에 들어 있더군요. 반원들이 움직이건 움직이지 않건 상관없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금속 반구와 반원형의 금속판에 비친 주변 풍경과 하늘의 모습이었습니다. 반구와 반원들이 시시각각 움직이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거죠. 반구와 반원들은 지구나 우주를 상징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우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의 반사체들인 거죠. 주변 환경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이 작품은 시카고에 있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1954~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2006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구름 모양을 형상화한 금속판에 하늘의 구름이 반영돼서 작품 자체가 구름이 됩니다. 작품 밑 통로를 지나는 사람들은 구름 속을 지나가는 것이 되고요. 요시쿠니 이다Yoshikuni Ida, 1923~2006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서 제 해석이 맞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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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 『클라우드 게이트』, 2006년. 스테인레스강, 1,000 × 1,300 × 2,000 cm. 밀레니엄 파크, 시카고. en.wikipedia.org/wiki/Cloud_Gate 제공. |
사진 덕분에 작품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두면 제가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강홍구 사진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제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저는 사진을 찍고 작품을 만들면서 제가 본 걸 찍은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사진 속에 제가 본 것은 10%도 담겨 있지 않아요. 나머지는 제가 안 본 것이나 못 본 것 혹은 새로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진이란 것은 어쩌면 우리가 본 걸 찍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못 봤는지 증명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못 본 걸 다시 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요.”
제가 사진을 찍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자료가 아니라 증거 확보 차원에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간혹 미술관 작품 캡션에서 오타를 발견하거든요. 다음에 갔을 때 오타가 수정됐는지 확인 점검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어둡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작품 캡션에서 오타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괜히 우쭐해 하면서요. 책을 읽다가 오타를 발견하면 출판사에 꼭 알려줘야 하는 오지랖을 미술관에 가서도 멈추질 않는 거죠. 우피치 미술관의 한 작품 캡션에 ‘oil on canvas’가 ‘oil in canvas’로 잘못 표기돼 있더군요. 당연히 직원에게 알려줬죠. 이 년 후에 다시 가서 보니 그대로 있더군요.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자화상’이 ‘지화상’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한글이, 더구나 일본에서, 잘못 적혀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직원에게 말했더니 누군가 이미 지적해 줬다고 하더군요. 수정이 됐는지 아직 확인해 보질 못했습니다. 혹시 이곳 미술관에 가시면 저 대신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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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의 작품 캡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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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양미술관의 작품 캡션 |
사진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볼 때마다 저를 웃게 만드는 사진도 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조셉 룰랭의 초상Portrait of the Postman Joseph Roulin』1880을 보고 (또 사진도 찍고) 나서,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이 초상화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화 옆에 조셉 룰랭이 서있더군요. 제가 놀라서 그림을 가리키며 “어, 그림이랑 너무…Oh, you look so…”하고 더듬거렸더니 조셉 룰랭 아저씨가 “닮았죠? 나도 알아요.Similar, right? I know that.”하고 웃더군요. 살아 있는 조셉 룰랭 아저씨의 허락을 받고 두 룰랭 아저씨를 한 컷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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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조셉 룰랭의 초상』, 1880년. 55.2 × 66.4cm. 현대미술관, 뉴욕. |
자랑하고 싶은 사진도 있습니다. 제가 이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죠.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의 『대사들The Ambassadors』1533은 런던의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미술관의 일 층 로비에서 왼쪽 전시실 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에요. 미술관 입구에서 가까운 데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앞에는 항상 관람객들로 바글바글합니다. 제가 찍은 사진에서도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단체 관람객의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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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참나무에 유화, 207 × 210cm, 국립미술관, 런던. |
이 작품은 많이들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지식을 쌓고 문화생활을 즐기며 풍요롭고 성공적인 삶을 산다 해도 인간은 결국 죽을 운명이라는 것. 그러니 항상 “죽음을 기억할 것Memento Mori!” 그림의 아래쪽 중앙에 보이는 해골이 상징하는 것이죠. 왼쪽 윗부분에 커튼 뒤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살짝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아래쪽 물체가 해골처럼 보이나요? 사실 정면에서 이 그림을 보면 해골이라기보다는 오징어처럼 보입니다. 관람자 입장에서 그림의 왼쪽 아래에서 올려다보거나 오른쪽 위에서 내려다보면 오징어가 선명한 해골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림이 그렇게 높게 전시돼 있진 않아서 왼쪽에 서서 그림을 올려다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해골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붐비는 관람객들을 헤치고 오른쪽으로 가서, 몸을 왼쪽으로 돌린 다음 (키가 작은 분들은 발꿈치를 들고) 오징어 모양 물체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거죠. 혹시 나중에 런던의 국립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게 되면 한 번 이렇게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속 관람객들처럼 정면에 있으면 해골다운 해골을 볼 수 없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도록 형상을 비틀어서 이런 “왜상anamorphosis”을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죠? 해골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었지만 카메라에도 해골이 선명하게 잡힐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죠. 발꿈치를 최대한 들고 카메라를 양손으로 높이 쳐든 다음 셔터를 눌렀습니다. 렌즈에 해골이 잡혔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사진을 찍은 거죠. 그런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완벽하게 정면을 보고 있는 해골형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선명한 해골 모양이 찍혔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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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이 찍은 해골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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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 수록된 해골의 모습.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olbein_Skull.jpg#/media/File:Holbein_Skull.jpg 제공. |
그림을 정면에서 볼 때보다 해골의 모습이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나요? 수업시간에 르네상스 시대를 설명할 때 홀바인의 그림을 간혹 활용하기도 합니다. 제가 찍은 해골 사진도 곁들여 보여주면서 자랑도 조금 하고요.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어두면 여러 가지로 활용도가 높습니다.
사진을 찍어두는 것의 장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죠? 그런데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는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가 선호하는 방식대로 작품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