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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산업화가 멸종시키는
소농 가족농
미국은 가족농의 나라였습니다. 그것도 주로 소농 가족농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소농 기준은 한국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큽니다. 작은 농가라고 하지만 토지 규모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입이 떡 벌어지는 대농입니다. 소농들이 대부분 젖소나 양 등 가축 방목을 위한 목초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부개척 시대를 다룬 1960년대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는데, 위스콘신주 미국의 한 가족농 이야기입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가을의 전설」도 1차 세계대전 시기 몬태나주 미국의 어느 가족농 서사가 중심입니다.
아메리카를 침략한 유럽의 백인들은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버팔로 사냥하듯이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많게는 일억 명으로 추산되는 인디언들이 몰살됐습니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제노사이드였습니다. 대부분은 백인들이 옮긴 천연두, 홍역 등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백인들은 침략이란 말 대신 ‘개척’ ‘이주’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인디언들을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고까지 주장하면서 영토 침략과 약탈을 정당화했습니다. 백인들이 인디언의 땅에 말뚝을 박고 이 땅은 내 땅이다, 라고 선언하면 내 땅이 되었습니다.
2020년 기준 미국 가족농은 2백만 가구가 조금 넘습니다. 인구수로는 약 330만 정도 됩니다. 그중 89.2%, 10개 가족농 가운데 9개 농가가 소농 가족농입니다. 미국 전체 인구 약 3억 3천 2백만 명에서 소농 가족농 비율은 1% 남짓밖에 안됩니다.(미국 농무부, 「America’s Diverse Family Farms: 2021 Edition」)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도 대략 2백만 명이 약간 넘습니다. 미국의 소농 가족농과 원주민은 똑같이 멸종 직전의 비슷한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모두 자본주의와 산업 농업이 빚은 결과입니다.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풀뿌리 소농 자립경제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농업은 산업농업입니다. 산업농업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자연순환 농업과는 완전히 다른 농업입니다. 농사의 목적이 농지를 보전하면서 지속가능하게 수확을 더 늘리는 게 전혀 아닙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기 이익에만 눈이 먼 돈벌이 농업이 산업농입니다. 살충제와 제초제가 생명체를 깡그리 죽이고 인체에도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구잡이로 농지에 살포합니다. 그 결과가 레이첼 카슨이 말한 ‘침묵의 봄’이었습니다.
화학비료가 땅을 죽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학비료를 어마어마하게 뿌려댑니다.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돈이 안 되면 풍년 농사인데도 수확을 포기하고 농작물을 갈아엎어 버립니다.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산업농 농부는 땅과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아니라 땅과 생명을 죽이는 농업 자본가, 기업농 경영자입니다.
사회주의 또한 산업농업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최대 목표가 이윤이 아니라 오직 몇 % 성장, 또 성장이었습니다. 구소련은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고 역사 발전의 주체라는 구호를 내걸고 아예 모든 농지를 국가 소유로 몰수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소농 가족농을 모조리 농업노동자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그 결과는 국가 노예로 전락해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비효율과 비인간의 거대한 노동자 집단이었습니다. 결국 식량 수출국이었던 구소련은 식량 부족으로 국가 자체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산업농의 핵심 근거지인 미국의 밑바닥 풀뿌리 지역에서 조용한 혁명의 씨앗이 푸릇푸릇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모든 혁명은 고립의 섬이 아닌 체제의 변두리와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법입니다
미국 농무부가 강요하는 산업농을 거부하고 체제의 바깥에서 새로운 생태순환의 자립농업, 기후농업을 실천하는 반골 농부들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산업농의 쳇바퀴 감옥을 스스로 부수고 뛰쳐나온 이단아들입니다. 그리고는 도시의 직거래 소비자들과 함께 새로운 로컬푸드 체제, 소농 가족농 체제를 수립하고 있습니다. 산업 체제 전환의 근거지, 기후체제 전환의 해방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 록스던은 자립이 없으면 노예의 삶일 따름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는 웬델 베리,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 등의 생태순환 철학과 실천을 이어받아 자연과 함께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농부입니다.
그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을 나와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는 저널리스트로 살면서 끊임없이 자유로운 삶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마흔두 살이 되던 해에 자유의 삶은 바로 지금 여기 내 안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는 과감하게 자본주의의 멍에를 벗어 재껴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났던 고향,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구어 온 농장으로 돌아가 소농 가족농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쓴『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는 일종의 자립 농업 지침서, 반골 농부 생존 가이드라인, 산업농에서 생태순환 기후농업으로의 전환 매뉴얼입니다.
미국 농무부가 규정하고 있는 소농 가족농은 연간 소득 35만 달러 이하의 농가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돈으로 1억 이상의 수입을 얻는 소농!?은 극소수입니다. 소농 가족농의 연간 평균 수입은 미국 전체 가구소득 평균67,521달러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평균소득 아래에 몰려 있습니다.
소농 가족농은 농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전체 농업 생산량의 대략 20%를 생산합니다. 특이하게도 미국에서는 닭고기와 달걀의 절반 정도를 소농 가족농이 생산합니다. 소고기도 27.1%를 생산합니다.
진 록스던은 이런 소농 가족농 가운데 산업농을 거부하는 자립의 생태순환 기후농부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전제 조건, 에너지-식량 자립
자유는 자립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특히 먹거리 자립이 없으면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오직 나와 가족의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은 자유의 삶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선택의 자유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노동노예인 노동자라는 신분만을 선택할 자유란 자유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데 선택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자유는 무엇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해방과 탈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자유란 시꺼먼 석유문명 체제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입니다. 개발과 성장 체제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입니다.
산업자본주의의 노동노예, 금융자본주의 부채노예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입니다. 산업농으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입니다. 부자 되세요, 대박나세요 등의 탐욕스런 돈벌이 욕망으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입니다.
조직폭력 집단과 똑같은 동기로 대통령선거캠프를 차려 대선에서 이기면 3만개 이상의 고액 연봉 공직을 전리품으로 약탈해가는 현재의 낡고 부패한 엘리트 여의도 선거 정치로부터 탈출과 해방입니다. 주권자인 인민이 직접 공직자를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풀뿌리 직접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입니다.
소수 금수저 기득권자들인 여의도 정치인들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헌법과 법률을 개정하고 제정할 수 있는 국민발의권 개헌이 자유입니다. 불평등 타파가 자유입니다.
무엇보다도 먹거리 자립이 자유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IMF 사태를 맞아 일자리를 잃은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 청장년들이 자유를 찾아 도시를 떠나간 곳은 다름 아닌 농촌이었습니다. 농부는 죽을 때까지 실업의 공포가 없는 자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태평양에 버리기까지 할 정도로 남아도는 곡물을 처리하기 위해 미군정 당시부터, 특히 6·25동란 때부터 한국에 식량을 원조합니다. 처음에는 무상 원조였다가 곧바로 유상원조로 바뀝니다. 말이 원조지 목표는 남한의 식량자급율을 떨어뜨리고 미국의 주요 곡물 수출 국가, 식량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식량원조법인 미공법 480호 1972년 연차보고서는 “이들 기업합자회사 형태로 한국에 진출해 있던 카길, 랄스톤 퓨리나 등 미국의 4개 농식품 기업 ― 글쓴이 주은 … 미국산 옥수수, 대두박, 종축과 기타 농자재, 농기구의 대 한국 수출 급증을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공개리에 평가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거의 완벽한 미국의 식량 식민지로 전락해 있습니다.
에너지 자립이 자유입니다. 미국은 1950년대 말부터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1961년 군사쿠데타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52%가 미국의 원조였습니다. 미 국무장관 로스토우는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에게 한국이 시급히 해야 할 일로서 2가지를 거론했습니다. 식량 생산 증대와 전력의 안정 공급이 그것이었습니다. 명백한 미국식 석유농업과 산업화에 대한 강요이자 미국의 에너지-식량 식민지 시장화 전략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의 에너지-식량 식민지를 넘어서 완벽하게 금융 식민지로 편입되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자립과 자유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중세 농민들을 땅에 묶여 사는 농업 노예로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농노를 해방’시킨 자본주의를 역사의 진보로 생각했습니다. 조선시대 농민들을 양반의 착취와 억압 속에서 사시사철 배를 곯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유랑걸식하는 농민들로 묘사한 이른바 민중사학도 마찬가지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농민들로만 해석했습니다.
이런 주장과 학설은 일면의 진실일 뿐입니다.
서구의 중세는 노예의 개념에서 벗어난 소농의 자립 사회였고 조선시대 또한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의미하듯 소농 중심의 자립농 사회였습니다. 양반들도 농민들의 노동공동체인 두레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소농들의 삶이 그렇게 비참한 것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양반들이 농민의 토지를 빼앗고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극심해지는 때를 제외하고 조선시대 농민들은 사치스러운 낭비와 풍요의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자연에 순응하면서 넉넉한 우애와 환대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의 미르공동체는 러시아 나로드니키들이 사회주의 공동체의 이상형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우애와 환대가 넘치는 소농들의 공동체 사회였습니다. 미르공동체에서는 60년마다 불평등하게 변한 토지를 재분배하는 놀라운 전통도 있었습니다.
서구에서 농민들을 도시 노동노예로 내몬 것은 자본주의 산업화였습니다. 영주들은 농민들의 경작권을 폭력으로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또한 공유지에 말뚝을 박아 농사를 못 짓게 하고는 돈벌이가 되는 양떼 목장을 만들었습니다. 역사에서는 이를 인클로저 운동, 즉 말뚝박기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 초기에 영국과 유럽 농민들에게 벌어졌던 일이 아메리카로 옮겨가 원주민에게도 똑같이 들이닥쳤던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는 여섯 번째 멸종 사태를 넘어 인간 세상 자체를 없애버릴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종말론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은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사람의 견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뀝니다.
도시텃밭운동이 너무나 중요한 까닭입니다.
기후체제 전환의 시작,
도시텃밭 농사
농사일에 어두운 글쟁이들이 농사일을 “등골이 휘는” 일이라고 겁을 줍니다. 어릴 적 농사일을 경험한 노년 세대들은 모심고 밭작물 씨뿌리고 김매고 풀매고 가을걷이 하는 일 등등을 이구동성으로 힘든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전 농촌은 유아사망률 저하로 인구는 급증하는데, 불철저한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의 토지 규모는 적고 게다가 고리채에 시달리는 농민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산업화 근대화를 지상과제로 설정한 경제개발계획의 시행과 함께 당연히 직업으로서의 농민을 힘들고 천하게 여기는 현실과 문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습니다. 지금 50대 이상 은퇴자들의 귀농귀촌은 일종의 로망입니다.
도시는 분노가 쌓이는 곳입니다. 청장년 일자리도 갈수록 줄어들기만 합니다. 아파트 값은 월급쟁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 대박이 나려면, 그만큼 영혼이 혹사당하고 그만큼 시간과 삶을 대박 팔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처럼 대박 손해를 보고 망하기 십상입니다.
지금이 자립하는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거대한 식량위기의 검은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지금이 자립하는 기후농민, 소농 가족농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바로 그 때입니다.
도시 인근 주말텃밭에서, 주변의 공터에서, 하다못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웃들과 함께 씨앗을 나누고 자신이 기른 농작물로 함께 밥을 먹고 이웃과 우애와 환대의 관계를 만드는 일, 그것이 생존의 구명보트입니다. 먹거리의 극히 일부라도 자립하는 일, 그것이 자립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기후위기 극복의 체제 전환 첫걸음이자 첫거름입니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