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없다
백낙청의 이름짓기를 관통하는 세계 인식의 주춧돌은 진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론도 적당한 성장론도 진보주의자 백낙청의 세계관에서 빚어진 작명이라고 나는 읽고 있다.
그러나 진보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보 이념은 환상이다. 이 세상에 진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무상無常의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생각, 역사는 진보한다는 이념은 그 어떤 근거도 없는, 유사 종교와도 같은 맹신에 지나지 않는다.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이론과 역사이론에 잘못 적용한 대표 사례일 뿐이다.
찰스 다윈은 진화라는 용어를 『종의 기원』 초판에는 쓰지도 않았을 만큼 처음에는 진화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쓰기를 거부하기까지 했다.찰스 다윈, 『진화론』, 장대익 옮김 다윈은 진화론을 주장한 게 아니라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변화를 주장했을 뿐이다. 다윈은 더 고등하거나 더 하등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할 만큼, 아무리 생각해도 진보를 향한 내재된 경향 같은 것은 없다고 고백할 만큼 진보주의자가 아니었다.
다윈의 생각과는 별개로 진화라는 용어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에 의해 정식 생물학 용어가 되면서 서구인의 일상용어에서도 진보를 뜻하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을 통한 유럽의 물질문명 발전과 자본주의 발전이 바로 진보이자 역사의 필연이라고 확신한 시대였다. 사회주의 운동은 바로 이같은 역사의 진보와 필연을 역사유물론이라는 법칙으로 정식화해서 전세계를 ‘진보’시키고자 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자본주의를 뒤쫓아 가 그 자리에 자본주의 말뚝 대신 사회주의 말뚝을 박고자 한 일종의 프롤레타리아 말뚝박기enclosure 운동이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구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수천만 명에 달하는 학살자, 아사자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마이클 돕스의 『1991』, 프랑크 디쾨터의 『해방의 비극』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진화론이라는 명칭 자체도 이제는 변화론으로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생물체가 변화한 역사는 인류를 향해 일직선으로 진보한 역사가 아니다. 인류는 진보의 꼭대기에 다다른 가장 우수한 종이 아니라 자연선택에 따라 환경에 적응해온, 지금 여기 지구라는 행성에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물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진보를 버려야 생존의 구명보트가 보인다
21세기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발전과 진보의 결과인 서구 근대 산업문명은 스스로 자기 파멸의 절벽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중이다. 서구 근대 산업화만이 유일무이한 진보라 맹신하고 남과 북에서 똑같이 추구한 부국강병의 국가주의 산업화는 구소련의 값싼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자마자 몰아닥친 북한 사회주의의 실패와 함께 이제 허상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풍요를 구가하는 남한의 진보도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내세웠던 북한의 진보도 눈앞에 닥친 기후위기, 에너지-천연자원의 고갈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풍요를 조금만 따지고 들어가면 과연 한국을 자유인이 더불어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 국가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 지경이다.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노예의 집단수용소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자살자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가 넘고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2배나 많은 자살공화국이다.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이 전체 국민 6명 중 1명꼴인 8백만 명에 달한다. 한국이 얼마만큼 극단으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표는 너무나 많다.
우리는 이런 사막사회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우애와 환대의 인간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나무와 풀이 우거진 사람의 숲으로 바꾸어야 한다. 돈의 노예에서 다시 사람이 주인으로 변하는 자유인의 연대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내 삶도 사람다운 삶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바꾸어야 할 낡은 생각이 바로 진보와 경제성장 이념이다. 근대화, 서구화, 산업화, 개발과 성장 등등 온실가스 가득한 시커먼 이름의 냄비 속 개구리의 삶으로부터 뛰쳐나와야 그나마 생존의 길이 보인다.
기후위기와 식량전쟁, 무엇이 우리를 구할 것인가
전환의 시대에 농업과 에너지는 인민의 생사를 결정하는 생존의 핵심 조건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전세계 구석구석까지 촉수를 뻗어 흡혈귀처럼 인민의 피와 땀을 빨아들이는 착취와 억압의 체제 속에서도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삶을 모색하는 인민들은 너무나 많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상호부조의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면서 건강한 유기농 식량도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도 흡수하고 햇빛발전도 생산하는 자원순환의 자급자족 기후농업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자유인들은 숱하게 많다. 핵과 화석연료 에너지로 냉난방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에너지 효율화 주택, 일백프로 에너지 자립 주택을 지으면서 전환도시 운동을 실행에 옮기는 지역주민들도 숱하게 많다.
그린뉴딜을 선도하는 미국의 샌더스와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현상 배경에도 이런 대안의 풀뿌리 공동체 운동이 있다. 민주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수많은 청년들, 알린스키Saul David Alinsky의 주민조직화 전략에 따라 지역에서 주민을 조직하는 주민운동, 풀뿌리 협동조합운동, 탈脫탄소 에너지전환 운동, 원주민 조직운동과 이주민 조직운동, 소수자 조직운동 등등 풀뿌리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수많은 주민들을 밑바탕으로 이들이 부상한 것이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다. 조만간 전세계 식량전쟁은 필연이다. 핵폭탄보다도 더 위력 있는 기가톤급 무기가 바로 식량이다. 식량을 갖고 있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
국가 간 식량전쟁보다 더 끔찍한 전쟁이 국가 내 부자와 빈자 간의 전쟁이 될 것이다. 사실 북아프리카와 시리아 등지의 기후난민 사태는 다름 아닌 기후재난으로 인한 식량 부족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기후위기 식량전쟁을 앞당겨 가시화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19년 약 45%로 절반 이하다. 가축 사료까지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이미 20% 선도 붕괴되어 10%대 후반에 불과하다.
1990년대 초반 북한에서는 지금까지도 그 규모를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인민이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북한의 식량자급률이 70%대였다. 전세계 식량전쟁이 발생해 돈 주고도 식량을 수입하지 못할 경우 우리에게 일어날 끔찍한 사태는 생각만 해도 그야말로 섬뜩해서 머리칼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다.
199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구소련은 공식 해체되었다. 구소련 해체의 직격탄은 곧바로 북한을 덮쳤다. 사실 북한의 식량 생산과 공업은 구소련이 거의 공짜에 가깝게 공급하던 석유에 의존하고 있었다. 농업도 석유농업이었고 사회주의 경제 전체가 석유경제였다. 이후에 일어난 북한의 아사 사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북한은 적어도 1970년대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살던 사회주의 모범국가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이 독일군의 공격과 공습으로 식량공급 체계가 무너졌을 때, 시민들을 먹여 살린 것은 시민들 스스로 집 앞과 도시 곳곳에 조성한 도시텃밭gardening과 승리를 위한 경작Dig for Victory이었다.
구소련 멸망 뒤 국가의 배급이 끊겼음에도 러시아 도시 주민들이 굶어죽지 않은 것은 다차Dacha라는 도시 근교 텃밭에 스스로 감자를 비롯한 농사를 지은 덕분이었다. 전체주의 국가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쿠바 또한 북한과 똑같이 구소련이 무너진 직후 구소련으로부터 거의 공짜로 공급받고 있던 석유 공급이 끊기고 모든 산업이 기능 정지 상태에 빠진 국가 비상시기를 맞았다. 이때 쿠바 인민들을 굶주림에서 구한 것도 그 유명한 도시농업이었다.
2010년 IMF 사태 당시 아무런 일자리도 없는 그리스 청년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길도 귀농이었다. 지금 그리스는 전세계에서 유기농 청년 농부들이 가장 많이 증가한 나라이다.
자립자치의 마을공동체가 인민의 생사를 가른다
구소련의 석유공급 중단이라는 똑같은 상황에서 다수의 굶어죽는 인민이 생긴 북한과 가난하지만 굶어죽은 사람은 없었던 쿠바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북한과 쿠바, 구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민들은 모두 식량과 생필품을 배급제로 공급받고 있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북한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이 이제나저제나 언제 배급을 줄지 기다리다 굶어죽고 말았다. 인민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발휘될 수 없는 수령 중심의 국가 체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쿠바는 북한과 다른 체제의 사회주의 국가였다. 쿠바 인민들은 바리오barrio 지역공동체의 이웃들과 힘을 합해 국가의 땅이건 뭐건 빈 땅에 닥치는 대로 텃밭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쿠바 인민들은 이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쿠바 정부 또한 이런 도시텃밭 인민들의 자립 농사를 강력하게 지원했다.
한마디로 쿠바에는 자립자치의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북한에는 이러한 자립자치의 마을공동체가 없었다. 체제 전환기에 생사를 가르는 것은 자립자치의 마을공동체와 주권자 이웃 민주주의다.
일찍부터 동학과 원불교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온 백낙청의 개벽세상이 어떤 행동을 촉구할지 궁금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개벽세상을 향한 공부와 행동의 길에서도 여전히 국가 우선의 시각일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프레시안(http://pressian.com)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