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은 올해처럼 피부에 닿은 공기가 끈적거리고 목욕탕에 문을 열고 한 발을 디뎠을 때 훅하고 얼굴을 강타하는 더운 열기처럼 숨 막히는 시절이었다. 집은 더웠고, 네 명의 아이들에겐 좁고 답답한 공간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10살, 9살, 6살, 3살의 아이들을 데리고 시원하고 편안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 시기에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많아 지치고 고생을 해야 해서 물놀이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먼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이 세 명이니 막둥이만 보면 될 일이었다. 집에서 한참을 달려 선산도서관에 도착을 했고, 나의 예상대로 세 명은 어린이자료실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나는 사서가 마련해준 돗자리를 깔고 막둥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세 살 아이가 그림책을 몇 권이나 볼 수 있을까? 채 네 권을 다 읽기도 전에 막둥이는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신발을 신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일층 로비에 그림책 전시를 구경하고 2층 계단을 막둥이 손을 잡고 오르락내리락을 몇 번이나 했다. 역시 막둥이가 최고다. 출산 후 불은 몸무게를 쫙쫙 빠지게 하는 살아있는 운동 머신이다. 막둥이와 도서관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와중에 ‘풍경독서회 회원 모집’이라는 종이를 보았다.
한 달에 몇 번을 모이는지, 무슨 요일인지, 몇 시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누구나 환영’이라는 문구가 눈에 각인이 되었다. 책은 읽고 싶었지만 다둥이들 육아로 틈이 없어 일 년에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은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한번 가볼까, 하고 마음이 동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먹이고 씻기는 패턴으로 살아오면서 ‘이러다가 나는 바보가 되는 건가, 직장 생활은 할 수 있을까, 나이는 계속 드는데 뭘 할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이 있었다. 다음날 전화를 해볼 작정이었다. 막상 전화를 하려니 ‘일 년에 책 한 권 못 읽는 내가 독서회에서 창피만 당하는 것 아닌지, 책은 완독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망설여졌다. 그래도 ‘전화는 해 보자’ 하며 용기를 내어 회원 모집 공고에 있던 ‘풍경독서회’ 회장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독서회 회원 모집을 하죠? 참여를 하고 싶은데….” 하며 상대방에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독서회 회장님은 “그래요. 무조건 환영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목요일 열 시에 ‘강의실 2’로 오시면 됩니다. 도서는 여름에 딱 읽기 좋은 『7년의 밤』입니다. 다 못 읽고 와도 되니 부담 없이 오세요.”라고 사람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유정 작가의 다른 책들은 몇 권 읽어 보았는데 『7년의 밤』은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집 근처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2주의 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완독을 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첫 독서회 모임에 책을 다 읽지 못하고 간다는 것이 싫었다. ‘헉’ 빌린 책은 두께가 있었다. 내가 완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걱정이 앞섰다. 아이들을 재우고 평소 같으면 시장 바닥처럼 어질러진 방을 청소하기 바빴을 테지만 나는 책을 들었다.
기대되고 걱정되는 독서회 첫날. 완독의 기쁨을 독서회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낯선 독서회 장소 문 앞에서 ‘후후’하고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들어섰다. 처음 보는 독서회 회원들이 다섯 명 남짓 앉아 있었다. 격한 호응은 아니었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독서회 회원들은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 감정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토론을 했다. 나도 주인공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삶이 이해는 됐지만 논리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나를 드러내고 내 생각을 발표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첫 번째 독서회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눈치 보느라 풍경님들의 이야기에만 공감하며 저물어 갔다.
매달 선정된 도서를 읽고 완독하려 했고,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8년 동안 『일리아드』 『전쟁과 평화』 『페스트』 『오래된 미래』 『사피엔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호모 데우스』 『도련님』 등 인문 고전이나 베스트셀러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완독의 기쁨을 누렸고, 독서회를 통해 나를 표현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토론을 하며 다양한 생각을 알게 되었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풍경님들의 이야기로 간접 경험을 하게 되었다. ‘풍경독서회’는 토론에만 머물지 않았다. 요양 병원이나, 주간재활시설에 방문을 하여 노인들에게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해보지 않은 활동이라 부담이 되고 어깨가 무거웠다. 책을 선정하고 독후 활동까지 오롯이 나의 몫이었지만, 봉사에 투자하는 시간은 나에게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삶의 종착역에 가까워진 어르신들의 만나 뵈며 그들과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얘기를 하고 어떤 활동을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들과 호흡하며 내가 배우고 커가고 보람이 있었다.
이 활동을 계기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 육아를 하고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책 속 인물들의 삶의 여정을 보며 동기가 생겼다. 매달 하는 독서회에서 나의 고민을 얘기하면 풍경님들은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말고 도전해 보세요. 나도 그만한 나이에 얘들이나 키워야지 하며 주저앉았어요. 할지 말지 고민이 되면 그땐 실행하는 거예요.”라는 용기의 말들을 해주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자양분이 되었다. 느리고 천천히 칠 년간의 공부를 시작했다. ‘사십대 후반에 공부해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일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들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때마다 독서회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작년에 나는 경력 단절을 딛고 재취업에 성공을 했다.
독서회 활동은 내가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주었다.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있어서, 결혼을 해서, 라는 제약들은 더 이상 나를 주저앉게 하지 않는다. 이 힘은 독서회에서 읽은 많은 책들과 그 속에서 소통하는 풍경님들의 토론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처음 독서회에 문을 두드렸을 때, 풍경님들의 평균 나이는 오십이었다. 사십 대인 내가 가장 어린 회원이었다. 풍경님들을 보며 감히 “사람이 책이다.”라고 하고 싶다. 그들이 살아온 삶 속에서 아픔과 상처를 보았지만 그것을 딛고 이겨낸 영광을 봤다.
그 빛을 따라 나는 꿈을 꾸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취업했다고 내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대학원에 입학해서 꿈을 꾸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늦은 나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게 된 내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나를 성장시킨 독서회가 고맙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