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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넓이를 확장해 나가는 독서 모임
중급독서자
모이는 곳
경북 포항시 덕수동 일대 북카페
모이는 사람들
20대 청년
추천 도서
① 『안나 까레니나』 톨스토이 지음 / 이명현 옮김 / 열린책들 펴냄
②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 김연경 옮김 / 민음사 펴냄
③ 『죄와 벌』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펴냄
④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펴냄
⑤ 『거장과 마르가리따』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태풍과 비바람 뒤 맞이한 화창한 일요일 오후 2시. 포항시 북구 덕수동 일대에 위치한 북카페에서 올 4월에 신설되어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중급독서자’가 모임을 가졌다. 총 네 번 밖에 만나지 못했다고는 하나 세미나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친근하고 활기찼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로 어색하고 두려운 마음을 안고 발을 들였으나 ‘중급독서자’ 회원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세계 고전 문학의 묘미
“일단은 책이 너무 길어서 자주 보는 것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요. 본인이 직접 다 읽겠다는 강한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책은 자유롭게 읽지만, 모임 때는 제대로 준비해 와야 해요.”
초보라기에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장편을 많이 읽어본 고급도 아니라 ‘중급’으로 정한 ‘중급독서자’의 모토는 ‘느슨하지만 견고하게, 자유롭지만 성실하게’이다. 분위기는 자유롭지만, 두꺼운 책에 매겨진 색색의 인덱스들은 모두가 진지하게 모임에 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고전 문학을 읽으며 물어보고 싶거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모아 발제문을 만들고,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질문은 각자 맡아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고 진행이 깔끔하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문화의 흐름, 특징을 공유하고 구절들을 해석하는 모습에서는 ‘중수’가 아닌 ‘고수’의 느낌이 물씬 흘렀다.
한계를 넘어서다
요즘 사람들은 대개 가벼운 모임을 선호하고 무거운 주제의 모임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책을 읽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모임의 장점은 무엇일까.
“확실히 ‘밀도’가 다른 것 같아요. 짧은 책에 비해 긴 책이 얘기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고, 그래서 내놓을 것도 더 많은 거죠. 짧은 책이나 내용이 깊지 않은 책들을 다루면 한계가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두꺼운 책을 같이 읽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이 말에 다른 회원들도 맞장구를 치며 공감했다. 깊이 있는 내용을 통해 사유와 고찰이 가능한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뽑았다. 또 다른 모임에 비해 각자 책을 읽고 피상적인 의견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완결시킬 수 있어 좋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려운 점도 있었다. 세계 고전 문학의 내용은 높은 이해력이 요구되고, 등장인물의 긴 이름과 낯선 지명이 독서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 시대에서는 종교적인 얘기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종교적인 관점이 없다 보니까 그냥 강 건너 바라보는 입장이라 잘 이해가 안 되고 몰입하기가 힘들었어요. 이야기적 측면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보는 재미는 있는데, 종교 부분이 제게 난관이더라고요.”
이번 모임의 주제 도서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정점이라고 평가되지만, 종교적 색채가 강해서 종교가 없는 회원들에게는 난관이었다. 3주 동안 90페이지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아 고통스러웠다는 회원, 책 표지에 그려진 인물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피하게 된다는 회원도 끝내 책 표지와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결국 완독하고 열심히 모임에 참여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완독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고, 책이 잘 읽히지 않는 이른바 ‘책태기’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는지 물어봤다.
“극복은 숙제죠. 저희가 한 달에 한 번 만나니까 모임 전까지는 무조건 해치워야 된다는 의무감에 쫓겨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나면 되게 뿌듯해요. 내가 해냈다. 그런데도 책 펴기가 되게 힘들 때가 있긴 해요.”
“항상 후련함을 되새겨보는 것 같아요. 도장 깨기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책 목록에서 한 개씩 지워나가는 거죠.”
이처럼 완독의 성취감을 되새기거나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등 각자의 방법을 통해 모두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고전에 친숙해져서 책을 처음 고를 때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회의를 통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하던 부분들을 알게 되는 효과를 주었다. 회원들은 생각의 폭이 넓어지며 자신이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모임에 푹 빠졌을 때는 최대 4시간까지도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는데, 이렇게 ‘중급독서자’의 회원들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오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취재단 사고뭉치(김세진, 배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