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낭독 모임, 실버 독서동아리의 새로운 길잡이가 되다
은비소리
모이는 곳
도봉도서관
모이는 사람들
실버 회원들과 최숙자 대표
추천 도서
① 『포노 사피엔스』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펴냄
② 『문장의 온도』 이덕무 지음 / 다산 초당 펴냄
③ 『취서만필』 장석주 지음 / 평단 펴냄
④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 정여울 지음 / 홍익출판사 펴냄
⑤ 『단테의 신곡』 알리기에리 단테 지음 / 다니구치 에리야 엮음 / 양억관 옮김 / 황금부엉이 펴냄
독서동아리 모임을 진행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 발제자를 정해서 진행에 따라 의견을 나누는 모임 등 전국의 많은 독서동아리들은 여러 방식으로 모임을 진행한다.
이번에 만나 볼 동아리는 낭독 모임을 진행하는 ‘은비소리’다. 혼자서는 읽기 어려운 책을 함께 낭독하며 책과 관련된 자신의 감상과 경험을 공유하는 서울 도봉구의 독서동아리이다.
지난 10월 16일, ‘은비소리’를 만나기 위해 도봉도서관 시청각실에 방문했다. 최숙자 대표를 포함해 총 아홉 명의 회원이 참석했다. 회원들은 시인, 인지 강사, 성우, 동화 강사 등 책이나 낭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취재 당일에는 『취서만필』이라는 책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21세기 책비, ‘은비소리’의 낭독모임
‘은비소리’는 SILVER를 뜻하는 ‘은’과 조선시대 책을 읽어주던 직업여성 책비의 ‘비’, 목소리의 ‘소리’를 합친 말이다. 최 대표는 도서관 관장에게 실버 층이 많은 도봉구에서 책 읽는 동아리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마침 북스타트나 책 읽어주는 문화 봉사단에서 활동할 때 만난 회원들이 생각 나 연락해봤는데, 다들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해서 고마웠다고. 그렇게 최 대표와의 인연으로 모인 회원 여덟 명에서 시작한 ‘은비소리’는 회원들이 각자 지인을 데려오며 현재 이십 명으로 늘었다.
최 대표는 어떤 형식으로 동아리를 운영할지 고민하다가 회원들에게 낭독 모임을 제안했다. 독서동아리를 운영하다 보면 의무적으로 책을 읽기도 하고, 회원들에게 숙제를 주면 책을 읽지 못해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회원이 발생하기 쉽다. 하지만 ‘은비소리’만큼은 부담 없이 쉬었다 가는 동아리로 만들고 싶어, 당일 낭독을 통해 함께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실제 ‘낭독’이라는 방식은 회원들이 ‘은비소리’에 오래 참여하고 정이 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영진 회원은 “혼자 조용히 책을 읽다가 소리 내 읽으며 낭독의 즐거움을 느껴 계속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현영 회원은 “회원들 고유의 목소리로 책을 읽다 보니 책의 사전적 의미보다 감정이 실려서 훨씬 좋았다”고 한다. 회원들 모두 낭독이라는 형식을 좋아하고, 부담이 없어서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게 되었다는 의견이었다.
‘낭독’으로 책을 읽으면 좋은 점에 관해 묻자, “우선 부담이 적고, 가끔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길어져 진도가 잘 안 나가기도 하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 살아 온 세월이 길다 보니 소설부터 교양서적까지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한 책 속에서 각자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전옥임 회원은 “책을 읽으면서 추억을 소환하고 과거의 삶에 대해 반추하며 서로 끈끈해졌다. 수줍은 편이었는데 소리 내어 책 읽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변화도 생겼다. 덧붙여 최현영 회원은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옛 추억을 회상하다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좋다”는 의견을 주었다.
회원들은 이제 소리 내어 책 읽는 것이 익숙해졌다. 한영진 회원은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문장을 읽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 이제 회원들은 집에서 조용히 읽으면 재미가 없다며, 동아리에 와서 책 읽는 것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회원들과 대표의 아름다운 시너지
‘은비소리’는 회원 간의 끈끈함과 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모임을 지속하고 있었다. 처음 방문한 취재단도 반갑게 맞아주며 마치 원래 회원이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렇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열심히 낭독 모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회원들은 입을 모아 ‘최 대표의 덕’이라고 했다.
남숙자 회원과 이인수 회원은 “모든 모임에서는 대표의 역할이 중요한데, 최 대표는 회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사람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도 최 대표의 덕”이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전옥임 회원은 “최 대표가 순발력 있게 모임을 리드하고, 슬픈 기운이 감돌 때 눈치 빠르게 회원들을 이끌어 기분이 나아지게 해 주는 능력자”라고 표현했다.
최 대표는 이러한 회원들의 말에 부끄러워하며 감사함을 전했다. “일하면서 힘들 때마다 회원들이 위로해주는 한 마디를 듣고 힘을 얻어 동아리를 운영 중”이라며 “회원들의 책에 대한 열정과 끌어주는 힘이 없었다면 동아리가 이렇게 꾸준히 운영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실버 동아리의 코로나19 대처법
‘은비소리’는 현재 코로나19를 통해 새로운 기술들을 접하고 배우는 중이다. 실버 동아리이다 보니 언택트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회원들은 최 대표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ZOOM, 라이브 톡 등 실시간 화상모임 앱에 적응하며 업그레이드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 대표는 회원들이 녹음 기능, 라이브 기능을 너무 잘 배우면서 따라와 놀랐다고 한다. 이제는 “유튜브 라이브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할 만큼 발전한 상태라고.
한영진 회원은 “집에서도 ZOOM을 통해 모임을 진행하자 가족들이 놀란 눈치”라며 “나이가 있어도 비대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신의 모습이 뿌듯하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유행과 거의 동시에 회원들은 『포노 사피엔스』를 읽으며 모르는 분야, 신인류로 들어가는 입문을 접했다. 경제, 국가 관계 등 매우 발전한 현대의 상황을 읽으며 감명 받고,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다.
이렇게 코로나19에 잘 적응해 나가는 ‘은비소리’ 회원들은 “그래도 대면이 좋다”며 대면 모임이 주는 돈독함이나 공동체 의식이 그립다고 했다. 다양한 기술을 접하며 비대면 시대에 적응했지만, 오히려 한솥밥 먹는 것의 중요함을 느꼈다며 대면 활동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회원들의 안식처가 된 ‘은비소리’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회원들에게 “나에게 ‘은비소리’란 무엇인지?”를 묻자, 시적인 표현이 쏟아졌다. ‘마음의 식량창고’, ‘새로운 지식 나눔의 공동체’, ‘노년의 동반자’, ‘영혼을 정화하는 모임’, ‘보물창고’ 등 회원들에게 ‘은비소리’가 얼마나 애틋하고 정든 모임인지를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최 대표 또한 ‘친정집 같다’는 표현으로 ‘은비소리’에 대한 마음을 나타냈다.
인터뷰를 통해 실버 세대와 함께하는 독서동아리에서 ‘낭독’이라는 형식의 진행 방법이 모임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려심 많은 회원, 그리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대표의 시너지로 낭독 모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은비소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모임을 지속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싹 씻어주었다. 오히려 10대, 20대 못지않은 열정으로 꾸준히 모임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은비소리’의 모습이 기대된다. 아무쪼록 ‘은비소리’의 낭독 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길 바란다.
★취재단 성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