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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아침을 독서로 깨우다
안산 독서 포럼
모이는 곳
안산시 사동 대동서적 세미나실
모이는 사람들
20~70대 학생, 주부, 직장인 등
추천도서
· 흑산 (김훈 지음, 학고재 펴냄)
· 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
·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지음, 김영사 펴냄)
· 다윈 지능 (최재천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 사고의 본질 (더글라스 호프스태터, 에마뉘엘 상데 지음, 아르테 펴냄)
아침 해가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오전 6시 50분, ‘안산 독서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안산시 사동을 찾아갔다. 아직은 차도 사람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주변이 무척이나 조용했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릴 정도였다. 아무도 들이마시지 않은 것만 같은 상쾌한 공기가 거리에 가득했다. 이토록 이른 시간에 독서모임을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적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바깥 풍경과는 달리, 독서모임을 위해 사동의 대동서적 세미나실을 찾은 인원은 상당했다. 20명 가까이 되는 회원들이 이번 주 선정 도서인 『채식주의자』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산의 아침을 독서로 깨우다
주말 아침부터 집 밖으로 나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토요일 아침에는 많은 사람들이 평일에 쌓인 피로를 채 떨쳐버리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안산 독서 포럼’ 회원들에게 이토록 이른 시간에 모이는 이유를 물었다.
“초창기에는 더 늦게 모인 적도 있었는데, 굳이 다른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고 개인적인 활동을 다 할 수 있는 시간이 7시에서 9시더라고요.”
“7시에 와서 독서모임을 해보니까 하루가 이틀 같아요. 토요일을 아주 알차게 보낼 수 있어요. 모임이 끝나도 아침에 일어날 시간도 안 되는 거예요.”
‘안산 독서 포럼’은 직장인이 주를 이루는 모임이니만큼 모두의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오전 7시를 택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벽 기도 가는 기분으로 와요”라는 어느 회원의 말에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에 모임을 찾는 이유는 결국 조금의 수고로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보람과 에너지를 얻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읽으며 함께 성장하다
안산 시민이라면 ‘대동서적’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안산의 대표적인 대형 서점 대동서적이 바로 ‘안산 독서 포럼’의 시발점이다. 2012년, 대동서적 최창규 대표가 사회 공헌 차원에서 시작한 독서모임이 지금의 ‘안산 독서 포럼’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점 대표와 직원들이 주로 참여했으나, 모임이 확장되면서 지금은 안산 시민뿐만 아니라 안산 외 지역에서 찾아오는 회원들도 생겼다.
‘안산 독서 포럼’은 상당히 체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해 동안 읽을 책을 선정한 뒤 발제자를 정하면, 발제자가 중요한 논제들을 이삼일 전에 네이버 밴드에 올린다. 독서모임이 시작되면 발제자가 약 20분 정도 작품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정리한다. 발제가 끝나면 7~8명이 한 팀으로 나뉘고, 준비된 논제를 중심으로 팀의 리더가 토론을 진행한다.
이번 모임에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발제자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소설의 핵심 내용과 함께 소설에 적용할 수 있는 철학 이론들을 알 수 있었다. 발제가 끝난 뒤 세 팀으로 나뉘어 준비된 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품을 읽은 소감과 공유하고 싶은 문장 등 작품 전반에 관한 논의부터, 등장인물 ‘영혜’가 고수하는 ‘노브라’에 대해 요즘의 우리 사회와 각자의 견해를 알아보는 등 폭넓은 주제로 함께 읽기가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진행을 계속하던 분들이 계셨는데, 이제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진행을 하고 있어요. 진행을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 독서 포럼이 하나의 동기부여가 돼서, 깊게 공부할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다 똑같이 돌아가면서 진행하도록 했어요.”
“저희는 연구를 통해 모임을 질적으로 성장시키려고 노력해요. 여기에는 전문가도 몇 분 계시고 책을 잘 읽는 분들도 계셔서 성장할 수 있는 지름길을 잘 찾아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게 ‘안산 독서 포럼’이 가진 함께 읽기의 장점인 것 같아요.”
사회 공헌 차원에서 시작된 독서동아리인 만큼, 동아리의 발전을 위한 회원들의 고민은 끝이 없다. 일일 회원으로 ‘안산 독서 포럼’에 참여하면서, 그 고민이 ‘안산 독서 포럼’을 더욱 깊이 있는 독서동아리로 만드는 원동력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회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안산 독서 포럼’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회원 한 사람이 독서 토론 지도자 과정을 비공식적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가끔은 외부 인사를 초청해 특강을 열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문학 답사와 송년회, 선정 도서 외에 관심 있는 도서가 생기면 주중에 모이는 ‘독서 번개팅’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한다. 한 회원은 모임에서 『동의보감』을 읽고 다산 생가로 봄 소풍을 갔던 일을 회상하며, “소풍을 통해 작품이 내면화가 되어 기억에 오래 남는다”라고 전했다.
책 읽는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
“학창시절을 지나면 다양한 배경과 삶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데, 바깥에서 만나면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잖아요. ‘나이가 몇이에요, 집이 어디예요’ 같은.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경계 없이 얘기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조금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로 정리해야 말이 나오는 사람이라서요. 그런데 이런 독서모임에서 책을 매개로 이야기하다 보면 내 생각과 고민, 주변의 일들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돼요. 그런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서로의 삶을 좀 더 이해하게 되잖아요.”
평소 타인과 함께 삶과 고민에 대해 깊이 대화할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야깃거리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이 매개가 되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의 삶과 생각을 공유한다. 이것이 바로 독서동아리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안산 사회를 살기 좋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안산 독서 포럼’은 함께 읽고 토의하는 문화를 통해 개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하늘을 서서히 밝혀가는 오전 7시의 태양처럼, ‘안산 독서 포럼’은 앞으로도 안산시의 책 읽는 문화를 환하게 밝혀나갈 것이다.
★김규리(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