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문학 카페’
모이는 곳 _ 강원 강릉시 모루도서관
모이는 사람들 _ 직장인
추천도서
1.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펴냄)
2. 왜 분노해야 하는가 (장하성 지음, 헤이북스 펴냄)
3. 트라우마 한국사회 (김태형 지음, 서해문집 펴냄)
4. 무너지지만 말아 (흔글 저자, 경향미디어 펴냄)
솔향이 가득한 강릉의 저녁, 강릉역이 보이는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모루도서관이 있다. 이곳이 바로 독서동아리 ‘인문학 카페’ 회원들이 모이는 장소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은 바로 대표인 고석호 씨다. 글을 쓰기 위해 대학 졸업 후 이곳으로 내려왔다는 고석호 씨는 독서동아리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지역적 특성을 이야기했다.
“강릉에는 젊은 사람들이 적어요. 다른 독서동아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동아리고요. 현시점, 청년들이 공감할만한 주제와 이야기를 다룰 독서동아리가 없었습니다.”
대학 시절 여러 독서동아리를 경험한 이력을 살려 시작한 ‘인문학 카페’에 강릉의 여러 청년도 찾아와 주었다. 의사, 경찰, 음악가 등 다양한 직업군과 그에 따른 다양한 관점을 살리고 있는 독서동아리 ‘인문학 카페’에서 이날 다룬 책은 서경식, 김혜신 작가의 『디아스포라 기행』이었다.
발제와 책 추천은 주로 동아리 대표 고석호 씨가 전담한다. 물론 동아리 회원들이 추천하고 싶다는 책이 있으면 반영한다. 하지만 아직 초기인 만큼 고석호 씨가 함께 공부하는 교수님과 주변 지인들의 추천을 받은 책과 직접 제작한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다. 이날 읽은 『디아스포라 기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디아스포라는 ‘이산’이라는 뜻으로 본래 살던 터전에서 전쟁, 경제, 종교 등 여러 이유로 떨어져 지내게 된 이들과 그 공동체를 의미한다. 재일 조선인인 작가는 본인 역시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자로서 세계 곳곳의 디아스포라를 여행하고 그에 따른 감상을 적었다. 대부분의 젊은이는 직장 등 생계 문제를 위해 고향을 떠나 이곳 강릉에 자리 잡게 된 만큼 회원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었다.
위와 같은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저자에 대한 설명, ‘디아스포라’라는 낯선 단어에 대한 기본 정의를 마친 후 고석호 씨가 질문을 던진다. “민족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예멘 난민 논란, 동남아 노동자가 풍등을 날리다 석유 화재를 낸 사건 등 현시점 고민할 부분이 많은 문제인 만큼 회원들 역시 각자의 시점에서 여러 이야기를 풀어낸다. 충돌을 걱정하거나 이민 정책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기도 하고 입양 문제에 따른 무국적자 문제 등 낯설지만 중요한 이슈가 던져지기도 한다. 여러 논의가 오가고 토론자들의 대답은 제국주의로 귀결되었다. 디아스포라는 기형적인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만큼 우리 안의 제국주의적 시선 역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붉힐 만큼 격정적인 대화였다. 20, 30대 회원이 많고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부분이 큰 만큼 다양한 의견이 부딪혔다. 하지만 토론이 끝난 후 회원들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곳이 없거든요. 회사에는 전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분들이시고 예민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생각이 다르고 또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참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홍기훈 씨가 밝혔다. 다양한 책을 읽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강릉의 젊은이들이 협동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낼 창구를 가지는 것이다. ‘인문학 카페’는 그런 타는 목마름을 가진 이들을 위한 완벽한 장소였다.
‘인문학 카페’ 회원의 모임은 단순히 독서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날도 지난 모임 때 읽은 과학 서적과 관련 있는 영화 「퍼스트맨」을 보러 간다고 전했다. 이렇듯 독서를 통해 얻은 청년의 경험을 다양한 분야로 뻗어가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여러 친구를 얻은 게 가장 큰 행복입니다. 강릉은 참 큰 도시지만 인구수가 많지 않아 젊은 친구들이 모일 일이 적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사회에서 여러 도움도 줄 수 있는 점이 참 즐겁습니다.”
장지창 씨가 말했다. 같은 공감대를 공유하고, 같은 취미를 가지는 만큼 일반적인 친목 동아리보다 더 끈끈하게 이어진다고 밝혔다.
“동아리 이름이 ‘인문학 카페’이다 보니 어려운 인문학만 읽으리라 생각해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아닙니다. 문학, 과학책 등 좋은 책은 얼마든지 읽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열린 마음을 가진 강릉 청년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고석호 대표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쌀쌀한 날씨만큼 청년들의 삶이 점점 비좁고 힘들어지는 요즘이다. 사회 속 여러 고민을 또래와의 독서로 이겨내는 ‘인문학 카페’의 외침이 강릉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가 된다. 수요일 7시, 따뜻한 모루도서관으로 올라가 보자. 그리고 당신 안의 여러 질문을 함께 나누어 보자.
★ 작성자: 청년취재단 홍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