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싸댕’
모이는 곳 _ 경기 여주시 토닥토닥 그림책 도서관
모이는 사람들 _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1학년
추천도서
1. 너와 나의 3분 (이송현 지음, 다른 펴냄)
2. 아몬드 (손원평 지음, 창비 펴냄)
3. 두 번째 달, 블루문 (신운선 지음, 창비 펴냄)
4. 여고생의 치맛단 (김민서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
비가 내리는 가을, 여주 중앙로 문화의 거리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불 켜진 곳은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전부다. 여기가 맞나 싶은 건물 맨 꼭대기에 ‘토닥토닥 그림책 도서관’이라는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학생들이 만든 독서 관련 작업물과 어지러이 쌓인 책들 그리고 풀과 가위 등이 쌓여 있다. 이 낯선 공간은 사립자금으로 운영되는 여주의 다목적 문화공간 ‘토닥토닥 그림책 도서관’이다.
‘토닥토닥 그림책 도서관’은 일반 도서관과는 다르다. 우선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읽기도 하지만 책을 읽기에 적합한 조용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상상하면 안 된다. 곳곳에서 다음 주 행사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곧 쓸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섞인다. 음식을 먹기도 하고 가위와 풀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기도 한다. 이곳은 온 세상을 거대한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한 장소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 성싶다.
장소가 특별한 만큼 동아리도 특별하다. 동아리의 모토인 ‘싸돌아 댕기다’를 줄여 만든 독서동아리 ‘싸댕’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기보다는 책을 세상 밖으로 건넨다.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사이의 여주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싸댕’은 책 읽는 경강선, 책 밥, 북스테이, 책 잔치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주제를 정하거나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을 때는 ‘토닥토닥 그림책 도서관’의 성인 스태프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손수 준비한다.
오늘 ‘싸댕’ 회원들의 회의 안건은 내일 있을 ‘책 읽는 경강선’ 행사이다. ‘책 읽는 경강선’은 판교역에서 여주역을 잇는 지하철인 경강선에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이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대신 독서하는 모습으로 대중교통 속 풍경을 바꿔보자는 해당 퍼포먼스에는 여주 지역 학생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봉사 시간까지 부여해 많은 학생이 참여한다. 오늘은 내일 있을 행사를 어떻게 관리할지, 그리고 행사가 끝난 후 지하철 승객들에게 홍보할 청소년 노동 관련 사항들을 정리하기로 한다.
“상혁이 너는 투표 받고, 나랑 종현이는 출석 정리하기로 하자. 참, 우리 인터뷰 질문 정리한 건 어디에 있어?”
회의가 시작하자 김강리 대표가 척척 안건을 정리한다. 인터뷰할 때는 더없이 수줍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중학교 1학년인 다른 회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회의 진행방식부터 내일 사용할 판넬 제작까지 알아서 씩씩하게 해낸다.
‘싸댕’은 4년 전 ‘토닥토닥 도서관’에서 다 함께 찾아간 이중섭 북 콘서트에서 즉흥적으로 결성되었다. “앞으로도 자주 책 읽고 읽은 거로 놀러 다니면 좋겠다.” 라는 바람으로 이들의 싸돌아 댕기기가 시작되었다. 빵집 ‘성심당’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군산으로 놀러 갔다. 차이나타운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인천으로 찾아가 직접 맛보았다. 책에서만 존재하던 지식이 생생히 살아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올해 여름 ‘싸댕’ 멤버들은 『발해고』를 읽고 중국으로 향했다.
“최고의 기억이었어요. 직접 기획한 기획안으로 ‘아름다운재단’에 공모도 해보았고요. 떨어져서 못 갈 줄 알았는데 시청에서 도움을 주셔서 갈 수 있게 되었거든요.”
김가람 씨가 설명한다. 세종 도시를 강조하는 여주 시청 전략 사업과에서 지원을 해준 덕에 이들의 발해 여행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이때 맺은 인연으로 올겨울에는 조선족 유학생들과 역사 기행을 떠날 계획도 잡았다.
“이거 준비하며 학원도 몇 번 빠졌어요. 당연히 엄마한테 엄청나게 혼났죠. 너 학원 빠졌으니까 ‘싸댕’도 그만큼 빠지라고.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그랬어요. ‘싸댕’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 절대 안 빠질 거라고. 하지만 이제 학원은 열심히 다니기로 했어요.”
최상혁 씨가 웃으며 말한다.
“’싸댕’하기 제일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잊히고 지워져 가는 것들을 우리가 보존했다는 생각이 들 때에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꽃할머니 북 콘서트’, 우토로 마을을 주제로 한 ‘책 읽는 경강선’을 했을 때 가장 뿌듯했어요.”
경다빈 씨가 밝혔다. 스태프들이 수고 많았다며 사준 떡볶이를 하나씩 들고 먹는 모습은 영락없이 앳되었는데 키보다 훌쩍 자란 생각들이 참 대견하다. 안타깝게도 고1까지만 활동할 수 있는 ‘싸댕’을 떠나는 것이 영 아쉬운지 눈물까지 글썽이는 김강리 대표에게 바람을 물었다.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자유롭게 운영되었으면 한다는 작은 소망이 반짝반짝 빛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싸댕’을 만나며 다시금 느꼈다. 책임감과 적극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배운 바를 세상에 당당히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진정한 독서의 미래였다. 앞으로도 ‘싸댕’과 같은 독서동아리가 세상에 더 많아지기를 절로 바라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 7시, ‘싸댕’은 오늘은 또 어떤 꿈을 꿀지 절로 궁금해진다.
★ 작성자: 청년취재단 홍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