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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들과 함께 읽어요
독서동아리 ‘동네북’
모이는 곳
서울 양천구, 영등포구, 동작구, 강서구 일대
모이는 사람들
20대 청년
추천도서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지음, 김영사 펴냄)
· 이것이 선거다 (토미 더글러스 지음, 루아크 펴냄)
· 적과 흑 (스탕달 지음, 문학동네 펴냄)
·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지음, 민음사 펴냄)
·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에코리브르 펴냄)
하늘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7시,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서 책 한 권씩을 앞에 둔 채 밝은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는 독서동아리 ‘동네북’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14년에 중학교 동창 3명이 모여 만든 독서동아리 ‘동네북’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지인을 불러 모아 현재는 11명의 회원들이 모임을 함께하고 있다. 이날 만난 회원들은 모두 스물다섯 살 또래 친구들이었다. 서로에게 농담을 던지며 웃는 회원들의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바탕으로 더 나은 모임을 만들고 싶어
또래 친구들로 구성된 만큼 ‘동네북’ 모임도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편하게 진행된다. 의무적인 규율도 없고 의견도 반말로 주고받는다. 회원들에게 모임 분위기가 자유로워서 좋아 보인다는 말을 건넸다.
“책 내용에 대해 생각이 저마다 다를 수가 있잖아요. 근데 서로서로 너무 잘 아니까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있어요. 친하지 않은 사람들 같은 경우에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게 없다 보니까 직접적인 공격이 왔다 갔다 해요.”
“저희는 동갑이라는 공통점도 있고, 대다수가 학창시절부터 친했고, 공동체에 함께 소속되어 있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서로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어요. 상대를 공격하고 상처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에 꾸밈없이 직접 의견을 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얘기를 하다가도 ‘잠시만’ 하고 치고 들어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게 토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그래서 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모임도 훨씬 풍부해져서 좋아요.”
회원들은 친밀한 분위기가 다양한 의견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다소 직설적인 의견도 주고받으며 대화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회원들은 가깝고 친밀한 만큼 지각이나 벌금에 엄격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원래는 벌금제도가 있었는데, 다들 돈 없는 학생이라는 사정을 알기 때문에 벌금을 걷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북’은 이러한 부분을 상쇄할 만큼 토론의 풍부함이 커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개선 방안을 모색하면서 자유로운 모임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해진 룰은 없지만, 의견을 모으고 배려를 하면서 ‘동네북’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함께 읽고 함께 체험하다
‘동네북’은 매주 선정된 발제자가 모임을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회원들에게서 책이나 영화를 추천받고, 투표를 통해 서너 작품을 선정한다. 선정된 작품을 추천한 사람은 발제자가 되어 해당 주의 모임 일정과 사회 등을 책임진다. 한 사람이 너무 자주 뽑힐 때는 뽑히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자율적으로 기회를 분배해 발제를 한다.
이날 모임에서는 사회학 서적인 『맹신자들』을 함께 읽었다. 발제를 맡은 회원이 저자에 대한 배경지식을 설명하는 것으로 모임이 시작되었다. 이후 회원들은 서로의 감상평을 들으며 인상 깊은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회원이 책을 읽으면서 홍콩 시위와 브렉시트, 미국 우선주의가 생각났다고 말하자, 회원들은 자신들의 의견과 함께 저자의 주장에 비추어 그 원인과 전개 과정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처럼 대화를 위주로 모임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책을 읽고 그 주제를 직접 체험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읽기를 즐기기도 한다.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채식주의를 다룬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였어요. 자극적인 제목이고, 내용도 되게 자극적인데 채식주의와 관련된 일반 상식을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볼 수 있었어요.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친구의 추천 도서였는데, 알지 못했던 분야를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그들의 입장을 체험하고 공감해보자는 생각으로 다음 모임 날 하루는 8명 정도가 채식을 했어요. 정말 못 할 짓이더라고요. 그걸 통해서 채식주의자들의 생활 패턴도 알 수 있었고, 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어서 무척 좋았어요.”
“지금의 방식으로 정착하기 전에 하나의 테마를 몇 달 동안 유지하는 방식을 실험해봤던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커피였어요. 커피라는 테마를 잡고 관련된 도서를 각자 자유롭게 선정해서 읽어오면 내용을 같이 이야기했고, 직접 유명한 카페에 가서 시음도 해봤어요. 그때 그 테마를 하면서 이런 방식도 나름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독서를 통해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어
“보통 친구들끼리 한자리에 모이면 옛날얘기 하고, 오늘은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지와 같이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하기 마련인데, 저희 모임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항상 새로운 주제로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해요. 그래서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돈독해지고 끈끈한 정이 생겨요. 그런 점이 이 모임을 뜻깊게 해요.”
“새로움. 책을 보는 관점도 그 전의 저와 너무 달라졌고, 또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시간을 계속해서 갖고 있다는 게 아직도 새롭고 너무 좋아요.”
“‘동네북’은 안전지대 같아요. 사회에서 어떤 정치적 견해나 인생관을 얘기할 때, 사회적인 인식과 동떨어지지 않고 도덕적으로 모나지 않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해 말을 다듬어서 하는데, 여기는 굳이 인생관이나 도덕관을 다른 사람의 눈에 맞춰 조각할 필요 없이 제 생각만 얘기해도 돼요.”
“제 삶의 일부예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뗄 수 없었던 모임이라고 해야 하나. 항상 만나왔고 얘기해왔고 같이 욕도 하면서 위로도 받고. 그러면서 제 일부가 된 거죠.”
‘동네북’에 대한 회원들의 생각에서 서로에 대한 돈독한 애정이 느껴졌다. 회원들이 앞으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되더라도, ‘동네북’이라는 작은 동네에 모여 그들만의 이야기를 계속 써나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김규리(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