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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어가는 소중한 인연
독서동아리 ‘고궁독서’
모이는 곳
서울 인근 카페
모이는 사람들
50대 주부, 직장인 등
추천도서
·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지음, 돌베개 펴냄)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지음, 돌베개 펴냄)
·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펴냄)
· 비행운 (김애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 이수지의 그림책 (이수지 지음, 비룡소 펴냄)
사회에서 마음이 맞는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나 직업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고, 일단 만들어진 모임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독서동아리 ‘고궁독서’는 이와는 거리가 먼 모임이다. ‘곤궁을 달게 여기고 학문에 힘쓰자’라는 뜻의 ‘고궁독서’는 30대부터 50대, 직장인과 주부를 포함한 11명이 모여 만든 독서동아리다. 8년 전, 글쓰기 강좌에서 처음 만난 회원들은 함께하는 시간에 재미를 느껴, 글쓰기 수업이 끝난 뒤에도 모임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책을 읽는 것으로 새로운 모임을 시작했던 것이 지금의 ‘고궁독서’가 되었다.
책장에 남는 서로의 흔적
‘고궁독서’는 3주에 한 번씩 모여 함께 책을 읽는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호스트를 하는데, 그 호스트가 정하는 책을 읽거나 투표를 통해 책을 고른다. 이번 분기에는 지난 모임에서 다루었던 책이나 작가 중 좋았던 것을 다시 읽기로 해, 현재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중이다. 회원들에게 모임에서 다루었던 책 중 어떤 것이 좋았는지를 물었다.
“『소년이 온다』는 제가 생각하기에 제일 잘 읽은 책이에요. 저는 원래 인문학이나 철학 서적 쪽을 굉장히 탐닉했었어요. 처음에는 자기계발서부터 시작해 비즈니스 같은 것과 관련된 책들을 열심히 읽다가 어느 날 인문학 서적을 읽었어요. 근데 이 모임에 오면서 처음으로 소설이 좋아져 읽기 시작했어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들을 이 모임을 통해서 소개받고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이 모임이 되게 소중해요. 제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어요.”
“저는 주제라기보다는 작가가 생각이 나요. 프리모 레비를 이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그런 걸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어요. 지금 생각해도 되게 읽기 힘들고 가슴 아픈 책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그런 책이에요. 그래서 프리모 레비에 굉장히 매료돼 있었어요. 모임에서 프리모 레비를 추천받아서 선정됐어요. 그래서 그때 굉장히 감사했어요. 저는 전혀 모르는 책이었거든요. 제가 가끔 책을 솎아서 파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절대로 팔지 않을 책이에요.”
“저는 신형철 작가. 저희 모임에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을 했을 당시에만 해도 이 책이 너무 어렵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다음 모임에서 신형철 작가가 많이 언급됐고, 그래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봤는데 이 작가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너무 많이 와닿더라고요. 이 모임이 아니었으면 접해보지 못했을 책, 그리고 이 모임을 통해서 알게 돼서 너무 감사한 책, 저는 그게 신형철 작가의 책이에요.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제가 너무 안 좋아해서 팔았거든요. 지금 후회해요.”
회원들은 서로 책을 추천하면서 취향에 맞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았던 책들을 함께 읽고, 그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책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독서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는 것도 물론 좋지만, ‘고궁독서’ 회원들처럼 저마다 다른 독서 취향을 바탕으로 몰랐던 책을 공유하는 것 또한 매우 즐거운 일이다.
나눌수록 재미있는 독서
올해로 8년째 모임을 지속하고 있는 ‘고궁독서’는 함께해온 시간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애정도 깊다. “80년 채울 생각입니다”, “저희 다 퇴직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려고요”라며 웃는 회원들의 모습이 마치 한 가족 같았다.
‘고궁독서’는 함께 읽기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추억을 쌓고 있다. 독서 기행이나 영화제, 책과 관련된 행사에 가기도 하고, 회비를 모아 미얀마 도서관 건립에 기부를 한 적도 있다. 취미가 맞는 사람끼리 미술 수업을 함께 듣는 등 취미생활도 함께하고, 가끔은 선물도 주고받는다. 한 회원이 “저는 받기만 해서 되게 미안함을 느꼈고, ‘뭔가 기여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신청했어요”라고 말하자 다른 회원이 “몇 년 전부터는 우리의 에이스예요. 덕분에 이런 시간(인터뷰)도 가져보잖아요”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서로에게 칭찬과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회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를 아끼는 회원들의 마음이 ‘고궁독서’를 지탱하는 큰 힘이 아닐까 싶었다.
“원래 제가 고집이 세고, 좋게 이야기하면 주관이 강하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설득이 잘 안 되는 편이에요. 물론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나 생각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책을 읽고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이해가 안 돼’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모임이 좋은 게 뭐냐면, 내가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니까 일단 마음이 먼저 열려요.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편협한 사고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서 들으니까,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이진 못하더라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저런 생각도 인정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함께 읽기가 라면이나 피자 먹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라면이랑 피자는 혼자 먹어도 맛있지만 다른 사람이랑 먹을 때 더 맛있잖아요. 책도 혼자 읽어도 재밌지만, 같이 읽었을 때 더 재밌는 것 같아요.”
“가성비가 좋죠. 한 권을 읽은 날 열 분이 나오셨으면 한 열두 권을 읽은 듯한 느낌. 심지어 안 읽고 가도 읽은 느낌. (웃음)”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나보다 격하게 공감을 해주면 이 책이 더 좋아지는 게 있죠.”
함께 읽을수록 책이 더 재미있고 좋아진다는 회원들은 앞으로도 함께 나이가 들어가며 ‘고궁독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궁독서’는 책에 대한 관심을 매개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깊이 쌓아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모여 살자며 농담을 건네는 회원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김규리(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