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경찰청 안에 도서관이 있다고?
독서동아리 '다독임'
모이는 곳
전북경찰청 내 무궁화도서관
모이는 사람들
전북경찰청 직원들
추천도서
· 시그니처 (박영광 지음, 매드픽션 펴냄)
·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문학동네 펴냄)
· 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
·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민음사 펴냄)
· 돌베개 (장준하 지음, 돌베개 펴냄)
경찰청 정문에 들어서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건물 외벽에 큼지막하게 붙은 참수리 마크가 오늘의 인터뷰어를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마치 죄인이 된 기분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뗐다. ‘다독임’을 만나러 가는 길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로비에서는 방문 기록을 작성해야 했는데, 인적사항을 비롯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도 낱낱이 적어야 했다. 과연 오늘의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입구에서 만난 경찰관의 안내를 받아 ‘다독임’의 모임 장소인 경찰청 내 무궁화도서관으로 향했다.
직장 내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다
웅장한 건물 외부와는 달리 경찰청 1층 한쪽에 자리 잡은 무궁화도서관은 따뜻한 분위기를 가득 풍겼다. 곳곳의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책장을 빼곡하게 메운 수많은 책들이 보는 이를 미소 짓게 만든다. 누군가 기증한 책들도 여러 권 보인다. 문학, 철학, 사회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비롯해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전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갈하게 꽂혀 있는 책등을 보고 있으니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곳에서 매달 ‘다독임’의 독서모임이 열린다.
도서관을 리모델링하면서 독서모임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 ‘다독임’의 출발점이 되었다. 지금의 ‘다독임’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모두 사내 게시판에 붙은 모집 공고를 보고 자발적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한 분씩 자기소개를 부탁드렸더니 ‘마약수사대’, ‘과학수사계’ 등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접했던 무시무시한 용어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현직에 있는 경찰관 분들에게서 풍겨나오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회원들의 독서에 대한 높은 관심과, 책을 대하는 애정 어린 마음을 헤아리고 나서는 굳어 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책 앞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찰관이 아닌,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책을 대하는 한 명의 독자였다.
“이전부터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무감과 마음의 짐이 있었어요. 나와는 또 다른 눈으로 책 속의 세계를 경험하고, 편식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다양한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모임에 참여했어요. 회원들과 책을 읽는 방법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죠.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회원들과 나누며 스스로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아요.”
“새로운 활력을 찾고 싶었어요. 나와는 또 다른 시각을 만나고 싶었죠. 독서는 개인의 행위지만, 독서모임을 통해 같이 읽는 특별함을 경험할 수 있잖아요. 직장 내에 이런 모임이 있다는 건 뜻깊은 일이죠.”
“저는 그동안 소설 위주로 책을 읽었는데 모임을 통해 책을 고르는 선택지가 넓어졌어요. 몰랐던 재미를 알게 됐죠. 책을 읽는 기쁨이 배가 된 것 같아요.”
독서는 또 다른 독서를 낳고
회원들은 사내 게시판을 통해 이 달의 토론 도서를 전 직원들에게 공지한다. 그래서 ‘다독임’이 매달 어떤 책을 읽는지 경찰청 내의 모든 직원들도 알 수 있다. 이는 직장 내에서 책 읽는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에 회원들도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매달 한 권씩 책을 읽다 보니 ‘좋은 책’을 선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따라서 회원들은 책을 고를 때 무척 신중하다. 회원들 모두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한다. 주로 읽는 책은 소설이지만, 여러 분야의 책을 다양하게 시도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 달의 책을 추천한 회원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 커피 한 잔을 사게 하는 귀여운 벌칙을 주고 있다.
‘다독임’은 현직 형사이자 소설가인 『시그니처』의 저자 박영광 작가를 모시고 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플래카드까지 손수 제작해 환영의 마음을 적극 표현했다고. 지원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독임’ 회원들에게 박영광 작가와의 만남은 같은 조직인으로서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들은 또한 전북도청과 함께하는 독서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독서가 일터와 삶에 미치는 영향
이 날은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다. 다소 뜻밖의 책 선정이었다. 회원들에게 ‘90년생’이란 자신의 한참어린 후배, 혹은 자녀들의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접하고 생각이 더욱 유연해졌다는 정수진 선생님은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후배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며 독서가 자신의 직업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회원들은 단순히 감상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 책은 마케팅을 참 잘했어요. 대중이 원하고 공감하는 부분을 정확히 집어낸 거죠.”
“맞아요. 어쩌면 세대가 변한 게 아니라 시대가 변한 것일 수도 있죠.”
책에서 언급되는 신조어를 하나씩 되짚어보며 ‘인싸’가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병맛’ 참치 광고를 보면서 서로의 감상평을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회원들은 자신과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고, 적극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이처럼 세대 간의 다름을 짚어보고, 그것을 그저 나와는 ‘다름’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간격을 좁혀가며 이해에 닿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건 제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였어요. 같은 책을 읽고도 이토록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지켜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함께 이루어나가는 꿈
“긴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꾸준히 장기적으로요.”
회원들은 저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각자의 목표는 곧 동아리 공동의 목표가 될 것이다. 회원들에게 이곳 ‘다독임’은 서로의 목표와 꿈을 함께 다독이는 따뜻한 공동체이기도 하니까.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추천도서를 열 권 정도 추려 달라는 인터뷰어의 부탁에 ‘버릴 자식이 하나도 없다’며 곤란해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먼 훗날 나의 모습도 이들과 닮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기를. 함께 책을 읽으며 매일매일 특별함을 경험하는 이들 ‘다독임’처럼.
★구민정(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