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머랭코끼리’
모이는 곳 _ 서울 강남역 일대 스터디룸
모이는 사람들 _ 학생, 주부, 취업준비생, 예술가 등
추천도서
1.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민음사 펴냄)
2.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지음, 민음사 펴냄)
3.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민음사 펴냄)
무더운 초복 날, 인파로 들끓는 강남역에서 ‘머랭코끼리’를 만났다. 사뭇 낯선 단어인 ‘머랭꼬끼리’란, 부서지기 쉬운 머랭의 이미지와 단단한 코끼리의 이미지가 만나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충돌이 재밌어서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이날 동아리 대표를 비롯하여 세 분의 동아리 회원을 만날 수 있었다.
주부, 예술가, 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 등 ‘머랭코끼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활동하는 만큼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도, 장소를 정하는 것도 늘 유동적이다. 모임 날짜, 시간 모두 그때그때 투표로 정한다. 이날 자리한 회원들에게 ‘머랭코끼리’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물었다.
“굳어가는 머리를 유연하게 해주는 자극제 역할을 하는 독서 모임입니다. 의무감을 느끼고 활동하기보다는 하나의 의미로서 참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듣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을 공유하기를 좋아해요.”
“아무래도 민감한 주제로 토론을 할 때가 많다 보니,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강요하지 않는 대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딱 하나 있는 규율입니다.”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 것이 모임의 주목적이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모여서 읽는 책은 어떤 것들일까.
“될 수 있으면 정치 서적은 안 읽으려고 해요. 고전 소설을 많이 읽습니다. 에세이집 같은 것은 작가의 주관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저희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반면에 고전 소설은 해석의 차이가 많이 있는 거 같고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해석에 따라 자유로운 사유의 장이 형성됩니다.”
‘머랭코끼리’는 서로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고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로에게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만큼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그 책을 읽고 싶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한 분의 회원이 책을 읽지 않고 모임에 참석했다. 그러나 어떠한 장벽 없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하듯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다.
“결국 재미있으면 오거든요. 늘 재미있어요.”
꿈 많고 힘 넘치는 ‘머랭코끼리’는 독서 모임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다. 가을을 목표로 준비 중인 전시회에 대해 들어보았다.
“독서 활동에서 나아가 이러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좋은 생각은 남들과 공유를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빛을 보게 되는 거죠. 지원금을 받게 되었기에 공유 차원에서 전시회를 하기로 했어요. 5권의 책을 함께 읽은 후에 각자 후속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평소 동아리 활동을 하던 것과는 다른 것을 느낄 터였다. 회원들에게 전후의 차이에 관해서 물었다.
“좋은 점이자 안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이 안에서 그냥 놀았거든요. 지금은 보다 더 진지하게, 부담감과 책임감이 깔린 상태에서 도전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각오하고 있어요.”
서로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해졌다. 회원들 각각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함께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함께’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볼 수 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미흡한 점을 보완할 수도 있고요. 자신의 생각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어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서였어요. 처음에는 자기계발서 같은 실용서부터 시작했는데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고전으로 나아가게 됐는데 읽고 나서 남는 게 없더라고요. 혼자서 뭔가 끄적여 보기도 했지만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같은 책을 읽고도 저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동기부여도 되고, 약간의 강제성도 생겨서 좋은 것 같아요.”
“살면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같은 게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게 많이 허물어지는 것 같아요. 얘기를 하다 보면 제 사고가 유연해지는 게 느껴져요. 다른 데서는 찾을 수 없는 장점이죠.”
실제로 ‘머랭코끼리’에서는 각자의 이야기에 대한 건강한 딴지걸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만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조금씩 섞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냈다.
“혼자 책을 읽을 때 A라는 사람은 여기서 피식 웃을 거 같다는 상상을 하면서 읽게 돼요. 상대를 가정하면서 읽죠. 혼자서도 혼자가 아닌 쌍방향이 돼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서로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한 회원의 말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화합, 그리고 치유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요.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일종의 치유 행위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다른 사람에게도 솔직해지는 것이고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 과정을 통해서 화합과 공존이 가능해지는 것이라 봐요. 그런 게 없으면 너무 삭막하잖아요. 돈 벌고 잘 사는 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그 의미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어떠한 형태로든 의미라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작성자: 청년취재단 허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