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시 대통령과 그의 아내를 만났는데, 그녀의 손에는 키스하지 않았다. 시슬리가 나에게 왜 바버라 부시의 손에는 키스하지 않았냐고 묻기에 나는 조지의 어머니인 줄 알았다고 그랬다. (중략) 빌어먹을, 여기 이 사람들은 레이 찰스에게 평생공로상을 주고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 『마일스 데이비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1987년 워싱턴의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레이 찰스의 평생공로상 수상식장의 에피소드다. 마일스는 “레이는 오랫동안 친구였고 나는 그의 음악이 좋았다. 내가 간 이유는 바로 그것뿐이었다. 또 그런 정치적인 일을 결코 좋아한 적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현직 대통령과 그 영부인과의 만남에서도 마일스는 ‘이 양반들은 도대체 왜 이런 자리에 나타난 것일까?’ 하는 특유의 냉소로 그날을 기억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이 흥미진진한 자서전 중에서도 비교적 점잖은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구술을 하고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퀸시 트루프가 정리한 자서전이기에 책의 상당 부분은 욕설과 비난과 신경질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물론 그 말투가 사실은 마일스다운, 진짜 마일스 데이비스가 내 앞에서 ‘뭐가 또 궁금한데?’ 하는 표정으로 ‘정 그렇다면 몇 마디 안할 수 없지’ 하고는 시종 자기 멋대로 중얼거리는 듯 생생하다. 번역을 시인이자 인디록밴드 리더인 성기완이 했는데, 아주 잘했다. 나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다큐멘터리를 꽤 많이 봤다. 그런 영상에서는 종종 마일스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쇠를 갈아 먹고 있는 듯 거친 목소리에 이런 소리 빨리 걷어치우고 술이나 한잔하자는 식의 ‘무매너’를 익히 본 터라, 이 자서전의 문장들은 날것 그대로의 말투를 즉시 옮긴 듯 흥미롭게 읽힌다. 이런 전제로, 다음을 한 번 읽어보자. 이 책의 서문, 첫 문장이다.
“들어봐라. 여지껏 내가 세상에 태어나옷 입은 상태에서 경험한 가장 멋진 느낌은 세인트루이스의 미주리에 디즈디지 길레스피의 애칭와 버드찰리 파커의 애칭가 왔을 때 그들의 연주를 들은 것이다. 때는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략) 디즈와 버드가 B의 밴드에서 연주를 하는데 ‘어랍쇼? 이게 뭐지?’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나 원, 그 연주들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무서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구술이든 저술이든 어찌되었거나 단행본인데 그 ‘서문’이 갑작스럽게 시작한다. 이 책의 실질적인 저술가 퀸시 트루프의 서사 전략일 수도 있다. 멋지고 근사하고 우아한 서문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마일스 데이비스의 육성이 지면 위로 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다시 마일스 데이비스가 회고하는 전설의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역시, 서문의 일부다.
“디지는 생방송으로 쇼가 진행되는 중에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 쇼에 등장하는 침팬지를 빤히 바라보며 혀를 내밀곤 했다. 침팬지는 그에게 골탕을 먹고 소리를 치며 미쳐 날뛰었다. 그러면 쇼에 등장한 사람들이 침팬지한테 뭔 좆같은 일이 벌어졌나 의아해했다. 침팬지는 디지를 볼 때마다 빡이 돌아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성기완의 번역문을 그대로 인용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캐릭터’를 강화하기 위해 저속한 용어를 일부러 섞은 게 아니다. 아무튼 이 책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재즈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전설과 위인과 광인과 마약쟁이와 난봉꾼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하면, 현대 재즈의 역사가 마일스의 개인역사이고 그의 생애가 스윙에서 비밥으로, 다시 록재즈와 퓨전을 거쳐 힙합재즈로까지 이어지는 장르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1945년부터 본격적으로 찰리 파커 밴드에서 활동을 개시한다. 1949년 길 에반스의 편곡과 존 루이스, 제리 멀리건을 비롯한 9중주의 역사적 앨범 을 발표하여 50년대 쿨재즈를 개척했다. 1955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화려하게 복귀하여 이후 존 콜트레인과 더불어 를 만들어냈다. 1964년부터 허비 행콕, 웨인 쇼터, 토니 윌리엄스 등 젊은 뮤지션으로 퀸텟을 구성하여 , 등 명작을 발표했으며 1969년에는 칙 코리아, 잭 디조냇, 존 매크러플린 등과 함께 희대의 실험작 를 발표하여 퓨전 재즈의 문을 열었다. 지금은 전설이요 원로요 거장 소리를 듣는 키스 자렛이나 마커스 밀러도 처음 재즈에 들어설 때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가방을 들었다. 1991년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도 마일스 데이비스는 손자뻘 되는 뮤지션들과 함께 테크노뮤직과 힙합을 재즈와 결합했다.
이 정도만 썼는데도 벌써 등장하는 사람들 면면이 재즈 역사 그 자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생애사이면서도 동시에 그가 바라본,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겪은그는 최소한 자기가 직접 본 것을 중심으로 말한다 거장들의 면모가 펼쳐져 있다. 그 중 한 사례, 버드 파웰 얘기를 들어보자.
버드 파웰은 1924년에 태어났다. 7살에 베토벤, 드뷔시, 리스트, 쇼팽 등을 연주하였고 10살 때부터 재즈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1943년 쿠티 윌리암스의 밴드에서 활동하였으며 이 무렵에 그는 아트 테이텀과 테디 윌슨의 영향을 받아 끝없이 건반 바깥으로 이탈하려는 충동의 타건打鍵을 선보였다. 디지 길레스피, 덱스터 고든, 소니 스팃, 케니 클락 등과 한 시대를 풍미했는데 특히 1953년에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등과 함께한 메시홀 라이브는 절대적 명연으로 꼽힌다. 그랬던 그가 정신질환 때문에 무대에 서지 못하여 저 멀리 파리로 훌쩍 떠나버렸다.
1956년에 마일스가 파리로 연주를 하러 가서 버드 파웰을 보게 된다. 멋지고 유명한 생제르맹 클럽, 마일스를 포함하여 뉴욕의 빅스타들이 몰려들었는데, 거의 행려병자에 가까운 버드 파웰이 나타나 피아노를 연주한다. 한때 밤의 재즈 무대를 함께 누볐던 동료들은 버드 파웰의 연주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고, 잠시 후 모두가 충격에 빠져버렸다. 그 연주는 자신의 영혼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의 비틀거리는 울부짖음이었다. 마일스는 버드를 끌어안고 소리친다. “버드, 그렇게 술 마시고 나서 연주해서는 안 된다는 걸 이제 알겠지? 이제 알 거야? 그렇지 않아?” 그 무렵, 마일스는 마약에 취한 존 콜트레인을 정신 차리라고 두들겨 패기도 했다. 다시, 마일스는 회고한다. “버드가 그렇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듣다니, 정말 슬픈 광경이었다. 살아있는 한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마일스를 관통하여 재즈사 전체를 살펴보게 한다. 아, 물론 편년체로 그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느니 하는 회고영탄조가 아니다. 한숨, 눈물, 신경질, 욕설, 사랑, 분노 등이 뒤엉킨다.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보자. 1944년,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의 연주를 들었던 그날을 회상하면서 이 자서전은 시작하는데, 서문에서 마일스는 그날을 다음처럼 기억한다.
“나는 처음 디즈와 버드의 연주를 들었던 1944년 그날 밤의 느낌에 좀 더 다가가려 해왔지만, 그 느낌에는 결코 이를 수가 없다. 비슷하게는 갔지만 바로 거기에는 이를 수 없다. 언제나 그 느낌을 찾고 듣고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연주할 때마다 내 음악 안에서 그 느낌을 잡으려 노력한다. 애송이였던 내가, 젖내도 마르지 않는 내가 지금까지도 나의 우상인 위대한 음악가들과 어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씨팔,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 이 글은 2018년 10월 1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