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에서 2000년까지, 근대의 유럽이 오늘의 유럽에 이르는 200여년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상상하던 거의 모든 문화가 펼쳐진다. 19세기는 정치적 열망과 문화적 욕망이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문화사를 공부하다 보면, 쓰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책들이 있다. 얼핏 생각나는 대로 꼽아보면 우선 도널드 서순의 『유럽문화사』가 있다. 전 5권으로 한국어판의 쪽수를 다 더하면 무려 2790쪽이다. 가히 평생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문헌을 분석했다고 할 만하다. 1800년에서 2000년까지, 근대의 유럽이 오늘의 유럽에 이르는 200여년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상상하고 창작하고 유통하여 소비한 거의 모든 문화가 펼쳐진다.
월터 스콧을 시작으로 하여 21세기의 블록버스터 해리 포터까지, 거의 최초로 근대적 시민의 ‘감정’을 다룬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시작으로 하여 요즘의 대중적인 작품들까지, 아 물론 초기 오페라나 하이든의 교향곡을 시작으로 하여 비틀스의 노래들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까지 대하장강으로 펼쳐진다.
이런 책을 읽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상당히 고급스럽고 근사하게 여기는 문화들이 그 발생의 과정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그 절정기에는 오히려 ‘고급 문화’라기보다는 19세기를 자기 시대로 획득한 근대 시민들의 정치적 열망과 문화적 욕망이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었음을 알 수 있다.
서순에 따르면 초기의 오페라하우스는 ‘20세기의 나이트클럽’과 다를 바 없었는데 “그들은 시간 엄수와 침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바람직하다고 보지도 않았다. 상층계급은 정각에 도착하는 것은 촌스럽다고 여겼다. 음악을 경청하거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길거리 장사꾼들의 표본인 부르주아나 하는 짓이었다. 무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교적 결례였다. 각 박스석 안에서, 또 박스석 너머로 대화가 오갔다. 사람들은 큰 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술에 취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런 정황은 와타나베 히로시의 『청중의 탄생』에서도 알 수 있다. 히로시에 따르면 연주 도중에 청중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고 떠들었다. 1784년 에르푸르트의 연주회 기록에는 맥주와 담배가 용인되었고 심지어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연주자들 역시 자기 파트가 아닐 때는 옆사람과 소곤댔고, 지휘자정확히 말하자면 박자잡이는 커다란 봉으로 쿵쿵 울려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소란스러운 청중은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었다. 근대의 시민들은 ‘새로운 음악’을 원했다.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 못하는 음악가는 도태되었다. 오직 음악을 음악으로 즐기기 위해 모인 연주회 청중을 앞에 둔 음악가들은 집중적인 효과와 강력한 선율을 주조로 한 새로운 표현법을 마음껏 고양시켰으며, 이렇게 하여 음악은 끊임없이 표현의 기법이 발전해갔다. 곧 오페라는 그들의 욕망을 그린 드라마가 되었고, 교향곡은 그들의 심미적 극한의 표출이 되었다.
다시 서순에 따르면, 근대의 소설도 그 초기에는 “사람들의 품격을 높여주는 대신 어리석은 오락거리”였다. 그랬는데,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이 언제나 새로운 문화예술은 ‘조야한 형태’로 등장하되 실은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터져나오는 것이었으니, 곧 발자크를 위시한 근대 소설은 “문명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공포의 비명”을 들려주게 된다. 이렇게 서순은 200여년의 근현대 문화사를 유럽에서 러시아를 거쳐 미국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공간으로까지 확장하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도 흥미진진한 자극제다. 문화의 역사를 쓴다는 것이 우선 이것저것 짚이는 대로 방대하게 자료를 모은 후에 그것을 편년체로 나열하는 것이 아님을 이 책은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물론 피터 게이는 19세기 중엽의 가장 뜨거운 연대가 되는 1840년대를 시작으로 하여 2차 대전 이후의 냉전과 소비문화에 이르는 100여년을, 보들레르로 시작하여 베케트에 이르는 ‘모더니즘’의 연대기를 방대하게 아우른다.
그러나 피터 게이는 방만하게 나열하지 않고 ‘주관성의 극대화’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이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 저자는 오랫동안 공부했고, 이 개념으로 그 많은 사실들이 ‘설명’될 수 있는지 많은 글로 증명하고자 했으며, 그런 후에 격렬한 기법과 일탈의 정신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모더니즘의 정신적 뿌리를 캐낼 수 있었다. 그 뿌리의 이름은 독창성!
이 독창성의 줄기가 19세기 중엽의 ‘낭만주의’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그리고 1815년 이후 전개된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복원’이라는 사태 이후에 전개된 양상이다. 이전 시기의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은 사회 전반에 희망을 불어넣어주었으며 예술가와 철학자들은 유럽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혁명의 종말과 전쟁의 참화 그리고 구체제의 복원은 이성에 대한 희망과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이때 나타난 경향이 낭만주의다. 낭만주의 이전까지 예술은 그 시대가 ‘교회적금욕적’이든 ‘세속적영웅적’이든 항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되었으며 결코 독자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19세기부터 유럽 시민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적 구속 없이, 또는 안정적 기반 없이 자기 자신에만 의존하여 살게 되면서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냉혹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집합적 정서의 표상이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자율성이다. 피터 게이의 표현으로 하자면 독창성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외부세계로부터 차단된 영역, 즉 그 어떤 강제도 없이 자신의 감성을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것은 동시에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열망을 내재한 운동이었다. 고루한 권위주의, 강요된 질서, 왕정복고, 낡고 닳은 교조 대신 시민들의 내밀한 사적 생활과 문화의 자유가 펼쳐지고 이에 따라 예술가들의 격정어린 작품이 마음껏 펼쳐지는 것을 희망했다.
데이비드 블레니 브라운의 『낭만주의』야말로 이 강렬한 독창성의 전개가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터져나온 것인지를 풀HD급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낭만주의 음악이 단순히 병적인 어떤 감정 상태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강력한 예술 운동임을, 그 시기의 미술이 독창성을 무기로 하는 격렬한 정치운동의 의미까지 있음을 브라운의 『낭만주의』는 보여준다.
북구의 피요르드 해안과 차디찬 빙벽 앞에 선 방황하는 자의 내면을 많이 그린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화염에 휩싸인 듯한 화폭 안에 질주하는 근대문명의 맹렬한 속도와 그 힘을 담은 윌리엄 터너!
서순의 『유럽문화사』가 망원경이라면 브라운의 『낭만주의』는 현미경이다. 망원경의 저자는 서문에서 “지난 200년 동안 유럽인이 이용할 수 있었던 문화적 산물들에 대한 생산, 유통, 소비를 이 이야기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쓴다. ‘다행스럽게도’ 서순은 이 방대한 책에서 미술을 생략했는데 “미술을 포함시키면 그렇지 않아도 두꺼운 책이 훨씬 더” 두꺼워질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린다. ‘엄살’인 까닭은 미술을 제외한 진짜 이유를 곧 덧붙이기 때문인데, 오늘의 관점에서는 현미경 즉 브라운의 『낭만주의』가 있기에 다행이다. 브라운은 서문에서 낭만주의 미술가들의 “저항과 열정을 향한 당시의 정신은 오래전에 사라졌더라도 그들이 추구한 진정성과 성실성과 내면의 진리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쓰면서, 강조하기를 “이런 개념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예술의 근간을 떠받쳐주는 기본 개념”이라고 쓴다. 이 망원경과 현미경을 겹쳐 읽다보면,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을 정독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18년 8월 20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