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양말 제조공, 러다이트 운동에 가담한 전모공, ‘시대에 뒤떨어진’ 수직공, ‘유토피아적’ 장인, 심지어는 꼬임에 빠진 조애너 사우스컷의 추종자들까지도 후손들의 지나친 멸시에서 구해내려는 것이다.”
이렇게 쓰는 자는 누구인가? 에드워드 팔머 톰슨. 1924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워드 존은 영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비판적인 감리교 목사로 인도에서 인도인을 위한 교육단체의 선교활동을 했다. 형 프랭크 톰슨은 1939년 영국 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불가리아 반파시즘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파시스트들에 의해 처형되었다. 24살 때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톰슨이다.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영국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고, 1947년에는 유고슬라비아와 불가리아로 가서 철도 건설 같은 전후 재건운동은 물론 반파시트트 인민전선운동에도 참여했다. 귀국 후에는 요크셔 지구위원회의 평화운동에 참여하였고, 미·소 양대국이 벌이는 한국전쟁에 반대하는 활동도 했다.
이러는 중에 그는 전후 영국에서 급속하게 전개된 두 갈래의 학술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 하나는 모리스 돕, 크리스토퍼 힐, 에릭 홉스봄 등이 전개하는 정치와 역사의 연구와 논쟁이다. 대체로 1차 대전 전후에 태어나 2차 대전을 청년기로 보낸 이 세대들은 영국 바깥의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극악을 떨친 파시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물론 영국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 제국의 본질에 날카로운 메스를 가했다. 그들은 대영제국의 역사를, 자본주의의 발달사를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새로 쓰고자 했다.
다른 한 갈래는 리처드 호가트와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시작으로 하여 스튜어트 홀과 테리 이글턴으로 이어지는 문화 연구다. 이들 ‘버밍엄학파’는 기존의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나 프랭크 리비스로 대표되는 전통 문화주의자에 맞서 축구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분출되는 하위계층의 격렬한 감정 표출을 옹호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대부분 노동계급 출신레이먼드 윌리엄스이거나 제3세계 이민자스튜어트 홀 혹은 아일랜드의 하층민 구교도테리 이글턴 등의 비주류 배경을 가진 이 문화 연구자들은 영국 문화 전체를 전복적으로 해석하면서 하위계층의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를 시도하게 된다.
이 경향들을 조금은 느슨하게, 그러니까 어려운 책을 펼쳐놓고 씨름하기보다는, 삶의 밑바닥에서 건져올린 블랙유머와 통렬한 사회 비판이 탄탄한 내러티브 위로 펼쳐지는 영화를 통해 일람해보고자 한다면, 단연 켄 로치 감독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개봉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도 유명한 켄 로치는 1936년 영국 워릭셔주 너니턴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작업 현장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던 전기노동자였다. 철도 신호수였던 아버지의 신원 회복을 위해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영국의 ‘전통문화’를 전면적으로 해부하고 그 문화적 지배의 뿌리 깊은 기만성을 폭로하면서도 노동계급의 문화적 유산을 재평가한 것처럼, 켄 로치는 수많은 영화를 통해 가난한 동네의 상처 입은 삶을 깊이 있게 복원해냈다.
영국 노동계급의 분열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그린 『내비게이터』나 아일랜드 문제를 처절한 화염으로 그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도 있지만, 그의 초기작 『케스』나 금방이라도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노동자들의 일상을 다룬 『에릭을 찾아서』를 보면, 전후 영국의 급진적인 정치학자·역사학자·문화학자들의 내면 세계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방금 ‘전후 영국의 급진적인 정치학자·역사학자·문화학자’라고 표현했는데 이른바 이 ‘융·복합적’인 묘사에 홉스봄, 윌리엄스, 이글턴이 다 해당되지만 에드워드 톰슨이야말로, 특히 그의 저작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이야말로 이 세 영역을 아우르는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노동자교육협회와 리즈대학에서 제때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한 성인 노동계급을 위한 교사로 일하면서 오히려 “나는 줄곧 민중들에게 배웠다”고 말한다. 겸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그런데 내가 그때 그곳에서 살지 않았으므로, 톰슨과 한 시대를 공유한 학자의 회고를 인용하는 게 낫겠다. 어떤 점에서는 톰슨 이상의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에릭 홉스봄은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서 톰슨을 “똑똑하고 준수하고 열정적이고 탁월한 연설 솜씨를 지닌 행동가”로 기억한다.
다만 홉스봄이 보기에 톰슨은 “글에서 잔가지를 쳐내는 능력과 주제를 무한정 넓히지 않는 자제력”이 부족했는데, 이는 근대 잉글랜드 노동운동에 대한 짧은 교재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 800쪽이 넘는 대작으로 확장된 것에 대한 홉스봄의 유머다. 그는 “이 두꺼운 책은 역사학계에 활화산 같은 충격을 주면서 주류 역사학자들한테서도 금세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진보성향을 가진 영국과 미국의 젊은 독자를 매료시켰으며, 얼마 안 가서 유럽의 사회학자와 사회사학자한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학문적으로나 운동적 차원에서나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분량에서나, 이 책은 이 더위에 탁 펼쳐놓고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두 가지 이유에서 일단은 펼쳐볼 만한 책이다. 그 이유가 다 톰슨의 펄펄 끓는 서문에 들어 있다. 서문에 쓰기를 톰슨은 계급은 ‘사물이 아니라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노동이든, 여성이든, 소수자든 모든 운동이 고정불변의 실재를 확정해두고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운동’을 하다보면 어김없이 동맥경화증에 걸리게 마련이다. 톰슨은 계급 및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은 “접골사의 시술대 위에 환자로서 누워 있거나 하는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이른바 ‘진보진영’의 각 운동노동, 교사, 여성, 언론 등 또한 정체성의 동맥경화증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실 이 점이 이 서문의 백미다. 앞서 인용했듯이, 톰슨은 가난한 자들을 멸시로부터 구해내고자 이 책을 썼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쓴다.
“그들의 재주와 전통 기술은 사라져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공업화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은 퇴영적 관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공산사회 지향적 이상들은 공상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폭동 모의들은 무모한 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톰슨은, 고쳐 쓴다. 기계 파괴를 하던 자들, 고약한 땀냄새에 약간의 술냄새도 섞여 있던 자들, 자신들의 행동 관습에 대해 악의에 찬 비방이 실린 신문을 읽지도 못하는 문맹자들, 그래도 참을 수 없어서 거리에 쏟아져 나온 자들. 그들을 멸시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톰슨은, 서문에서, 이렇게 쓴다.
“한 사람의 행위가, 뒤따르는 발전이란 관점에 비추어보아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우리의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결국은 우리 자신도 사회적 발전의 종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의 더 넓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공업화 문제, 민주적 제도의 형성 문제 등 산업혁명기에 우리 자신이 경험한 것과 여러모로 유사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 (근대 산업혁명기) 잉글랜드에서 패배한 주장이 (오늘날)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는 혹시 승리할 지도 모른다.”
★ 이 글은 2017년 8월 8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