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간의 두려움의 정도를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집단적 차원에서 낮출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인간 집단들 내부에서 또 그들 간의 평등을 이룰 수 있다”
세기말과 세기초에, 그러니까 십수 년 전에 벤처 바람이 크게 불었다. 문화판에도 불어 닥쳤다. 문화란 게 요상해서, 단일 제조업과 달리 여러 장르의 전문가들이 한데 모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첨단 IT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 경영 전문가들도 규합해야 한다. 나는 일련의 문화 기획자 그룹에 속하여 강남 신사동 간장게장 골목의 어느 허름한 빌딩 3층으로 가서 나름 장안의 고수로 통하는 사람들과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무슨 시드머니종잣돈인가 하는 돈이 들어와서 종로의 큰 빌딩으로 일단 옮기게 되었다.
가보니, 기술과 마케팅 전문의 작은 회사들도 들어와 있었다. 이내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들어온 그룹과 나중에 합류한 그룹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 층을 달리하여 썼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고 다만 회의할 때, 회식할 때, 그래도 회사라고 유관 부서원끼리 담배라도 한 대 필 때, 아주 미묘하지만 확실한 장벽이 분명히 감지되었다. 빌딩 뒤 골목에 모여서 담배는 같이 피웠지만 서로 대화는 없었다. 그러면 그런대로 그냥 세월을 보낼 것을, 누군가 호기 있게 발의하여 이러다가는 시너지 효과가 없다고,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시너지가 중요하다고 하여 두세 개의 이질 집단이 갑자기 한 층에 모이게 되었는데, 이로써 모두가 확실하게 장벽을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탕비실이 문제였다. 한 달 전부터 위층을 쓰고 있던 ‘기득권자’들은 탕비실의 자잘한 물건들에 대한 규정을 A4용지로 써붙였다. 커피믹스와 종이컵과 티스푼에 대한 그 규정들은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이미 존재했던 자와 이제 막 틈입한 자를 구분했다. 탕비실을 시작으로 하여 각종 사무 소모품을 거쳐 이윽고 회의실의 테이블과 의자에 대한 규정으로 점점 더 장벽은 확대되었으며 이윽고 회식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 상당히 거북한 감정노동으로 전화되었다.
뒤늦게 합류한 사람들은 규정도 잘 모르고 담배도 아무 데서나 피우고 지저분하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손쉽게 규정되었다. 중요한 업무회의를 하는 것도 불편해졌고 급기야 이면지를 쓰는 일, 의자를 옮기는 일, 복도에서 마주치는 일, 화장실에서 잠시 함께 서 있는 일 따위가 모두 날카로운 신경전 속에서 전개되었다.
돌이켜보면, 이유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질적인 집단이 갑자기 하나의 공간에 군집하게 되었을 때, 어디서나 나타나는 선점한 자와 틈입자 사이의 경계였고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자 곧장 모든 사안이 바늘끝처럼 날카로운 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랬으니, 벤처 바람이 이내 시들해지자 그 건물에 모여들었던 사람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만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다행스러운 노릇이었다.
사실 이 정도 일이야 기나긴 삶의 여정 속에서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봐야 겨우 생각날 정도로 작고 희미한 일이거니와, 어떻게 보면 나는 다른 자리에서 위의 사례보다 더 극심하고 구조적이며 분명하게 차별적인 장벽에 사로잡혔던 적이 더 많았다. 일일이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낙인 찍혀 혼이 나고 이리저리 밀려나서, 아예 의미의 변방이 아니라 실제로 추방된 변방이 차라리 있을 만한 곳으로 여겨져 그저 그렇게 보낸 세월도 짧지 않았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와 존 스콧슨은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한길사, 2005를 통해 이 같은 일이 실은 전 지구적으로 펼쳐지는 권력관계임을 증명한 바 있다. 독일계 유대인으로 나치의 광풍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엘리아스는 제자 존 스콧슨과 함께 1950년대 말 영국의 작은 마을 윈스턴 파르바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인구가 10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소읍 윈스턴 파르바. 이 곳은 두 개 구역으로 나뉜다. 한쪽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주해 와서 미리 살고 있던 구역이다. 다른 쪽은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인종이나 국적은 물론 직장이나 소득이나 지위도 엇비슷한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수십 년 이상 살아온 ‘기득권자’와 이제 막 이삿짐을 푼 ‘아웃사이더’ 사이에는 견고한 장벽이 세워졌다.
기득권자, 즉 오랫동안 살아왔던 집단은 이 소읍의 풍습과 예의와 일상의 태도를 규정한다. 이를 강력한 질서의 무기로 삼는다. 이를 위하여 ‘낙인찍기’와 ‘모욕주기’가 공공연히 벌어진다. 그들의 행위규범이나 생활양식이 표준이고 선이 된다. 반면 아웃사이더는 전입신고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더럽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이 찍힌다. 기득권자는 자기 그룹에서 최상의 조건을 가진 소수를 자기들의 표상으로 삼고, 아웃사이더는 자기 그룹에서 최악의 조건에 처박혀 있는 자를 자기들의 표상으로 삼는다. 아마도 조금은 형편이 좋다고 하는 강남 사람들은 자기들의 표상으로 타워팰리스 같은 최고가 건물을 내세울 것이다.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이 전통적인 의미에서나 문자 그대로 아웃사이더보다 ‘더 순결하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반면 “아웃사이더 집단은 스스로 압제자의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규범에 못 미치며, 그래서 열등”하다고 느낀다.
느슨한 유대감으로 살아오던 기득권자는 낯선 아웃사이더를 통제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유대감을 강화한다. 누군가 그쪽으로 가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거나 술이라도 한 잔 하게 되면 압력을 가한다. 그런 자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말이다.
학문적으로는 여러 모로 검토의 여지가 있지만, 엘리아스와 스콧슨이 밝힌 그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다. 자기가 속한 세계가 균열될지도 모른다는 사회적 두려움, 따지고 보면 기득권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이 침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보다 실은 자기들의 세계가 그리 순수한 것은 아닐 거라는 두려움 말이다. 아웃사이더라고 해서 선한 집단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사회적 압력을 회피하거나 견디거나 부분적으로 저항해내는 기제를 만들어낸다. 어쨌거나 그들도 두려움에 지배당한다. 그들은 다른 집단의 ‘노예가 될까, 착취당할까, 빼앗기고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엘리아스와 스콧슨은 제안한다. “상호간의 두려움의 정도를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집단적 차원에서 낮출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인간 집단들 내부에서 또 그들 간의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한, 결코 회피할 수 없는 문제, 예멘 난민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보기 위해 『기득권과 아웃사이더』를 살펴보았다. 이 책이 달리 서문은 없으나, 번역자 박미애의 다음과 같은 ‘역자 서문’의 한 대목은 이 책의 가치를 선명하게 입증해준다.
“단지 권력에서 배제되었을 뿐인 아웃사이더 집단은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열등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규정되고 통용되며, 시간이 흐르면 이 통념은 기정사실이 된다. 응집력이 약해서 긍정적인 집단 정체성을 구성하지 못한 아웃사이더 집단은 이런 부정적인 낙인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자화상 안에 수용한다. ‘기득권자는 아웃사이더의 내면에 동맹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진실로 두려운 것이다. 아웃사이더가 내면화해버린 강력한 권력의 낙인들. 돌아보라. 우리 사회의 곳곳, 조기축구회에서 회사 조직에 이르는 무수한 곳의 살벌한 생존논리들 아닌가.
★ 이 글은 2018년 7월 16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