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 앞에는 충격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동상이 세워졌다.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어떤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동상, 그것은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 때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가 끈질기게 달라붙으면서 신경전을 벌이자 그만 지네딘 지단이 박치기로 가슴팍을 들이받은 것이다. 지단은 곧바로 퇴장당했고 마테라치의 ‘희생’ 덕분에 이탈리아는 우승했다.
6년 후, 알제리 출신의 미술가 아델 압데세메드가 바로 그 충격의 장면을 5m 크기의 거대한 동상으로 재현한 것이다. 퐁피두 미술관이 작품을 의뢰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 전시에서 압데세메드는 설치, 조각, 드로잉, 영상, 콜라주 등 현대미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폭력적인 21세기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풍자와 해체와 고발과 연대의 날카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이렇게 축구는, 그리고 지단은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폭발시킨다. 지단과 압데세메드. 둘 다 알제리 이민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뤘다. 그 과정은 단순히 무명에서 유명 스타로, 가난을 탈출한 성공담으로 요약할 수 없는 극심한 가난과 차별과 밀려나기와 스스로 자신을 변방으로 위치 시키기 등의 사회적 압력이 작동한 과정이었다. 지단은 자신이 이민자 출신의 성공 스타가 되기를 거부했고, 극우파 르펜 부녀가 주도하는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했다. 가히 파시즘적 공포 분위기에 짓눌리던 프랑스의 공화주의를 되살리고자 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출신 배경을 잊지 않았으며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는 출신지마르세유의 알제리 이민자 거주지역를 사랑했다. 압데세메드의 동상은 그러한 지단의 축구와 삶에 대한 역설적인 오마주였다.
이렇게 축구는, 그리고 월드컵은 수많은 이야기를 양산한다. 아니, 원래 존재했으나 여러 이유로 은폐되거나 소홀히 취급된 수많은 정치·사회적 사건들을 드러내준다. 조별 리그 첫 경기들이 끝난 이 시점에서도 이미 엄청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몇 개를 소개한다.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거칠게 화를 냈다. 평소 상대팀 벤치와도 말다툼과 몸싸움을 불사하는 감독인데, 이번에는 장외에서 미국의 스포츠용품 회사를 향해 분통을 터트린 것이다. 나이키사는 6월 4일, 미국 정부의 대對이란 경제제재로 이란 대표팀에 축구화를 공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케이로스는 ‘모욕감’을 느꼈고, 선수들의 자존심을 보호하고 싶어했다. “나이키가 그렇게 많이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이키는 최소한 선수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이다. 축구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란 선수단을 ‘축구화 공짜로 얻으려는 팀’ 정도로 여긴 것에 대한 분노다. 세네갈의 알리우 시세 감독도 기억해야 한다. 흡사 세계적인 힙합 스타인 스눕독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포스의 옷차림으로 유명한 시세는 현재 러시아월드컵 참가 감독 중 ‘유일한 흑인 감독’이다. 그는 분노한다. “축구에서 피부색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프리카 감독들도 전술적인 면에서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이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권리! 그렇다. 다른 피부색의 감독들과 비등한, 또는 그보다 우월한 경력과 자질이 있음에도 피부색을 이유로 감독은 물론 코칭스태프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를 그는 많이 봤다. 우리도 기억하고 있는, 유럽 각 리그에서 활약한 역대 흑인 스타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벨기에의 공격수 로멜로 루카쿠를 마저 기억하자. 첫 경기 파나마 전에서 2골을 몰아친 후 BBC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벨기에 언론은 내가 좋은 경기를 하면 ‘벨기에의 공격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진한 날 벨기에 언론에 나는 ‘콩고의 피가 흐르는 선수’로 바뀌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키운 건 분노”라고 말했다. 극도의 가난과 차별 속에서 그는 공을 찼다.
축구는 냉면과 같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많은 사람들이 냉면의 그 단순함을 즐기면서 수많은 말들을 한다. 그러나 그 맛을 내는 사람들은 오랜 경륜과 비범한 손맛을 부린다. 축구도 그렇다. 감독과 선수들은 모든 기술과 정성을 다하여 경기를 펼친다. 팬들은 비록 그 세세한 것은 잘 몰라도, 경기 자체의 단순함 때문에 한데 모여서 열광한다. 월드컵으로 인하여 장외의 수많은 역사와 문화가 뒤엉키게 된다.
여기 세 권의 책이 있다. 아드리안 스미스와 딜윈 포터가 엮은 『전후 세계의 스포츠와 국가 정체성』은 잉글랜드축구, 아일랜드럭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과 스포츠, 카리브해크리켓, 미국의 선민의식과 예외주의야구, 스포츠를 둘러싼 호주와 뉴질랜드의 관계 등이 풍성한 사례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펼쳐진다.
다음, 프랭클린 포어의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위의 책이 논문집이라서 일정한 지적 개념을 탑재했을 때 수월하게 읽히고 그럴 때 비로소 스포츠를 복잡한 표피 속에 숨어 있는 현대 국가의 성격을 더듬어볼 수 있다면, 저널리스트인 포어의 이 책은 사건을 치밀하게 보도하듯이 서술하고 있어서 상황 인식에 도움을 준다. 구소련 해체 이후의 세르비아 축구 문화, 잉글랜드 훌리건의 진실들, 부패로 얼룩진 브라질 축구, 축구로 엿본 이슬람 사회 등이 펼쳐지는데, 아쉽게도 2004년에 출간되고 국내에는 이듬해 번역되었다. 10여년 전의 정황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그렇기는 해도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다시피 “열혈 팬과 폭력배 두목, 성질 급한 불가리아 공격수 등을 만나면서 세계화가 축구경기의 지역 문화와 혈통 간의 반목관계나 지역 부패를 줄이는 데 실패”했는데, 왜 그렇게 상황은 더 악화되었는가를 여러 사건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 책은 『축구, 전쟁의 역사』. 영국의 저명한 스포츠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의 역작인데, 아쉽게도 위 책보다도 더 오래 전인 1994년에 발간된 책이다. 그 후 여러 정보를 추가 증보하였지만 기본 골격은 1990년대 초반이다. 그럼에도 강추한다.
‘서문’의 형식으로 쓰여진 ‘축구의 발자취를 찾아나선 여행’에서 쿠퍼는 9개월 동안 22개국을 취재하면서 “축구는 결코 그냥 축구가 아니다. 축구는 전쟁과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고, 마피아와 독재들마저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엄연한 사실을 매우 공격적인, 독자를 바로 당장 축구 권력자들 턱 밑으로 끌어당기는 문장으로 증명한다.
쿠퍼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가는 곳마다 이런 말을 들었다. ‘축구와 정치요! 그렇다면 당신은 제대로 찾아왔소.’ 축구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바로 그렇다. 그리고 그 중요한 문제가 지금 러시아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당신이 새벽까지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축구 이상의 어떤 세계를 격렬한 감정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2018년 7월 2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