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니』는 유럽이 전쟁을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쓰인 평화 선전문이다. 울프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했다. 울프는 전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입장을, 말하자면 가부장적 가족에서 조국의 파시즘과 싸우는 입장을 옹호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 글쎄, 막스 리히터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또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나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꽤 오랫동안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나오는 그 울프였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는 감상적인, 지극히 감상적인 시 말이다. 김수영은 박인환의 이러한 시들에 대해 ‘코스튬’만 있다고, 그러니까 실체는 없고, 어디서 근사한 이미지를 가져와서 그럴 듯한 포즈만 취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믿는다면, 박인환이 이 유명한 시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제대로 알고 썼는지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시인 고은이 ‘아! 50년대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던 전쟁과 그 이후의 폐허 시기에 박인환이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와 함께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린, 그 시대 나름의 쓸쓸한 정념까지를 윽박지를 필요는 없다. 1955년, 생전에 시인 스스로 엄선하여 펴낸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의 후기에서 박인환은 “나는 10여년 동안 시를 써왔다. 이 세대는 세계사가 그러한 것과 같이 기묘한 불안정한 연대였다”고 했는데, 다만 그런 정도의 정념으로써 버지니아 울프가 선택되었음을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는 있는 것이다. 하기야 그 후로도 오랫동안 버지니아 울프는 비범한 천재성을 지녔으나 스스로 목숨을 버린, 심하게 표현하기로는 ‘여류 소설가’라는 기이한 방식으로 분류될 정도였다.
울프의 소설이 적어도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또 샅샅이 새로 읽히게 된 것은 대체로 1990년대 이후의 일이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울프는 익숙했던 19세기 소설 양식에서 벗어나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문지방을 훌쩍 뛰어넘은 실험가이자 여성주의 관점에서 ‘건장한’ 남성들이 구성한 이 20세기의 강력한 힘들을 전복하고자 한 작가로 거듭 읽히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어렸을 때 영문도 모르고 읽었던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나 『등대로』 같은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읽게 되었는데, 그런 중에 막스 리히터의 음악까지 듣게 된 것이다.
막스 리히터는 1966년 독일에서 태어나서 영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왕립음악원에서 음악을 배운 후 20년 가까이 기존의 클래식 지평 위에 펑크록이나 일렉트로닉을 높은 차원에서 결합시킨 음악가다.
주제 선율을 거의 무한루프로 반복하되 그 밀도와 긴장감을 극한까지 밀고 올라가는 앨범 『메모리하우스』2002나 『블루 노트북』2004 등으로 큰 평가를 얻은 막스 리히터는 특유의 쓸쓸한 정경과 긴장감 넘치는 미니멀 스타일로 인하여 클래식 본령은 물론 영화, 무용, 연극 등의 음악 실험에도 참가하였다. 그 대표작이 충격적인 엔딩으로 전쟁과 애도를 묘사한 『바시르와 왈츠를』2008이나 앙드레 테시네 감독의 『용서할 수 없는』2011 등이다.
그가 방황과 혼돈의 20대 초반에 밑줄 그으며 읽었던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다. 2017년 영국의 로열 발레단이 울프의 대표작인 『댈러웨이 부인』1925, 『올랜도』1928, 『파도』1931를 발레 작품으로 연출하게 되자 리히터는 이 무대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게 된다. 그 결실이 음반 『Three Worlds: Music From Woolf Works』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 앨범에 대해 “기억, 광기, 시간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사색”이라고 평했다.
이런 주석이 없다 하더라도, 어떤 우연의 일로 이 앨범을 듣게 된 독자가 있다면, 막스 리히터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들려오기 전에 앨범 첫 번째 트랙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여성의 쇠잔한 목소리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아주 짤막한, 그러나 몇 마디라도 남겨야만 되겠다는, 힘에 겨운 듯 낮게 읖조리는, 어딘가에 그을린 듯한, 그 목소리가 바로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육성이다. 1937년의 기록이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단어, 그 속에 단어 이외의 의미와 기억이 담겨 있고 또 과거의 많은 경험들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검색하면 7분여 정도 되고 막스 리히터의 앨범에서는 1분 남짓하다.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서나 할 만한 말이겠으나, 이 육성이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유일한 기록이고, 1937년이라고 하면, 1941년 3월 차가운 우즈 강에 스스로 걸어들어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은 울프의 마지막 생애주기라는 점에서, 그저 그런 강연 녹취로 들리지는 않는다.
오늘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는, 그야말로 격동의 연대기 속에서 주목해야 할 울프의 작품은 『3기니』다. 어느 남성 변호사가 보낸 편지에 ‘나’가 보내는 답장 형식을 취한 이 서간문에서 울프는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남성들이 만든 거대한 폭력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분노를 표하고 있다. 단순히 폭력적인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폭력적인 ‘남성들’의 전쟁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하여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울프는 전쟁이 남성의 유희이며, 살육기계도 성별을 갖고 있는 바 그것도 바로 남성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독창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더 중요한 것은 손택의 이어지는 언급이다. 바로 그 점, 즉 전쟁이 남성성 그 자체라는 점 때문에 역시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서구 지성계에서 “이 책이 그녀의 저서 중 가장 환영받지” 못했다고 손택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3기니』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역사상 인간이 여성의 소총에 맞아 쓰러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새와 짐승을 살해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었지요.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전쟁은 직업이고, 행복과 흥분의 원천이며, 또한 남성적 자질의 배출구라는 것이지요. 전쟁이 없다면 남성은 타락할 겁니다.”
그러니까 울프는 1차 대전과 스페인 내전, 그리고 생의 막바지에 터진 2차 대전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하였으나 그것은 전쟁 일반이 아니라 남성들이 일으키는 전쟁, 전쟁 기간 중 도처에 흘러넘치는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성을 비판했던 것이다.
울프의 난해한 작품들에 비하여 『3기니』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활용, 실존 인물들과 그들이 겪었던 사건들에 대한 논평, 당대 영국 현실에 대한 진단 등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읽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물론 울프의 주장을 인정하고 내면화하고 심지어 그것을 살벌한 긴장과 대립의 국제관계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아마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문학자 제인 마커스가 이 책의 ‘책 머리에’에 쓴 다음과 같은 대목은 생생한 실감의 증언으로 가치가 있다.
“『3기니』는 논쟁의 위대한 시기에 쓰여진 하나의 선언서이자 논박이다. 『3기니』는 유럽이 전쟁을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쓰인 평화 선전문이다. (중략) 울프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했다. 울프는 전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입장을, 말하자면 가부장적 가족에서 조국의 파시즘과 싸우는 입장을 옹호했다.”
★ 이 글은 2018년 6월 18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