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 송두리째 존재와 무 사이에서 전율하는 이 끔찍한 순간에 내가 창피해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지나간 시절이 미래의 캄캄한 심연을 번갯불처럼 비추고, 내 주위의 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와 더불어 이 세계도 무너져 내리는 이 끔찍한 순간에.”
이런 참담한 독백 끝에 젊은 베르테르는 자신의 삶을 최종적인 종막을 향해 무섭게 몰아간다. 이런 궁극적 선택, 더 이상의 여지가 손톱만큼도 남지 않을 결정에 이르는 인물을 보게 되면, 나는 궁금하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 오래전에 읽을 때는 여러 해설들을 참조하여 ‘그래서 그랬나 보다’ 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왜 그들이 극단의 선택을 했는지 오히려 종잡을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아다시피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웅주의에 심취했던 이 젊은 법학도는 마침내 광장에 엎드려 차디찬 바닥에 키스를 하면서 스스로를 구원해간다. 왜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며 그 순간 아차 하며 또한 죽일 수밖에 없었던 다른 목숨 때문에 왜 그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하여 결국 소냐의 정신적 인도를 따를 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이 소설에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있다. 그는 권총으로 자기 생을 마감한다.
왜? 사춘기 때 고전 명작이라고 해서 다들 읽으라고 권유하는 분위기에 따라 읽었을 때 말고, 좀 더 커서 나름 생각을 가지고 이 소설을 되풀이 읽으면서도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선택은 종잡을 수 없었다. 철학자 김용규는 “욕망과 쾌락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만”이 그를 “지옥보다 더 끔찍한 지옥에” 가두었다고 해석했다. 희미한 안개가 걷힌 듯한 느낌이지만, 그를 사로잡았던 악행! 그 근원이었던 강력한 정념의 냄새는 여전하고 그 악마적인 힘이 남긴 압력은 여전히 무겁다. 『죄와 벌』을 거듭 읽어봐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카뮈는 또 어떤가. 그의 『이방인』, 그 주인공 뫼르소. 해변에서 총격으로 사람을 죽인 자. 그 죽임의 순간에도,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을 때도, 감옥으로 찾아온 사제를 만날 때도 끝없이 자기를 방임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했던 자 뫼르소. 그의 선택은 어떤가. 카뮈는 다른 소설 『페스트』에서 부조리한 상황에 처했어도 끝까지 실존의 가치를 증빙하려는 의사를 앞세웠을 뿐만 아니라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지 않았던가.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고 바위를 들어올리는 고귀한 성실을 가르쳐준다. 그도 또한 모든 것은 좋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 주인이 없게 되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지나 하찮은 것이 아닌 듯하다. 이 바위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이 산의 광물의 빛 하나하나가 유독 그에게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야만 한다.”
이 시지프와 뫼르소는 다른 인물인가. 『페스트』의 주인공 베르나르 리뇌는 뫼르소와 다른 인물인가. 시지프를 일컬어 “그는 자기의 운명보다 우위에 있다. 그는 자기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고 했던 카뮈는 왜 『이방인』의 주인공을 아주 작은 외적인 동기만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 삶을 던져버리고 싶은 인물로 그렸던 것일까. 알제리의 빈민가에서 자랄 때, 어둡고 비좁은 방에 누운 할머니가 어린 카뮈를 향해 힘없이 흔들던 손짓들어오라는 것인지 저 쪽으로 가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죽음을 앞둔 병약한 노인의 손짓과도 같은 수수께끼로 뫼르소는 그려져 있다.
카뮈는 1913년 11월 7일,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몽드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북부 알사스 출신인 아버지는 1차 대전 때 전사했고 어머니는 청각장애를 앓았다. 카뮈는 가난하고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다. 그런 처지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카뮈는 언제나 축구공을 차면서 성장했다. 1928년에 알제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그 대학 축구부에서 골키퍼를 맡았다. 그는 『알제대학주보』에 이런 글을 쓴 적 있다.
“내가 나의 축구팀을 그렇게도 사랑했던 이유는 결국 열심히 뛰고 난 후에 뒤따르는 나른한 피곤함과 더불어 느껴지는 저 기막힌 승리의 기쁨 때문이었고, 또한 패배한 날 저녁이면 맛보게 되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그 어리석은 충동 때문이었다.”
카뮈는 1934년에는 알제리 공산당KP에 가입하였다가 1년 후에 탈퇴했으며 언론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였다. 1942년 프랑스로 이주한 카뮈는 반나치 레지스탕스 단체인 ‘콩바’Combat·전투에 가담하였고 이 단체가 발행하는 저항신문 『콩바』의 주필로 활동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카뮈는 나치 협력자 청산정책을 지지하였다. 카뮈의 이러한 현실적 면모는 1947년 작 『페스트』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한편 그의 대표작 『이방인』의 주인공은 권총으로 아랍인을 죽이게 된다. “무미건조한 동시에 귀를 찢는 듯한” 권총 소리! 이것만으로도 이미 “해변의 그 예외적인 고요를 파괴”했음에도 뫼르소는 무려 네 발이나 더 쏘게 된다. 이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이후 뫼르소는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 뫼르소는 마치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처럼 법정 이곳저곳을 바라본다. 왜?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하여 카뮈가 1958년 런던에서 발행되는 영문판을 위해 서문을 따로 썼다는 것이다. 전후 프랑스 사회의 혼돈, 여러 지식인들의 복잡한 행동양태와 그에 따른 논쟁들, 그 논쟁의 중심에 선 카뮈는 자신의 사상과 작품에 대한 논란을 어느 정도는 해명하고 완화하기 위해 서문을 썼다. 뫼르소가 어떤 인물인지, 그가 왜 자기 삶을 스스로 던져버리듯 행동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무책임한 것인지 아니면 허위의 알리바이와 거짓된 언사를 거부하는 또 하나의 시지프인지, 카뮈는 아래와 같이 서문에 밝혔다. 『이방인』을 다시 읽을 만한 또 하나의 이유다.
“나에게 뫼르소는 표류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벌거벗었으며, 한 점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 태양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아무런 감수성도, 심오한 열정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하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말수가 적긴 하지만 절대와 진실에 대한 열정이 그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직은 부정적인 형태의 진실, 다시 말해 존재하고 느끼는 것으로서의 진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자기와 세계에 대한 승리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을 아무런 영웅적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내의 이야기라고 읽는다면 과히 틀리지 않는 셈이다.”
★ 이 글은 2018년 4월 17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