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문제를 당대의 언어로 깊이 있게 다루는 잡지들은 늘 그들의 창간호에서 마치 저자가 서문에서 나름 중요한 의도와 포부를 밝히듯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응하는 지식과 성찰의 의의를 밝혀 왔다. 이 연재가 좁게는 단행본의 서문을 통해 그 책과 저자의 세계를 살펴보는 것이지만, 잡지의 창간사 역시 같은 맥락으로 충분히 살펴볼 만한 세계들이다.
이를테면 해방과 분단, 전쟁과 휴전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출범한 『사상계』와 장준하는 1953년 4월, 그 유명한 ‘사상계 헌장’에서 이렇게 썼다. 단지 표기법만이 아니라 그 암담하고 혼탁한 시절을 순식간에 떠올리게 하는 웅혼한 문장과 숨가쁜 호흡이다.
“정치인은 과연 구국대업救國大業에 헌신하고 발분망식發憤忘食하였던가? 민民은 과연 대를 위하여 소를 버릴 용의가 있었던가? 우리는 서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음을 지극히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지중至重한 시기에 처하여 현재를 해결하고 미래를 개척할 민족의 동량棟樑은 탁고기명託孤寄命의 청년이요 학생이요 새로운 세대임을 확신하는 까닭에 본지는 순정무구純情無垢한 이 대열의 등불이 되고 지표가 됨을 지상의 과업으로 삼는 동시에 종縱으로 오천 년의 역사를 밝혀 우리의 전통을 바로잡고 횡으로 만방의 지적 소산을 매개하는 공기公器로서 자유, 평등, 번영의 민주사회 건설에 미력을 바치고자 하는 바이다. 오직 강호의 편달을 바랄 뿐이다.”
권력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그렇게 길들여진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무렵, 함석헌은 1970년 4월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며 「나는 왜 이 잡지를 내나?」에서 이렇게 썼다.
“정부가 강도의 소굴이 되고, 학교, 교회, 극장, 방송국이 다 강도의 앞잡이가 되더라도 신문만 살아있으면 걱정이 없읍니다. 사실 옛날 예수, 석가, 공자의 섯던 자리에 오늘날은 신문이 서 있읍니다. 나는 정치 강도에 대해 데모를 할 것이 아니라 이젠 신문을 향해 데모를 해야 한다고 했읍니다. 사실 국민이 생각이 있는 국민이면 누가 시키는 것이 없이 불매동맹을 해서 신문이 몇 개 벌써 망했어야 할 것입니다.”(원문 표기)
문학을 중심으로, 문학 이전의 상태과 그 이후의 상태, 문학의 안과 바깥으로 작용하는 정치·사회적 장력들을 다뤄온 주요 문학 계간지들의 창간사 역시 의미 있는 기록들이다.
1970년 가을호를 시작으로 출발한 계간 『문학과지성』은 창간호에서 “한국 현실의 투철한 인식이 없는 공허한 논리로 점철된 어떠한 움직임에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에도 휩쓸려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문학 계간지의 창간사들 중에서 문학 내부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창간사라는 형식으로만 보건대, 역시 가장 장쾌한 의의를 드러낸 것은 1966년 겨울호로 시작한 『창작과비평』이다. 미국에서 막 돌아온 28살의 신진 백낙청은 그 당시의 촘촘한 편집 스타일로 무려 34쪽에 이르는 권두 논문이자 사실상의 창간사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다
“지식인이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만나 서로의 선의를 확인하고 힘을 얻으며 창조와 저항의 자세를 새로이 할 수 있는 거점이 필요하다. (중략) 그 출발이야 누가 하든지 막막한 느낌이 앞서기 쉬울 것이다. 먼 길을 어찌 다 가며 도중의 괴로움을 나눠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직 뜻있는 이를 불러 모으고 새로운 재능을 찾음으로써 견딜 수 있을 것이요, 견디는 가운데 기약된 땅에 다가서리라 믿는다.”
이런 뚜렷한 역사들 중에서, 요즘의 초미세먼지 탓이기도 하지만, 그 문장과 그 뜻과 그 비극적 세계관이 높은 수준에서 통렬한 울림을 준 창간사로는 역시 1991년 11월에 창간한 『녹색평론』, 그 창간사를 쓴 김종철의 문장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그로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가 되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고 앞으로 더 살아남을진대, 그러나 위의 문장을 문명적 수사 이상의 의미로 새겨본다면, 여전히 그 통렬한 비극적 인식은 유효하다. 도대체, 이렇게 더 지속되고 심화된다면 과연 이 상태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말이다.
김종철은 젊은 학인 시절에 서구문명의 파탄을 일찌감치 예감한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깊이 연구하고 번역한 영문학자로 1978년에 비평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으로 탄탄한 이론에 근거한 실제 비평의 한 정점을 보여준 바 있다. 이후 김종철은 전공이자 생계였던 영문학 연구와 공부는 물론이고 불소 수돗물, 황우석 사태, 한·미 FTA, 유전자 식품, 컴퓨터 메커니즘, 대운하 등 오늘날 우리 삶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녹색평론』을 통하여 정밀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렸다. 2008년 12월 『시사인』의 칼럼, 그 마지막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오늘날의 파탄에 임하는 김종철의 사유다. “단편적인 지식과 기술에 의한 성과는 늘 부분적이고 단기적일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는 문명의 자기 파멸을 이끌 뿐이다. 따라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가장 절실한 것은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공격적인 자세가 아니라, 세계의 신비를 겸손하게 수용하는 심미적·관조적 자세이다.”
1991년의 『녹색평론』 창간사를 다시 기억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자세가 현저히 결핍된 상황들, 아니 결핍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러한 생각 자체를 낡은 것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기술발전주의의 속도에 가당치 않은 담론으로 여기는 오늘의 상황 때문이다. 지금은 초미세먼지로 숨 쉬기도 답답하지만 올 여름에는,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는, 내년에는, 5년 후에, 10년 후에는 또 어떤 가공할 만한 위협이 우리 삶을 공포로 몰아넣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991년의 『녹색평론』 창간사 중 다음의 대목은 지금 바로 이 시점에서 다시 읽고 또 읽어야 하는 귀한 글이다.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체들이 지구상에서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대단히 불투명해지는 현실에 직면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은 그렇다 치고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랑을 하고 이번에는 자기 아이들을 가질 차례가 되었을 때 그들의 심중에 망설임은 없을까 하는 보다 절박한 심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아마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회피하기 어려운 당면 현실일 것이다. 우리가 『녹색평론』을 구상한 것은 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 이 글은 2018년 4월 10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