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이여, 볼품없는 이 책이 지금 그대들의 손에 놓여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서문까지만 읽기를!”
야심만만하다. 이렇게 단호하게 쓰는 서문도 달리 찾기 어렵다. 어디 한 번 보자, 하는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과연 이 책을 덮고 말 것인가, 정녕?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단호한 서문을 쓴 자, 그가 겨우 스무 살 청년이라는 점이다. 스페인 남부,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1898년에 태어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가 1918년에 쓴 여행 산문집 『인상과 풍경』의 서문이다.
스무 살 청년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문까지만’ 읽으라고 했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빛나는 감성으로 채워진 서문 그 자체도 매혹적이지만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첫머리 ‘명상’의 첫 구절을 읽는 순간, 아 이 책은 결국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읽어 보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도시에 불안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어디에선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에는 짙은 우수가 배어나고, 이제 도시가 바로 눈앞에 있건만 가슴속으로 피로가 몰려든다. 아빌라, 사모라, 그리고 팔렌시아…. 이곳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지상의 신비로운 빛과 그림자의 향연을 펼치는 햇빛에서조차 끝없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여행에도 역사가 있다. 여행지는 늘 새롭게 발견된다. 유럽에 한하여 보건대, 지중해가 오랫동안 그들의 여행지였다. 온화한 기후, 시원한 바람, 강렬한 햇빛. 그러나 19세기 초, 그들은 북구로 떠돌아 다녔고, 19세기 중엽에는 알프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근대적 시민의 문화적 감수성이 차디찬 바다와 험준한 산악을 동경했던 것이다.
근래 우리의 여행 풍속 역시 사회·문화적 이유가 안개처럼 깔려 있다. 80년대 후반, 여행 자유화 이후 동남아로, 유럽으로, 미주로 여행을 떠났다. 동남아의 풍물시장을 떠돌아 다녔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며칠 동안 가로질렀으며,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러 다녔다. 그랬는데 이즈막에는 페루에 가고 히말라야에 가고 산티아고에 간다. 거기까지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그곳에 가서도 안락하고 편안한 여행보다는 스스로의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걷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순례에 가깝다. 떠들썩한 골프여행이며 맛기행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남미의 산정이나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걷는 것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순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만약 지금 그런 마음으로 스페인 어딘가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1918년, 정확히 100년 전에 출간된 책이긴 해도, 당장 로르카의 여행 산문집 『인상과 풍경』을 읽기 바란다. 아무 데나 펼쳐도 곧바로 밑줄을 긋게 되는, 깊은 한숨이 문장 사이사이로 배어나오는 글이다. 로르카는 ‘카스티야의 황혼’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미 밤이 왔는데도 안개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대지 위를 배회한다. 지평선 위로 한 줄기 하얀빛이 일자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이 순간 희미하게 드러난다. 홀로 추위에 떨던 백양나무는 연초록빛 거울 같은 도랑물 위에 떠오른 자신의 그림자를 처량하게 바라보고 있다.”
어떤가. 눈앞에 카스티야의 늑대와 개의 시간이 어렴풋하게 보이지 않는가. 어차피 스페인 여행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는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교통, 숙박, 맛집 정보들. 그런데 스페인의 역사와 스페인의 문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여 스페인 남부지방, 즉 카스티야의 눈물과 안달루시아의 한숨은 무엇으로 헤아려 볼 것인가. 『인상과 풍경』이 참으로 쓸쓸하고도 매혹적인 순례의 가이드북이 된다.
로르카는 고향 인근의 그라나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엄격한 단어로 구성된 법률의 세계를 그는 오래 견디지 못했다. 그는 엄정한 언어보다는 자유로운 언어를 추구하였다. 곧 시와 예술이 그의 십자가가 되었다. 이 무렵, 그는 스승인 마르틴 베루에타 교수와 함께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일대를 여행하면서 이 산문집을 발표하게 된다. 발표 직후 로르카는 스페인 예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빛나는 감성, 매혹적인 문장, 깊고 깊은 쓸쓸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산문집은 20세기 초엽 스페인의 불안한 정서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후 시를 발표하면서 마드리드로 진출한 젊은 시인 로르카는 산문시의 대가 라몬 히메네스, 화가 살바도르 달리, 초현주의 영화 감독 루이스 부뉴엘과 친구가 되었다. 로르카는 『칸테 혼도의 시』 『노래들』 『뉴욕에 있는 시인』 등의 시집과 『대중』 『피의 결혼식』 등의 희곡으로 금세 마드리드와 파리와 뉴욕의 스타가 되었다. 그는 현대도시를 사랑하였고 현대도시의 비루한 눈물과 속절없는 풍경을 사랑하였다.
그러는 중에 스페인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 발생했다. 1936년 2월 19일에 터진 스페인 내전이다. 이 내전에 구미의 여러 나라 지식인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시몬 베이유, 조지 오웰 같은 작가들이 인민전선을 지지하며 참여하였고 그 예술적 결실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등이 만들어졌다. 프랑코 파시즘이 이끄는 군홧발에 의해 5만여명이 법적 절차가 생략된 채 처형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상황에서 달리·피카소·카잘스·부뉴엘 같은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저항하였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프랑코 치하에서는 물론 이 정권을 지지하는 나라에서는 절대 공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와중에 로르카는 1936년 7월에 마드리드를 떠나 고향 그라나다로 피신하였다가 한 달쯤 지난 후에 체포되었다. 8월 19일 새벽 4시 스페인 그라나다 비스나르 언덕. 사흘 전 정부군에 체포된 38살의 시인은 올리브 나무 밑에 세워졌다. 정부군 장교가 신속하게 싸늘한 명령을 내린다. 거총한 병사들, 장전 후, 방아쇠를 당긴다.
스무 살 청년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인상과 풍경』은 슬픈 인상, 애틋한 풍경의 연속이다. ‘이 책은 안달루시아 문학의 쓸쓸한 정원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라고 로르카는 서문에서 썼다. 그러나 애틋함 사이로 반짝거리는 눈물의 통찰이 있다. 번역자의 해설도 충실하고 스페인의 지명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주석도 꼼꼼하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서문! 로르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서문까지만’ 읽으라고 했지만, 누구도 다음과 같은 서문을 읽고 책을 덮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보고, 또 모든 것을 느껴야 한다. 영원한 세계에 이르면 우리는 끝없는 축복을 얻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우리 모두는 꿈에 그리던 세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꿈꾸어야 한다. 끔꾸지 못하는 자여! 가엾은 자여, 그대는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 이 글은 2018년 1월 9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