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고통마저도 월드컵 축구경기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스펙터클구경거리로 소비만 하게 될 뿐이다. 우리 사회야말로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대표적인 곳이라는 판단이 든다.
2017년 3월 27일, 검찰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 JTBC ‘뉴스룸’의 손석희는 앵커 브리핑 코너에서 “기억은 일종의 윤리적 행위이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가슴 시리고도 유일한 관계”라고 말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의 한 구절이다.
손택은 1933년 뉴욕 모피 거래상 집안에서 태어났다. 15살에 버클리대에 입학했고, 1년 후에는 시카고대학으로 옮겼으며, 17살 때 결혼을 했다가 8년 만에 이혼을 했는데, 그러는 중에 25살에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지적 여정의 희망봉은 문학이었다. 2003년 10월, 독일 출판협회가 제55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통해 수전 손택에게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뜻깊은 판단으로 평화상을 수여했고, 그 기념 연설에서 손택은 자신의 희망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습니다.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특히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도 문학은 자유입니다.”
손택은 31살 때 세계문학이라는 자유 여권을 들고 평론활동을 시작한다. 1964년에 발표한 『해석에 반대한다』와 『캠프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은 1960년대 청년 문화운동의 격렬한 감성을 대변하는 이론이 되었다. 수전 손택은 베트남 전쟁의 폭력성,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등을 폭로하였으며 소설가 살만 루시디 구명운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미국 펜클럽 회장으로 있던 1988년에는 서울을 방문하여 김남주 시인 등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하였다. 황석영 소설가의 자전 기록 『수인』을 보면, 이 무렵 전두환·노태우 체제는 국제적인 문인들이 방한하는 국제 문학행사를 앞두고 각종 공작을 벌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시인 옙투센코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독재정권의 금품수수에 연루되기도 했다. 수전 손택은 이에 저항하였으며 백낙청·고은·황석영 등과 어울려 구속 문인 석방을 위한 행동을 여지없이 실행함은 물론 서울시내 주점에서 소주와 산낙지를 거리낌없이 먹기도 했다고 한다.
손택의 이 저항적인 삶은 90년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993년에는 내전 중인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으며 2002년 9월, 9·11 테러 1주년을 맞이하여 수전 손택은 “미 정부가 전쟁을 선포한 것은 미국의 힘을 무한정 사용하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는 중에 2004년 12월 28일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타계 1년 전에 『타인의 고통』이 출간되었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타인의 고통』은, 12살 때 서점에서 우연히 본 유태인수용소 사진에서 충격을 받은 수전 손택이 평생에 걸쳐 충격적인 사진 이미지가 대량으로 살포되는 현대문명을 비판해온 결실 중 하나다. 또 다른 결실 중 하나는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와 더불어 현대 사진의 사회적 의미를 밝힌 1977년 작 『사진에 대하여』다. 손택은 조너선 콧과의 인터뷰에서, 현대 사진에 대한 자신의 지적 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진에 대해 글을 쓰는 작업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사진이 이 사회의 모든 복잡성과 모순과 모호성 들을 투영하는 중심적 활동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호성이나 모순이나 복잡성은 사진의 본질이며 또한 우리가 사유하는 방식이기도 하죠.”
손택은 1977년에 발표한 『사진에 대하여』가 20세기라는 선진 산업 소비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쓴 책이라고 말한다. 그 후속작업인 『타인의 고통』은 현대사회에서 대량 복제되는 온갖 이미지들, 특히 전쟁과 폭력의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파괴되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손택이 이 책의 도입부를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로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1차 대전 참전 군인들의 기록을 분석하면서 “앞의 글들은 남성이 싸우는 세 가지 이유를 즉각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전쟁은 직업이요 행복과 흥분의 근원이며 또한 남자다운 특질을 쏟아내는 출구라는 것이죠. 이 출구가 없다면 남자들이 망가질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또한 해석하기를 과도하고 폭력적인 단 하나의 정념이 폭력의 세기를 만들고 있다고 울프는 절규한다. “전쟁에 관한 압도적인 만장일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지배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을 간단히 ‘애국심’이라 부르면 되겠죠?”
손택은 이렇게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 처참한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의 소파에 앉아 온갖 미디어를 통해 비참한 장면들을 구경하는 상황을 분석한다. 그것이 『타인의 고통』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제천에서는 큰 화재가 나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화재 당일의 심야 뉴스에서는 제천소방서장의 현장 인터뷰가 이어졌고, 기자들이 숨 가쁘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 질문은 시신의 상태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까지 있었다. 소방 관계자들은 유족들을 고려하여 지나치게 세부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고 하였고, 그럼에도 ‘절단된 다리’에 대한 해부학적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2014년 4월의 참사(세월호)는 또 어떠했는가. 한 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상이라도 되는 듯, 텔레비전 뉴스는 요란한 효과음까지 써가면서 비극을 스펙터클화했다. 수전 손택이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라고 한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였다.
국내 번역판에는 원저에는 없는 도판 사진들이 실려 있다. 출판사는 “손택은 자신이 본문에서 언급한 이미지들이 서구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것들이기에 굳이 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듯싶은데, 한국어판에서는 서구와는 문화적 풍토가 다른 국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총 48장의 도판을 실었다”고 소개한다. 서울대 영문과 민은경 교수는 논문 『타인의 고통과 공감의 원리』에서 이를 비판한다. 민 교수는 “왜 손택의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실려 있지 않을까? 손택은 우리에게 그 사진들을 보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을 바라보는 경험에 대해 사유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도 한 가지 미덕은 ‘한국어판 서문’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손택은 감사의 말을 쓰는 수는 있어도 독립된 ‘서문’을 따로 덧붙이는 것을 마다하였다. 거의 유일하게 ‘한국어판 서문’을 따로 써서 국내 독자들과 교감을 나누고자 했으니, 각별하다. 그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대한 분단체제에서 미시적 일상의 끊이지 않는 재난에 이르기까지, 매일같이 ‘타인의 고통’이 온갖 미디어에 넘쳐나는 우리로서는 심호흡 한 번 하고 읽어둘 필요가 있다.
“『타인의 고통』은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입니다. 제게 있어서 이 책은 스펙터클이 아닌 실제의 세계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논증입니다. 저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이 글은 2017년 12월 26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