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문학의 영원한 고전이 된 최인훈의 『광장』은 작가에 의하여 수차례 개정되어 왔다. 따라서 그 개정의 경우마다 ‘서문’이 늘 새로 쓰여졌다. 오늘은 그 얘기다. 최인훈은 25세 되던 해인 1960년 11월 『새벽』에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으로 ‘광장’을 전작 발표한다. 당대의 문학계와 지성계에 충격파를 던진 이 소설은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되는데, 작가의 집중적인 수정 가필에 의하여 원고지 800장 정도의 『광장』이 된다.
그 이후 『광장』은 여러 차례 개작되어 여러 형태의 개정판으로 발간된다. 1967년 신구문화사 간행 ‘현대한국문학전집’에 이 작품을 실으면서 작가는 중요 부분을 교정했고, 1973년 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는 원래 작품의 한자어를 대부분 한글로 바꾸었으며 이 소설의 운명적 메타포가 되는 갈매기 장면도 수정을 가했다. 197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한 최인훈 전집판으로 이 작품을 낼 때는 거의 ‘개작’ 수준의 대대적인 교정을 보았다고 한다. 지난 2010년에도 194쪽 분량 중에서 14쪽가량을 삭제하고 이를 대체하는 부분을 새로 썼다. 그 후 『광장』 출간 55주년을 맞아 한 차례 더 수정작업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그 자체로 그 당대의 지식 풍경에 흡착되어 한 시대의 집단 초상화로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비판적 의견도 있다.
아무튼 최인훈의 이러한 작가적 고집은 작품 개정 이외의 일에서도 엿보인다. 『광장』이 독일에 번역되어 출간될 때의 일이다. 그 번역 출간작업이 7년이나 걸렸다. 이미 독일어로 번역을 다 마친 이후의 7년이다. 제목 때문에 7년이 걸린 것이다.
『광장』은 1995년 대산문화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독일어 번역 출간작업이 추진되었는데 1997년 출간을 앞두고 문제가 발생하였다. 독일의 저작권법 중에 ‘제목 보호’ 규정에 막힌 것이다. ‘제목 보호’란 같은 제목을 가진 저작물이 둘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최인훈의 『광장』을 독일어로 옮기면 ‘데어 플라츠Der Platz’가 되는데 이 제목으로 이미 출간된 책이 있었던 것이다. 실무자들이 최인훈에게 ‘남쪽에는 광장이 없다’ 혹은 ‘Der Platz’라고 쓴 뒤에 괄호를 달고 한글로 ‘광장’이나 로마자로 ‘Kwangjang’을 부기하는 등을 제안하였으나 작가는 거부했다.
최인훈은 이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독일에 그런 법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독일 저작권법이 바뀌어야지 내가 제목을 바꿀 수는 없다. 제목이란 곧 작품의 내용이다. 제목을 바꿔서 출판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말했다. 출간작업은 3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새로운 출판사가 나타나 기존 제목의 책을 펴낸 출판사에 어렵게 양해를 구한 끝에 마침내 2002년, 최인훈의 『광장』, 즉 『데어 플라츠』가 독일에 소개될 수 있었다.
한 번 발표된 작품을, 특정한 작가적 생의 리듬에 따라, 거듭 수정한 최인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인훈의 이 고집스러운 개정작업은 1994년 작 『화두』에서도 반복되는데, 1994년의 민음사 판이 2002년 문이재 출판사 본으로 개정되어 출간되었을 때 작가는 무려 900여 군데를 고쳤다.
최인훈의 평생 ‘화두’는 전쟁이었다. 1950년 12월 고교 1학년 최인훈은 원산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그 무렵 원산에서 미군 폭격기를 피해 방공호로 뛰어가던 기억이 그의 생애와 사유를 지배하는 원체험이다. 『광장』 『구운몽』 『회색인』 『서유기』 『화두』 등 거의 모든 소설에 폭격과 방공호가 반복되어 묘사된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숨고 피난 가는 아비규환의 풍경 말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최인훈은 이렇게 말한다. “평생 그 화두를 놓지 못했다는 것은 평생 머릿속에서 전쟁과 피난을 계속해 온 겁니다. 결국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피난 다니는 것이 아닌가? 위험한 곳에서 안전한 곳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 피난이라는 화두는 저에게 철학적인 이름이 되었어요.”
그 강렬한 원체험 때문인지 『광장』은 1960년 10월 발표된 이후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온 것이다. 1960년 10월 『새벽』에 발표할 때의 서문은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광장』은 4·19혁명의 산물인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여 각 판본들마다 ‘서문’이 새롭게 쓰여졌다. 이 ‘서문’들만 살펴봐도 『광장』에 흡착된 한 시대의 지성사를 엿볼 수 있다.
1989년의 가로쓰기 전집판 수정본에서 최인훈은 “이 작품의 첫 발표로부터는 30년,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날로부터는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겪은 운명의 성격 탓으로 나는 이 주인공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주인공이 살았던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정치적 구조 속에 여전히 필자는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최인훈은 아마도 주인공 이명준이 남지나해에 몸을 던지지 않고 살았더라면 ‘훨씬 낙관적인 전망을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한다. 1989년의 서문이므로 가능한 전망이다. 1976년 유신통치 시절의 일본어판 서문은 다소 어두컴컴하다. 주인공 이명준이 “초목처럼 살기도 싫고, 그렇다고 계산이 다 되지도 않은 데를 잔인하게 잘라버리고 사는 데도 내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썼다. 1973년의 서문에서는 “12년 전에 내가 ‘광장’을 쓴 것도 바로 용사의 기념비였고, 묘비명의 뜻이었다. 그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묘비명에 보탤 것도 깎을 것도 없다. 다만 바람먼지에 얼마쯤 파묻힌 비면(碑面)의 때를 씻어내는 일을 하였다”고 비감하게 썼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광장』의 서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1961년 초판본의 서문이다.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독서의 장에서 수없이 인용된 그 유명한 ‘서문’이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 이 글은 2017년 11월 14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