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소설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었다.
일종의 중독일까. 절묘한 소설적 설정도 재밌지만 적확한 언어가 가슴에 꽂힐 때의 쾌감이 중독을 부른다. ‘그래, 바로 딱 이런 감정, 딱 이런 사람’ 하면서 ‘이 말 참, 이 말 계속 반복해 맛보고 싶다’ 같은 기이한 느낌을 갖게 된다. 특유의 문장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독자인 나에게 마치 텔레파시처럼 완전히 전달되었다는 소통의 착각이 찾아온다. 언어가 의미를 지연시키면서 의미에 도달하려는 간접적인 매체라는 점에서 볼 때 이례적이다. 이 소설집의 쾌감이란 음식이나 술을 먹었을 때의 쾌감에 더 가깝다. ‘이런 맛이지, 그래 이런 느낌’ 하면서 어딘가에 완전히 속해진 것 같은 동질성이 독서의 쾌락을 부르는 것 같다.
권여선의 문장에는 공격성과 방향성이 있다. 모든 단어가 꽉 차게 의미를 내포한 것처럼 읽힌다. 소설은 치밀하게 복선을 깔고 갈등을 향해 각자의 상징이 역할을 하면서 나아간다. 묘사하려는 대상에 딱 맞는 언어를 일대일 짝으로 매칭해주겠다는 철저함으로 세공된 ‘언어 무기’가 어디를 향해 날아가 어디쯤에 박힐지 조마조마하다. 한여름 태양 같은 권여선의 언어 아래 묘사 대상은 곧 타서 벗겨질 피부 같은 아슬아슬한 신세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인공은 “넌 아직 멀었어”라는 말을 듣게 되는 미달의 위치에 있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아직’과 ‘멀었다’가 합쳐져서 탈락을 연상시킨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자조적인 말도 생각난다. 늘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생이란 선 안에 들어갈 자격을 갖지 못한, 거리를 갖고 보는 사람에겐 웃픈 생이다. 그래서 단편 「손톱」에 나오는 “죽기엔 아직 멀었다”라는 말은 이중으로 웃프다.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은 다름이 가져다주는 절망스러운 ‘격차’를 다룬다.
책의 네 번째 수록작 「너머」는 엄마의 요양병원비를 대기 위해 그해의 임용고시도 포기하고 대체교사로 일하게 된 N이 학생식당 증축에 관한 교사들과 무기계약직 사이의 의견 차이를 기간제교사로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점으로 진행된다. 두 달 근무한 뒤 일 년의 연장계약이 있을 거라던 약속과는 다르게 교장은 말을 바꿔서 병가 낸 교사의 이득을 위해 N에게 한 달만 더 근무할 것을 제안하는데, N은 그제야 자신이 자유로운 관찰자가 아니라 생계 때문에 자존감을 지킬 수 없는 일용잡급직의 위치라는 것을 깨닫고 분노한다. 요양병원에서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는 엄마의 시간을 연장해야 할까. N은 추가되는 한 달의 월급이 가져다줄 이득과 수모에 대한 복수로서의 때려치움 사이에서 갈등한다.
‘오래전,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에 어머니는 삶을 놓아버렸고 그 자리에 가끔 웅웅대며 울고 가래 때문에 그르렁거리는, 한쪽은 나무토막처럼 굳고 다른 쪽은 가시처럼 마른, 움직이지도 못하고 갑작스러운 경련만 일으킬 따름인 기저귀를 찬 작고 마른 생물체만 남았다. 어쩌면 그 생물체는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일 수도 있었다. 활기도 자유도 없이 바짝 쪼그라든, 기한이 없는, 무기의 죽음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N의 머릿속에 소름끼치도록 확연하게 떠올랐다.’
― 149쪽, 「너머」, 『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
누군가에겐 아주 적은 돈이거나 하찮은 조건이겠으나, 이 인물들에겐 존재를 다 걸어서도 얻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것이다. 세밀한 계산기를 돌려서 단 한 푼이라도 자기 이득을 순간순간 철저히 챙겨야 하는 이 시대에, 아주 작은 문제들이 인물을 겹겹 포위하는 설정은 주인공이 처한 딜레마를 너무 하찮으면서도 절대 하찮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그 간극 때문에 읽고 있으면 입맛이 쓰다. 웃긴데 가슴이 찢어지고 서글픈 두려움에 빠져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할 사람이 절규를 원하는 심정이 된다.
「너머」의 병가를 낸 교사가 한 학기의 급여를 타기 위한 세밀한 잔머리 굴리기의 일환으로 연가 23일 중 22일을 쓰면서 22일이 근무 기간으로 따지면 한 달이 되니 N에게 한 달 추가 근무를 교장이 요구하게끔 하고 자신은 딱 하루를 근무해서 한 학기를 근무한 걸로 하려고 한다. 「손톱」에서는 엄마와 언니에게 8년 간격으로 버림받은 스물한 살 소희가 엄마와 언니가 가지고 튄 방 보증금과 대출 빚과 이자를 짊어지고 살면서 170만원의 월급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서 미래의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계획의 허점을 보완하고 절망하는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상대적 측면에서 본다면 주인공들에겐 잘난 사람들이야말로 ‘아직 멀었다’. 모든 생명은 생존을 건 투쟁을 하며 살아가는데도 선 안으로 진입한 사람들만이 최선을 다하는 자로 홍보된다. 결과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하지 못한 자들의 삶의 과정 따윈 살펴볼 시간이 없는 투쟁적 현실에서 소설 속 ‘아직 먼’ 인물들은 너희야말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알려면 아직 멀었거든, 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이 소설에 등장한 것 같다.
이 소설집은 쓰라린 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장르가 문학이라는 것을 새삼 환기한다. 작가는 ‘못 견디게 쓰라린 마음’ 콘테스트에서 1등을 먹어야 한다면 누가, 언제, 어때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소설집을 읽으니 사랑할 때만이 아니라 너무 괴로운 감정을 느낄 때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걸 깨닫는다. 쾌감의 문장이 가 닿는 과녁은 조마조마한 불행의 장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