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트의 이 소설은 독일의 파시즘이 유럽 전역에 새겨놓은 파괴와 상처의 흔적들을 유대인 어린이 호송 작전 생존자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유대인 문제를 전후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게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리모 레비가 전한 바 있듯이,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 수용소나 포로수용소 등지에서 생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처참한 상황을 증언록의 형태로 출판하거나 이를 공론화하고자 했지만 폐허가 되어버린 삶의 공간을 마주해야 했던 대다수 사람들은 트라우마와도 같은 현실을 대면하기보다 단절과 망각 위에 건설되는 순백의 미래를 원했다. 이러한 집단적 망각과 도피의 욕망으로 인해 독일에서는 나치당원이었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가 1966년에 연방총리로 선출되었고 곧바로 1967년에는 히틀러의 수권법을 연상시키는 긴급사태 법들이 통과되었다. 야스퍼스의 스위스 이주와 제발트의 영국 이주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실망과 거부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제발트는 오늘날 독일의 놀라운 경제적 부흥이 나치 시절 주입된 독일인의 위대함과 민족의 부흥을 위해 훈육된 전체주의적 관리체제와 노동체제를 다시금 이어받았기 때문이며 과거를 완벽히 억압하고자 했던 심리적 메커니즘에 기반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점 때문에 과거에 대한 본격적인 반성과 사회적 치유, 이를 통한 성찰적 미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반세기를 기다린 후인 1990년대가 되어야 했다. 당시는 정치적으로 냉전이 종식되었고, 독일이 통일되었으며, 제국주의의 잔재로 남아있던 식민지 국가들이 해방을 맞게 된다. 사상적으로는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오리엔탈리즘 등과 같은 이론들이 터져 나왔고, 이에 발맞추어 배제와 억압으로 구축된 국가주도의 공식적인 역사를 개별적이고 미시적이며 문화적인 방식으로 다시 쓰고자 하는 학문적인 실천들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이해지평의 변화 속에서 제도화된 ‘기념’에 대한 도전으로 과거 전쟁 피해자들의 증언이 다시금 주목을 받으면서 20세기 후반에는 이른바 ‘증언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제발트는 자신이 항상 “소수자들에 대한 박해와 비방의 역사에 대해, 한 민족을 절멸시키고자 했던, 거의 성공할 뻔 했던 그 시도에 대해 글을 써야한다는 필요를 느껴왔다”2고 말하면서, 전후 세대는 이러한 생존자의 증언을 기억의 책임으로 이어받아야 하며 문학이라는 장르는 국가의 집단적 기억을 보존해야 할 임무를 지닌다고 보았다. 『아우스터리츠』는 이러한 제발트의 문학적인 책임 수행으로, 총력전이라 불리는 제3제국의 전쟁과 폭력이 한 개인의 삶과 그의 가족들의 운명에 가했던 파괴와 상처를 조명하고자 했다.3 그러나 전쟁 가해국인 독일인으로서, 자신의 삶이 접근할 수 없는 타인의 삶, 그것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룬다는 것은 의무나 책임이라는 도덕적 당위성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학이라는 장르는 또한 역사와 달리 허구라는 기술을 사용하기에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타자의 체험을 손쉽게 정형화하려 들거나 어리석은 영웅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음란증적인 시선으로 폭력의 잔인성을 탐닉하기도 한다. 제발트는 60년대와 70년대에 독일에서 발표된 작품들 중 상당수가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것들이라고 평가하면서 자신이 쓰고자 하는 작품 역시 지극히 위험한 어려움을 안고 있으며, 자신의 관점에서 수용소에 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아주 잘 의식하고 있다고 말한다.4
2 Lynne Sharon Schwartz ed., The Emergence of Memory: Conversation with W. G. Sebald, Seven Stories Press, 2007, pp.77-78.3 유대인구호단체의 청원으로 시작된 이 호송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9개월 간 진행되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등지에서 10,000명 가량의 어린이들이 기차와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왔다. 호송 작전으로 구출된 어린이들은 영국 가정에 입양되거나 위탁가정, 고아원, 학교, 농장 등지로 보내졌으며, 전쟁이 끝난 후 부모와 재결합한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부모들 상당수가 도피 중 실종되거나 수용소에 끌려가 사망했기 때문으로 구출된 어린이가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경우도 상당수에 달했다. 영국으로 이송된 덕분에 목숨을 구한 이들의 삶 역시 그러나 순탄치 않았는데,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진 충격과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이 성장과정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4 Lynne Sharon Schwartz ed., p.112.
『아우스터리츠』는 독일인으로서의 역사적 책임을 문학작품이 수행해야 하는 불가능한 시련과 결합시키기 위한 제발트의 고민이 집약된 작품으로 유대인 절멸과 관련해 의례적 수사처럼 등장하는 폭력이나 전쟁을 사건화하거나 미학화하기를 철저하게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어둠을 꿰뚫어 보는 녹투라마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들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말 ─ 편집자 주의 야행성 동물들이 지닌 감각과 사고로 모든 공간들에 잠들어 있는 파괴의 시간들과 그 안에 멈춰진 침묵의 말건넴을 열어내고자 한다. 벤야민의 성찰처럼 현 시대의 관심거리로 인식되지 않는 과거의 이미지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섬광처럼 번쩍이는 어떤 기억을 움켜잡아야 한다. 아우스터리츠에게 이러한 기억은 낯의 이성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의 시간을 거부하고 망각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영혼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과거의 파편들을 뒤쫓는 순례 행위로 나타난다.
“시간의 강변이란 무엇일까요? 유동적이고 상당히 무겁고 투명한 물의 특성에 상응하는 시간의 특성이란 무엇인가요? 시간 속으로 잠기는 사물들은 시간에 의해 한 번도 건드려지지 않은 다른 사물들과 어떤 차이가 날까요? (…) 시계가 내게는 항상 우스꽝스러운 것처럼, 근본적으로 뭔가 기만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마도 내가 스스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충동에서 시간의 권위에 항상 저항하고, 오늘날 생각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지 않고, 흘러가지 않아서 내가 그 뒤로 돌아갈 수 있다면, 거기서 모든 것이 과거처럼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좀 더 정확히 말해 모든 시간의 순간들이 동시에 나란히 존재하거나 혹은 역사가 이야기하는 것 중 그 어느 것도 옳지 않았다면, 일어난 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순간에 비로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른바 시대적 사건에서 나를 배제시켜왔기 때문일 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비참함과 결코 끝나지 않은 고통의 절망적인 미래를 열어 주기 때문이에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113~115쪽)
시간의 흐름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아우스터리츠의 순례는 그래서 정거장에서 요새로, 요새에서 감옥으로, 그리고 정신병원과 요양병원으로, 도서관으로, 다시 정거장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순환의 한가운데에는 그가 입장하고 싶어 하지만 결코 그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 과거 한 시점의 유대인 집단수용소가 있다. 제발트는 자신이 이 고행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전지적인 서술자로 상황을 주도하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건을 구성하지도 않고 주관적인 이해나 입장, 위로나 공감조차 개입시키지 않는다. 제발트의 화자는 그저 상처 입은 영혼을 향해서 열려있는 녹투라마의 눈처럼 아우스터리츠의 곁을 지킬 뿐이며, 애가elegy의 리듬을 타고 휴식 없고 평화 없는 아우스터리츠의 비탄을 받아 적을 뿐이다. 문학은 아우스터리츠가 들어가고자 하는 저 과거의 시간 속으로 함께 입장할 수 없다. 그 대신 제발트는 자기연민과 에고의 친근함을 문장 속에서 최대한 비워내고 그의 침묵과 그의 고통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아우스터리츠라는 한 영혼의 세계에 다가가는 열쇠를 허락받는다. 문학의 본성 중 하나가 타자를 맞아들이는 것이라면 이제 비로소 여기서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환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