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는 젊은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의 신념이기도 했다. 푸리에주의*로 대변되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는 반동정치와 불합리한 사회구조의 억압 속에서 신음하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서구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서적을 탐독하며, 인간이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깨닫기만 한다면,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폭력과 욕심, 악덕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이기주의’의 믿음에 열광했다. 계몽과 교육을 통해 함께 사는 삶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면, 사회경제구조의 치명적인 모순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고, 빈부의 격차, 신분의 억압이 없는 유토피아적 이상 사회를 세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이들을 사로잡았다.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바로 이 ‘합리적 이기주의’론에 입각한 유토피아 사회건설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도전하는 책이다. 이 작품은 당대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레닌을 비롯한 수많은 후대의 현장 사회주의 혁명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청년 도스토예프스키도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 출입하며 동시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비전에 짧게나마 매혹되었다. 하지만 이 짧은 매혹의 대가는 혹독했다.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불온한’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을 언도받았다 사면되었고, 이후 4년을 옴스크의 감옥에서, 이어지는 4년을 시베리아에서 사병으로 복무하며 보내게 된다. 그리고 30대의 거의 전부를 삼킨 이 8년의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믿었던 그 어떤 이론이나 공식으로도 설명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카오스와 악, 부조리를 목도한다. 그는 선과 악이 인간 안에 얼마나 무질서하고 혼돈스럽게 공존하는지, 인간의 욕망이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지, 상황에 따라 약자에서 폭군으로 순식간에 탈바꿈하는 인간 본성의 폭력성과 비굴함은 얼마나 측량 불가능한 것인지, 종횡무진 얼굴을 바꾸는 인간 내면의 그 종잡을 수 없는 욕망의 흐름을 논리로 설명하려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시도인지를 깨닫게 된다.
앞서 인용한 지하생활자의 냉소는 정확히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득 채운 ‘합리적 이기주의’, 유토피아 사회건설의 비전에 대한 냉소이다. 다 떨어진 가운을 입고 만성 치통에 시달리는 그가 완전하고 단단한 세상, 유토피아의 이상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혀를 내민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유토피아 세상은 때로는 ‘2x2=4’의 세상으로, 때로는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무쇠와 수정으로 만들어진 ‘수정궁’의 세상으로(주지하다시피 이는 1851년 런던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 때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수정궁이라는 건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때로는 어떠한 틈과 자유도 허락하지 않는 막강한 ‘돌벽’의 세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이상적인 세상은 자유의지도, 내면의 모순과 역설도, 그리고 고통마저도 허용하지 않기에 ‘나’는 완전히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그 세상을 거부한다. 그는 “여러분은 왜 그렇게 확고하게,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오직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것 하나만이, 한마디로 말해서 오직 안락 하나만이 인간에게 이롭다고 확신하는가?”(57쪽)라고 묻는다.
내가 옹호하는 것은…… 나 자신의 변덕이요, 또한 필요할 때마다 내가 마음껏 변덕을 부리는 것이 보장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고통은 예컨대 보드빌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점을 나는 알고 있다. 수정궁에서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무릇 고통은 의심이요 부정인데, 의심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게 무슨 수정궁인가? 그래도 나는 인간이 이따금씩은 진짜 고통, 즉 파괴와 혼돈을 거부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고통이야말로 실상 의식의 유일한 원인이니까. 처음에는 의식이란 것이 내 생각으론 인간에게 있어 크나큰 불행이라고 말했지만, 인간이 그것을 사랑하여 그 어떤 만족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의식은 예컨대 2x2보다는 무한히 더 높은 것이다. 2x2 이후엔 할 일이 전혀 없어질 뿐 아니라 알아내야할 것도 전혀 없어질 것이다. (…) 여러분은 영원토록 허물어지지 않는 수정건물을, 즉 몰래 혀를 내밀 수도, 호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을 겹쳐 엿 먹으라는 시늉을 해 줄 수도 없는 건물의 존재를 믿고 있다. 글쎄, 내가 이 건물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수정으로 되어 있어서 영원토록 허물어지지 않기 때문, 그놈한테는 혀를 몰래 내밀 수도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58쪽)
그는 끊임없이 수정궁의 완벽함, 혹은 인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완벽함을 가장하는 수정궁의 허상을 거부한다. 결국 “2x2=4는 삶이 아니라 죽음의 시작”(56쪽)이기에, 그는 비가 내린다면, 궁전이 아닌 닭장에서 비를 피하겠노라고, 그리고 그 닭장이 비를 가려준다 해도 그 때문에 그곳을 수정궁으로 떠받들지는 않겠노라고, “나에게는 지하실이 있다”(61쪽)고 외친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궁전 대신 닭장이 있고, 마침 비가 온다면 나도 비에 젖지 않으려고 닭장으로 기어들어갈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비를 피하게 해 주었다는 고마움 때문에 닭장을 수정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59쪽)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살 곳은 궁전 대신 닭장, 수정궁 대신 지하실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구원, 변화, 더 나은 삶이란 불가능한 이상인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세상에는 더 나은 삶, 구원을 향한 갈망의 자리는 없는 것인가?
이 작품에 비록 불발된 것이라 하더라도 구원과 변화를 향해 타오른 작은 불꽃이 있다면, 그것은 창녀 리자와의 사건일 것이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모임에 억지로 끼어들어 온갖 모욕과 경멸을 받고 발작적인 광기를 부리다가 창녀촌으로까지 흘러들어 리자를 만나게 된 ‘나’는 갑자기 그녀를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에 들떠 그녀를 계도하려 한다. 그러다가 “당신은… 당신은 꼭 책을 따라 하는 것 같아요.”(153쪽)라는 그녀의 악의 없는 지적에 분노를 느끼지만, 동시에 그녀의 영혼을 건드리고 싶은 설명할 수 없는 갈망에 자기도 알 수 없는 말을 끝없이 지껄이고, 결국 그녀는 ‘나’의 말에 마음을 움직이며 새로운 삶을 꿈꾸기 시작한다. ‘나’를 만나러 집까지 찾아온 그녀 앞에서 자신의 불행한 영혼을 열어 보이는 듯했던 ‘나’는 결국 그녀와 성관계를 갖고 돈을 지불하여 그녀를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더 깊은 나락 속으로 떨어진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등장하는 키르사노프와 창녀 크류코바의 이상적 사랑이야기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한 리자와의 사건은 이 병적인 인간과 불쌍한 한 여인의 구원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철저하게 무너지는지를, 리자가 떠안은 현실의 무게와 지하생활자의 내면에 자리한 ‘지하실’의 장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실제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비극적인 에피소드이다.
주지하다시피 도스토예프스키는 복음서의 예수를 만나는 것, 이성과 논리 중심의 서구주의를 떠나 슬라브적 뿌리로 돌아가는 것에서 유일한 구원의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그러한 구원의 가능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1864년 3월, 형에게 쓴 편지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검열에 대한 불만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마지막 바로 전 장이 지금 출판된 것처럼, 즉 문장들이 서로 모순되고, 함부로 팽개쳐져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출판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돼지 같은 검열관들은 일부러 내가 모든 것을 조롱하고 불경스럽게 묘사했던 부분들은 통과시켰고, 이 모든 것에서 믿음과 예수에 대한 필요성을 도출했던 부분들은 금지했습니다. 정녕 이 검열관들은 누구란 말입니까!
또 작품을 쓴 지 10여 년이 지난 1874년에는 다시 이 작품을 쓰게 된다면 훨씬 밝게, 더 타협적인 성향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아무도 끝까지 가보려 하지 않았던 인간 내면의 지하실 끝까지 도달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검열관이 구원의 비전을 담은 부분들을 삭제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후일 삭제된 부분을 복구하거나 수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또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현실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작품으로 그저 독자를 지하실의 지독한 악취 속에 가둘 뿐이라는 비난을 받았을 때 수첩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나는 내가 러시아의 다수를 대표하는 진짜 인간을 묘사한 첫 번째 사람이라는 데에, 그리고 이 인간의 추악하고 비극적인 측면을 처음으로 드러낸 사람이라는 데에 긍지를 느낀다. 비극은 추악함을 의식하는 데에 있다…… 고통, 자기 처벌, 더 나은 것을 의식하지만 그것을 성취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로 하여금 자유의지의 문제를 가장 극단적이고 병적인 방식으로 논하게 하고 그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통찰한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 그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리고 그 자신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지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까지 이르며 악의 고통 속에서 점점 더 신에게로, 예수에게로, 그리고 슬라브적인 뿌리로, 새로운 구원을 향하여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