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에서 1984년은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위대한 문학자의 출생과 죽음, 혹은 문학 작품의 탄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들에게 있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지나지 않는 1984년은 세계문학에서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혹은 도래해서는 안 될 미래의 대명사로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지하듯이 1949년 조지 오웰이 발표한 『1984』로부터 시작되었다. 전운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유럽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조지 오웰은, 숨을 거두기 일 년 전 자신이 떠나가게 될 이 지구의 미래를 바라보며, 이를 ‘1984’라는 숫자에 각인시킨 것이었다. 조지 오웰의 눈에 비친 1984년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그 세계 속의 인간들은 빅브라더라는 존재에 의해 가장 내밀한 영역까지 감시당하는 존재로 축소되어 있었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은 사실 그가 살았던 시대를 조금만 살펴본다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공들여 만들어왔던 정치제도와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대량학살로 이어지게 된 1,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은, 이제부터의 인류 역사가 19세기 유럽인들이 꿈꿔왔듯이 그렇게 장밋빛 미래는 아닐 것임을 뼛속 깊숙이 각인시켰으니까. 그러니까 유럽 문명이 개발해왔던 관료제와 테크놀로지의 진화는 단순히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행복’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소거시키고 말지도 모른다고.
2016년 실제로 조지 오웰의 예언은 상당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미래에 아시아가 부재하고 있다는 점은 지적해둘 필요가 있겠다. 즉 당시 그의 세계관 속에 아시아가 유럽을 위협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동안에 아시아의 미래는 더할 나위 없이 불투명했다. 특히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도 2개의 원자폭탄을 맞고 마침내 패전해, 미국에 의해서 점령이 된 일본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따라서 그런 일본이 1980년대 초반 세계의 ‘유토피아’로서 인식될 줄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른바 『Japan as No. 1』이라는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 시사하듯 1980년의 일본은 ‘경제’로서 세계를 제패했다. 도요타와 소니로 대표되는 일제 상품들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며 세계자본을 일본으로 집중시켰고, 이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거의 강제로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를 격상시키기 전까지는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1984년의 일본이라는 국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20세기의 서구적 역사관을 대표하는 『1984』의 한계를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살아있는 지구의 유토피아로서 이미지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본의 이미지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80년 후반 일본의 자산가치가 정점을 찍은 이후,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해 90년대부터는 만성적인 불황에 빠지게 되었다. 인구는 노령화되었고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점점 높아졌으며, 주변국들의 경제성장은 곧 자국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이대로 가면 일본의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출간된 것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이다. 그러니까 이 책이 출간된 2009년의 관점에서 봤을 때, 버블의 정점을 향해 줄기차게 내달리고 있었던 1984년의 일본은 그야말로 그들이 상실한 유토피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09년의 하루키가 1984년의 일본에 대해서 쓴 것은 다른 일본인들처럼 하루키 역시 ‘강했던 일본’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하루키 독자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의 과거로의 시선은 그리 특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로 대표되듯이 하루키의 작품은 이전부터 ‘상실된 것’에 주목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한 하루키는, 일견 일본에 도래하는 이른바 후기자본주의사회를 긍정한 작가로 비춰지곤 한다. 재즈와 자동차, 온갖 종류의 의류 메이커, 심지어 스포츠 활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일본이 생산하는 나라에서 소비하는 나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키가 무조건적으로 동시대의 ‘소비문화’를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양을 둘러싼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 등에서 하루키는, ‘돌고래 호텔’이 ‘돌핀스 호텔’로 변해가는 이른바 세계화 속에서 자신의 친구 ‘쥐’ 역시,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상실된 ‘양남’으로 변해갔음을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이미 도래하고 있는 후기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이 버블의 정점에 도달한 1987년, 하루키는 아직 자본주의가 뼛속까지 스며들지 못했던 1960년대 후반의 일본을 회고하는 『노르웨이의 숲』을 써서 일약 스타 작가가 된다. 자본이 사방으로 흘러넘쳐 그 낙수효과만으로도 얼마든지 도처에 널린 쾌락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1980년대, 하루키는 갑자기 시계추를 폭력적인 학생시위로 인해 학교가 폐쇄되었던 1960년대 일본의 대학가로 돌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불감증에 빠진 나오코라는 여성과 그녀와 관계를 맺지 못해 안절부절못한 젊은이와의 사랑 얘기를 쓴 것이다.
물론 이미 지나가 버린 젊은 시절을 아름답게 회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르웨이의 숲』을 유토피아 소설로 분류할 수는 없다. 과거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끼며 이에 정념을 불어넣는 것은, 실은 노화할 운명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늘 해오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문학 텍스트가 아직 도래하지 않는 미래를,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로 적극적으로 의미화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습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노르웨이의 숲』에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지금 여기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특권적으로 미화될 뿐인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의 일본에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시공을 집요하게 탐색하며 ‘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하루키가 유토피아라는 장르에 매우 친화적임을 노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80년대부터 하루키는 동시대 일본의 문화적 변동을 따라가기보다는 ‘지금 여기에 없는’ 것들을 집요하게 탐색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은 1980년대부터 일본의 문화계는 냉전기 서방세계의 보편적인 문화 형태로서의 팝과 재즈에서 일본가요로, 세계문학보다는 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서브컬처와 게임으로 가파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더 이상 비틀즈에 열광하지 않게 된 일본을 전경화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90년대 초반 한국에서 하루키의 소설이 매우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인식된 것은 동시대 일본의 문화적 변동이 한국에 실시간으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일 뿐, 실은 일본에서 하루키의 매력이란 이미 한물간 ‘문학’과 ‘올드 팝’을 마치 반짝거리는 신세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하루키의 눈에 80년대 이후의 일본이, 일본에 대한 전 세계의 호의적인 평가와는 반대로, 좋았던 그 무엇인가, 특히 ‘보편적인 감수성’을 상실해가고 있었던 것처럼 비춰졌던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 하루키는 자신에게 있어서는 “일본은 유토피아가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의 삶의 의미를 복원하고자 하는 경향은 실은 하루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된, 명실상부한 제국으로서 각광받기 시작하는 시기 이래로, 나쓰메 소세키나 모리 오가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같은 일본의 문학자들은 ‘근대’라는 시공 속에서 무엇인가 상실되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근대가 가져다주는 것보다는 상실되는 것이 더욱 크게 보였던 그들에게, 미래는 앞당겨야 할 유토피아보다는 결코 오지 말아야 할 디스토피아로 보였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근대가 가져다주는 기술적, 문명적 진화가 파국적인 종말에 대한 불온한 이미지로 그려지면 그려질수록 지나간 과거가 ‘옛날 좋았을 때’로서 이상화되고 만다는 점이다.
지나간 과거를 이상화하는 일본 특유의 분위기는, 일본의 근대화가 ‘혁명’이 아니라 ‘유신’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정치적 권력을 상실하고 조용히 재야에 묻혀 있던 천황을 호출함으로써 막을 연 일본의 근대화는, 그것이 잘 진행되면 될수록 정신사적 시간은 과거로 흘러가는 역설적인 구조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실제로 근대천황제의 뒤틀린 시간적 구조는 근대문학사에서도 확인된다. 서구의 문예사조를 착실하게 이식해오던 근대문학의 흐름은,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문학진영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근간이 되는 고전을 찾아 재해석하는 문예부흥 운동으로 급전환하고 말았던 것이다.
요컨대 일본의 근대문학은 시간의 경과 속에서 서구의 문학작품 속에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에 강하게 매혹되면서도, 동시에 그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시간성, 즉 ‘미래를 직시는 자세’를 근본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결국 일본문학이 유토피아를, 다가올 미래에서가 아니라 이미 상실된 ‘과거’에서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그들이 ‘근대’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루키 역시 현재와 미래보다는 과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탐닉하는 과거가 ‘근대’의 외부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앞서 언급한 일본인 작가들과는 일선을 긋는다. 즉 그는 서구라는 근대적 가치체계에 의해서 상실한 일본 특유의 그 어떤 것을 찾기 위해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일본이 여전히 보편적인 가치와 이어지고 있었던 끈을 찾기 위해서 과거로 간다. 하루키가 1984년을 호명한 것은 이 해가 바로 세계문학의 걸작인 『1984』라는 보편성과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