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1516를 출판한 지 500년이 되는 해다. 이 책의 출간과 함께 ‘지상에 없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유토피아’라는 말이 근대 사유체계에 도입되었다. 모어가 『유토피아』를 쓴 때는 중세에서 근대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백년전쟁의 후유증으로 민중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이런 와중에 지주들은 양모산업으로 돈을 벌기 위해 농토를 목축지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클로저’라 불리는 원시자본 축적이 일어나는 동안 농민들은 농토에서 쫓겨나 부랑자로 떠돌다 도둑으로 전락했다. 낡은 질서는 무너지고 있었지만 새로운 질서는 도래하지 않던 역사적 과도기에 토머스 모어는 가상의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현존질서를 넘어서고자 했다.
『유토피아』 출간 5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은 모어가 살던 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처해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현존 세계는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과 공동체 파괴, 사회불안과 생존공포를 경험하고 있다. 대안세계의 전망은 흐리고 희망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의 삶은 어느 시대보다 불안하다. 유토피아의 희망은 디스토피아의 공포에 자리를 넘겨준 듯 보인다. 하지만 칼 만하임이 지적하듯이, “유토피아의 포기와 더불어 우리는 역사를 창조하려는 의지를 잃게 될 것이며, 그와 함께 역사를 이해하는 능력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은 ‘주어진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개방함으로써 현실을 ‘재사유’하고 ‘재배치’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재사유와 재배치의 효용성을 부인할 수 없다면, 유토피아 상상은 시급히 복구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유토피아 상상은 미래에 대한 화려한 청사진으로 나타난다기보다는 디스토피아의 외피 속에 은폐된 형태로 표현된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완전한 대립물이라기보다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작용한다. 이 연재는 유토피아/디스토피아 문학 읽기를 통해 소멸의 위기에 내몰린 유토피아 상상을 복원하고 대안세계에 대한 전망을 열어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