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1학기 서울대학교 차익종 교수의 글쓰기 강의에서는 색다른 형식의 글쓰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저자를 직접 만나 책에 관해 묻고, 인터뷰 형식을 빌어 서평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인터뷰 서평'인데요. 책과 저자, 그리고 학생들의 생각까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되도록 편집 양식을 그대로 살려 게재했습니다. (편집자 주)
학생 소개
명병석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지금 보내는 한 시간, 하루, 일주일이 모여 곧 나의 인생이 된다.’는 진리를 믿고 매순간 최선을 다 해서 살고자 노력하는 학생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열심히 살다가도 때로 삶의 목적과 방향을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고 현명하게 사는 것인지 배우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심리학에도 관심을 갖고 이 책 저 책 읽어보곤 한다. 슬슬 학교를 떠나 밥벌이를 하고 배우자를 만날 생각을 하니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지만 「독립연습」을 읽으면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게 깨달았다.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 곧 정답이다!
여인혁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4학년)
나 자신과 내 주변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인문대 4학년생이다.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이것저것 저울질해가며 고민하기도 하지만 삶의 매순간을 즐기면서 살고자 한다.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다보니 내 속을 들여다보는 일도 잦다. 하루 빨리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최종 꿈이다.
김민경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하고자 하는 민경이. 놀기와 공부를 동시에 사랑한다. 화끈하게 놀고도 싶고 꾸준하게 공부도하고 싶은 민경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현대여성답게 당당한 독신으로 살고도 싶고 포근한 가정에서 현명한 엄마, 지혜로운 아내가 되고도 싶은 민경이는 여전히 고민한다. 삶의 갈피를 못 잡던 민경이가 우연히 독립연습을 만났다. 스물 넷, 스스로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독립연습을 시작한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서기에 성공할 그날을 기약하며!
이혜인 (서울대학교 가족아동학과 2학년)
가족, 친구, 전공까지 모든 것이 맘에 들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기에, '왜 나는 남들처럼 고민을 하지 않을까?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고민도 들기 마련. 그러던 중「독립연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스물 한 살의, 비교적 어린 학생이지만 같은 조인 오빠, 언니들의 진지한 자기 성찰과 고민들에 감탄하고 또 공감하게 되면서 자신의 생활 역시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독립연습」의 저자, 황상민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또 그것에 대해 불안함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쓸 데 없는 일인지를 깨달았다.
Prologue
2012년 5월 11일 저녁 무렵, 우리는 ‘황크라테스’라고 불리는 황상민 교수(『독립연습』의 저자)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서울 신촌에 있는 한 주택가로 향했다. 인터뷰는 그의 개인 연구소 ‘위즈덤센터’ 근처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진행하였다, 그날 밤 Y대 축제현장의 불꽃이 봄밤의 인터뷰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황상민 교수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그리고 책은 읽을 만하셨나요?
전체
많은 생각을 했어요.
명변석
그 많은 생각을 하나씩 풀어가는 게 오늘의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해요.
황상민 교수
그렇죠. 맞아요.
여인혁
저는 책이 참 재밌었어요. 사연들 중에 공감되는 것도 많았고, ‘아. 이 문제를 이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구나’ 싶은 이야기들도 많았거든요. 저희가 할 만한 고민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할까.
김민경
특히, 저는 연애나 결혼 부분에 공감이 굉장히 많이 가더라고요.
황상민 교수
그래요? 어떤 부분에 공감이 갔나요? 뭐든지 이야기하세요.
독립? 독립!
독립이란?
명변석
우선, 독립연습이라는 책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책을 보고 가장 먼저 주목한 점이 바로 이 책의 제목, ‘독립연습’이었거든요. 독립연습이란 게 과연 어떤 의미일지, 그게 정말 궁금했어요.
황상민 교수
제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존재를 내세우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해요. 항상 누구의 아들이나 어느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틀로 자기를 설명하고는 하죠. 하지만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자기 스스로를 느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실 상담 역시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담자가 자기가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은 태어나서 독립하기에 어떤 생명체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요. 태어나자마자 몇 시간 후면 뛰어다니기도 하는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거죠. 그리고 이건 인간은 독립하는데 있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런 부분에서 부단히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의미해요. 하지만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독립을 하라고 하면 쉽지만은 않겠죠. 그래서 전 상담 과정 자체가 한 개인이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방식을 연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목이 독립연습이 된 겁니다.
여인혁
그렇다면 독립이라는 건 자기 스스로 서는 것 자체를 의미하는 건가요?
황상민 교수
인간이 스스로 선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예전에 한 학생이 저에게 질문을 했어요. 자신의 나이가 어느덧 서른인데, 아직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독립을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독립이라곤 해 본 적도 없는데 단순히 흥미를 따라서 로스쿨에 진학해도 되겠냐는 거예요. 하지만 정작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풍족하실 뿐 아니라 여러모로 그 학생이 굳이 독립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딱 잘라서 학비를 대줄 수 없다고 한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제가 그 학생에게, ‘재정적으로 독립을 한다는 건 당위에 불과한 거지, 당신은 당신 스스로의 상황에서의 독립을 잘못 이해한 거다. 굳이 부모님이 당신을 도와주실 만한 상황인데다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뒤늦게 열심히 공부해서 소위 스카이 대학교를 들어간 당신인데, 부모님이 뭔들 못해주겠냐.’하고 말을 했어요. 그 학생은 자기한테 맞는 독립이란 걸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누구나 생각하는 독립을 쫓으려고 한 거죠. 자기 삶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또 그 길을 찾아가는 게 독립이지, 무작정 ‘대한독립만세’하면서 독립을 주장하면 독립될 거라고 믿는, 그런 무모한 건 아니거든요. 자, 삼일 운동 뒤에 독립이 과연 됐었나요? 안 됐어요. 내가 나중에 이상한 소리 들을지 모르지만, 나는 진정으로 독립하기를 원했던 거라면 그런 무모한 방식으로 독립을 주장한 건 잘못됐다고 봐요.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독립을 했다고 치더라도,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본이 물러가도 왕조가 무너졌는데 누가 조선을 다스리나요? 결국 조선은 또 다른 혼란을 겪으면서 명목상의 독립을 하게 됐을 거예요. 이것과 비슷한 일로 뭐가 있냐하면,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오늘부로 모든 흑인 노예들은 자유를 가진다.’ 라고 이야기했다고 해서 흑인 노예들이 모두 농장에서 뛰쳐나와서 환호했을까요?
여인혁
자기 스스로 독립을 해야겠단 생각을 우선해야 할 것 같은데요.
황상민 교수
그렇죠. 근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노예 해방 당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 흑인 노예들 중에서 링컨 대통령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보다는 갑자기 주인을 붙들고 계속해서 일하게 해달라고 비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대부분의 노예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여전히 옛날 주인집에서 여전히 하인으로 남기를 선택한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독립이라는 건 선언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거기에 대한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거예요. 특히 여러분의 지금, 20대 시절은 사실은 독립을 연습하는 시기에요. 사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지방에서 대학교 진학을 위해 자취를 하는 학생들도 어떻게 보면 통학하는 친구들에 비해선 독립이 빨리 될 수도 있겠죠. 부모로부터의 독립이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30-40대가 돼서도, 혹은 결혼을 했으면서도 여전히 독립을 안 한 상태로 심리적으로 부모와 기생 관계나 공생 관계가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물론 누군가 저에게, ‘독립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더 좋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니오.’라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저는 궁극적인 선이 독립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독립을 안 할 수 있으면 그건 최고로 복 받은 거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왕 독립을 할 필요가 있다면, 비교적 젊고 에너지가 많을 때와 나이 들어서 독립을 하고자 할 때, 누가 더 자기 삶을 잘 꾸려나갈 가능성이 높을까요?
명변석
전자가 아무래도 더 높을 것 같은데요.
황상민 교수
네. 맞아요. 방금 말한 것처럼, 저는 부모와 자녀의 독립을 예로 들자면, 그 관계를 일종의 기생관계나 공생관계라 이야기해요. 그런데 기생관계에서는, 숙주가 죽으면 본인도 죽고, 공생관계에서는 한쪽이 죽으면 나머지 한쪽이 계속 살고 싶은데도 죽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기생이든 공생이든 간에 나의 운명이 나로 인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 여기에서는 부모에 의해 결정된다는 거죠. 그래도 나는 어떤 사람이 평생 독립을 안 하고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조용훈 씨라고 혹시 들어본 적 있나요? 사주명리학과 관련된 칼럼을 쓰는 분인데, 그 분께서는 가장 팔자가 좋은 사람은 ‘풍족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지적 장애아’라고 해요. 평생 부모가 그 아이를 헌신적으로 돌볼 테고, 어차피 아이는 독립을 할 여건조차 되지 않으니 독립을 하기 위한 고통이나 노력을 느낄 일도 없을 테니까요.
김민경
하지만 부모가 죽고 나면요?
황상민 교수
그게 문제죠.
김민경
죽기 전까지는 괜찮단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어차피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겠네요.
황상민 교수
그런데 또,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독립을 하라고 요구하는 건 참 힘든 일이기도 하잖아요. 물론 지금 제가 말한 예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요.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이 독립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 했어요. 누구나 독립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이 궁극적인 최고의 선이라는 말도 아니에요.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왕 독립을 해야 한다면 보다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낫다는 거죠.
존재가치와 독립
명변석
선생님, 저도 궁금한 점이 있어요. 자기 생명의 존재 가치를 안다는 건 어떤 건가요? 저는 굳이 유명하거나 뛰어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기 생명 자체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는데요. 전 사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을 했지만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황상민 교수
어렵다고 느낀 게 아니라 공감을 하면서도 너무 뻔하고 당연하게 느끼신 건 아닐까요?
명변석
전 사실 반대로 생각했어요. 뭔가 잘 해서 사회에 기여를 한다든지,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 존재 가치가 느껴지고 더 잘 살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활동 범위가 좁아지고.
황상민 교수
상당히 성취지향적인 사람이군요. 그 생각도 맞아요. 그런데 성취지향적인 부분에서 의미를 느끼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성취가 주는 의미가 중요하고 성취를 하면서 사는 게 즐겁다면 그럼 그 사람에겐 그런 생각이 맞는 거죠. 그렇지만 성취지향적인 삶은 결코 많은 사람들과 세력을 형성할 수가 없어요. 너희들 중에서 힘들고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은 내게로 오라, 이런 종교적인 말은 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존재의 이유를 줍니다. 성취지향적인 삶과 종교적인 삶은 각각 다른 것이고, 어느 쪽이 맞는지는 각자가 알아서 결정하는 거죠. 저도 성취지향적인 사람입니다. 누군가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면? 누군가 내가 기후변화를 걱정한다면 저는 'Stop CO2' 들어봤냐고 물어볼 겁니다. 기후변화가 온실가스 때문이라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는 운동인데, 사실 인류가 이산화탄소를 줄이려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요?
전체
숨 쉬지 않는 거요!
황상민 교수
맞아요. 그럴 때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게 중요하나요, 사는 게 중요하나요?
전체
사는 게 더 중요하죠.
황상민 교수
그렇죠. 코미디 같지 않나요?
(계속)